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어제(22일) 오후 악양루(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 들차회(野茶會)가 열렸습니다.
차인들의 모임인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회장 백경동)이 행사를 개최했지요. 네 사람이 찻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찻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을 흔히 ‘팽주’(烹主)라고 하지요. 뜻 그대로 차를 우려 내는 사람을 일컫는데, 일본 차계(茶界)에서 팽주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걸 보면 어원이 그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네 사람의 팽주 중 한 명이었지요.
악양루에서 들차회 열려
약식 찻자리이지만 준비할 게 많습니다. 제 준비물을 보면 기본적인 여벌의 차도구는 말할 것도 없고 제가 만든 녹차 중에 가장 좋은 우전 200g과 방석 5개, 대형 보온물병 2개, 차주전자, 다화 그리고 긴 오동나무 차탁 등이었습니다. 한복과 갓, 버선, 가죽신발 등도 챙겨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짐 보따리가 많았습니다. 고맙게도 먼저 와계셨던 여러 분들이 짐을 옮겨주셨지요.
공식적인 들차회는 오후 5시 조금 넘어 백 회장님이 인사말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참석한 차인들이 네 곳의 찻자리를 옮겨다니면서 차를 마셨지요. 같은 차라도 우려내는 사람에 따라 차맛이 모두 다릅니다. 물의 종류와 다관에 넣는 차의 양, 물의 양, 우려내는 시간의 차이 등 수십 가지의 이유로 인해 차맛이 각각인 것이지요.
저는 집에서는 차를 아껴 먹는다고 우릴 때 그렇게 많이 넣지는 않지만 찻자리에서는 듬뿍 씁니다. 실제로 다관에 차를 많이 넣어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차맛이 강하면서 향이 진하지요. 마침 화개제다의 홍순창 상무께서 손님으로 앉아 제 차를 계속 드셨습니다. 홍 상무님이 특히 그렇게 차를 드시는 분이지요.
함경식 목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녹차는 끓는 물을 식혀 70~80℃의 물에서 우려 마시면 맛이 부드러워지고, 입안에 머금고 음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핵심 성분인 카데킨은 충분히 섭취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카데킨은 암을 억제하고 세포의 노화를 막는 성분으로 녹차의 10~18%를 차지하고 있고, 뜨거운 물에서 잘 우러나는 성질이 있다고 합니다.(월간 『茶의 세계』, 2012년 10월호, 108쪽.)
다른 손님도 계셨습니다.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서민도로 주 산호세 시티의 부시장님이 참석하셨습니다. 홍 상무님 초청으로 잠시 화개골에 오셨는데 며칠 뒤 그 도시의 시장으로 취임을 한다고 하더군요.
구경꾼들 모여 누각 꽉 차
날씨는 조금씩 어두워지는데 동정호 수면에 떨어지는 빗줄기의 파문이 아름다운 그림 같았습니다. 들차회 소식을 듣고 화개골을 비롯해 청학동, 심지어 남원 등 지리산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전북 임실에서 산양을 키워 치즈 등을 만드신다는 노부부께서는 택시를 타고 오셨습니다. 사람에 따라 가족 또는 연인들끼리 집 인근이나 공원 등에서 차를 마시는 일은 있지만 이처럼 차인들이 행사의 하나로 들차회를 갖는 경우는 좀 드물지요. 나중에는 누각이 꽉 찼습니다.
조선시대 문사들은 이 악양루에서 시를 종종 읊은 것 같았습니다. 남은 시편들이 많이 남아있지요. 악양루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1937년 9월 악양루의 옛 터인 아미산 아래 언덕에 준공된 것이라고 합니다. ‘악양’은 중국 후베이 성에 있는 한 현(縣)의 명칭으로, 악양루와 동정호 등 여러 이름난 유적이 있는 곳이지요. 당나라의 시인 두보가 읊은 <악양루에 올라>(등악양루·登岳陽樓)가 유명합니다.
대렴차문화원서 음악회 이어
회원들이 연밥과 떡, 과일, 홍어 등 여러 음식을 준비해 와 나눠먹은 후 다시 차를 마시다 어두워져서야 들차회를 마쳤습니다. 모두 2부 행사 장소인 하동군 하동읍 흥룡마을에 있는 대렴차문화원으로 옮겼습니다. 여기서는 음악회가 1시간 반가량 진행됐습니다. 음악회를 진행하면서 기타 반주를 하시는 분은 처음 봬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음악을 한지 37년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들차회의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나고 대렴차문화원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 집인 목압서사에 도착하지 밤 11시쯤 되었지요.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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