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의 '일상 속 기획창의학' (147)파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인간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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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5 08:05 | 최종 수정 2020.06.1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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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 27. 파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인간
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고 벌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늘다.
그래도 전반적인 모습으로 보자면 파리에 가깝겠다.
파리치고는 날렵하니 제법 잘 생긴 편이다.
푸른 파리를 청승(靑蠅)이라 하는데 이 녀석은 길다른 파리니 장승(長蠅)이라 하면 되겠다.
장승이 내 가운데 손가락(中指) 위에 천연덕스럽게 앉았다.
그냥 앉은 것같지는 않다.
내 손가락 어디엔가 요 녀석이 탐하는 뭔가가 있는 듯하다.
바로 전에 먹은 빵 냄새 때문일까?
아니면 내 손톱에 낀 때 때문일까?
핸드폰 카메라를 작동시키는데도 꿈쩍도 않는다.
겨우 한 컷을 찍고 더 가까이 클로즈업 하여 찍으려니 금새 날라갔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았다.
와봤자 먹을 게 없다고 파리 머리로 판단한 모양이다.
파리의 머리와 사람의 머리는 비교불가다.
기획창의하는 머리는 사람이 월등하겠지만 먹을 걸 감지탐지하는 머리는 파리가 월등할 것이다.
파리는 인간으로부터 배울 머리가 없지만 인간은 파리로부터 배울 머리가 있다.
둘 모두 대단한 파리이고 인간이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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