[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대청마루 - 김종숙

Leeum 승인 2022.06.05 09:45 | 최종 수정 2022.06.07 08:49 의견 0

대청마루
                               김종숙

 

 

나무 대문 한쪽 살짝 밀면
삐거덕 소리 내며 문이 스르르 열린다
뽀얀 팔 안에 여름방학 책 옆에 끼고
동갑내기 아이 들어서며 태순아 하고 불렀다

​아홉 살짜리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뒤뜰에서 딴 옥수수를
양은 냄비보다 열두 배나 더 큰 가마솥에 삶고 있던 태순이는
아궁이에 부짓갱이를 던져놓고
단숨에 달려 나와 어깨동무한 내 친구

디귿자로 뺑 둘러진 마루 건너면
낮에도 30촉짜리 전등을 켜야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고
요강도 있고 다듬이도 있고 재봉틀도 있던 곳

길게 엎드려 두발을 깔딱깔딱 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문제가 막히면 전과도 꺼내놓고 수련장도 펴 놓고 답을 골라 베껴 쓰던 곳

재봉틀 네모 상자 안에는 우리 둘만의 비밀 주머니도 들어있었다

하얀 몽돌 다섯 개 모아둔 주머니를 꺼내어
다섯 알 구르는 공기놀이를 하다가
매번 허다 쳐 놓치기 일쑤인 왼손잡이 내게
한 번 더 하라는 찬스의 눈짓 찡긋! 나는 그 눈짓이 좋았다

마루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는 몽돌 다섯 개도
보리수 열매를 따서 소꿉놀이하던 작은 조개비도
초여름에 얇은 바람 소리가 지나가는
마루 아래에귀 기울이며 들었던 마루 향기도 우린 좋아했다

​한겨울 넓고 둥근 우물에서
두레박 물을 퍼 올려고사리 손으로 빨아 비뚤어 짠 뻣뻣해진 걸레가
마루 끝에서 어른거린다

대청마루 아래
태순이가 신고 다니던 쓸쓸한 깜장 털신까지도.

 

◇Leeum 김종숙 시인은

▷전북 부안 출생
▷서울시인협회 주관 '윤동주 신인상' 수상(2022) 
▷『문예 마을』 시 등단(2020)
▷『시야 시야 동인』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강동 문인협회』 회원
▷동인지 《여백ㆍ01》 《여백ㆍ02》 출간
▷대표작 《별들에게 고함》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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