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현 칼럼] 기후위기 시대의 교양

조송현 승인 2021.09.04 13:41 | 최종 수정 2021.09.04 17:10 의견 0

반세기쯤 전 서구사회에서 ‘두 문화 담론’이 유행한 적이 있다. ‘두 문화’란 과학문화와 인문학문화를 말한다. ‘두 문화 담론’은 이들 두 문화 사이의 단절과 갈등이 심각하며, 이것은 사회 발전, 나아가 인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됐다.

문제제기의 주인공은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인 C.P. 스노우 경. 그는 1959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가진 ‘두 문화와 과학혁명’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조심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어조로 ‘두 문화’ 사이의 단절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인문학 지식인들은 과학자를 무식한 전문가라며 무시하는 반면 과학자들은 인문학자들을 과학혁명을 이해하려고도, 이해할 수도 없는 러다이트(산업혁명 당시 기계 파괴폭동을 일으킨 공장 직공들)에 불과하다고 조롱한다는 것이다.

낮에는 물리학자로, 밤에는 소설가로 활동한 스노우가 열거한 사례는 생생하다. 찰스 디킨스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은 과학자가 적다는 뉴스를 들은 인문계 지식인들은 과학자들에게 동정어린 냉소를 보낸다. 스노우는 ‘과학자의 무지’를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여기 누구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반응은 어땠을까? ‘그런 걸 알 필요가 있느냐’는 표정들이었다. 열역학 2법칙은 과학계에서는 디킨즈나 셰익스피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인문계 지식인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을 무식하다고 조롱하면서 ‘과학계의 셰익스피어 작품’에 해당하는 열역학 2법칙은 ‘알 필요가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스노우의 강연은 이듬해 ‘두 문화(The Two Cultures)’라는 제목으 책으로 출간되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2차 대전 이후 서방세계의 대중적 담론에 영향을 미친 100대 저작에 포함되기도 했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통하는 김상욱(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2016년에 펴낸 ‘김상욱의 과학공부’라는 교양과학서 서문을 통해 “과학과 인문학은 교양 앞에 평등한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의 문제의식은 반세기 전 스노우의 그것과 꼭 같다. 근래 한국의 인문계-과학계의 단절과 갈등이 반세기 전 스노우가 체험한 영국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셰익스피어는 교양이지만 열역학 제2법칙은 교양 취급을 받지 못한다. 김 교수는 교양이란 관점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평등하지 않음을 의문형 문장으로 강조한 것이다. 학문융합의 시대에 함께 가기 위해선 둘은 평등해야 한다고 강조한 김 교수는 ‘과학은 교양’이라고 외쳤다.

교양(敎養)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독립적인 개인이 의당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분야를 망라한 일정 수준의 지식이나 상식’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표준어 규정 중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의 교양 개념도 마찬가지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스노우는 과학혁명 시대, 김 교수는 학문융합 시대에 과학을 교양으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면 글로벌 리스크의 첫 번째로 논의되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과학적 교양은 무엇일까?

첫째, ‘인간은 기후 시스템에 명백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 시스템이 온난화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산업화가 본격화한 이후 관측된 변화의 대부분은 수천 년 내 전례 없었던 현상이라는 사실도 기후위기 시대 상식 내지 교양으로 알아둬야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최고 과학자문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결론이다. 1988년 설립 이래 130여 개국의 과학자 2500여 명이 3만 편의 기후 관련 논문을 분석해 내린 자명한 과학적 결론이다. 2014년 발행한 제5차 보고서의 첫 머리에 실린 내용이다.

일부에서는 기후 변화는 자연현상이며 근래 일어나는 극단적인 기상이변도 자연현상의 일부라고 우긴다. 이는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억지다.

둘째, 이 같은 인간의 영향에 의한 기후변화가 결과적으로 인간 및 생태계에 심각하고 광범위하여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억제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큰 폭으로 줄이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2015년 12월 체결된 파리협정은 전 세계가 IPCC의 이 같은 경고에 공감하고 인류 파멸을 막자는 약속이다. 내용의 핵심은 잘 알려진 대로 ▷21세기 말까지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로 제한 ▷2050년 이후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지구의 흡수능력 간의 균형(탄소중립)을 이루게 한다는 것 등이다.

최근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는 5차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 변화가 더욱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지난 5년간 지표면 온도가 185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그린란드 빙상 유실속도, 해수면 상승 속도도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것 등이다. IPCC는 최악의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2050년 이전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개인과 기업의 온실가스 저감 노력이 교양 있는 행동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됐다.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은 의식 있고, 교양 있는 시민으로 평가받는다. 또 선도적인 글로벌기업은 제품 생산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RE100’에 가입하고 있다.

셋째, 기후위기 시대에 원자력(핵)발전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상식이자 교양이다. 일부에서는 원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므로 석탄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최고의 그린에너지원이라 한다. 하지만 이는 겉보기만으로 평가하는 단견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세계가 기후정상회의를 하면서 원전을 대안으로 삼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그린뉴딜에서 석탄발전과 원전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원전 없이 재생에너지로만으로 에너지전환을 추진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원전은 가동 때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지만 우라늄 채굴과 정제, 발전소 운영, 폐기물 관리 전 과정에 걸쳐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무엇보다 사용후백연료인 방사성폐기물을 미처리상태로 미래세대에 떠맡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원전은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도 큰 이유다. 2020년 현재 지난 10년간 균등화발전단가(LCOE)를 보면 태양광발전은 MWh당 359달러에서 41달러, 풍력발전은 135달러에서 40달러로 낮아진 반면, 원자력발전은 123달러에서 155달러로 늘어났다. 자연히 원전산업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 WINSR(세계원자력산업동향보고서)2020에 의하면 세계 원전 수는 2020년 408기로 30년보다 10기가 줄었다.

반세기 전 영국에 ‘두 문화’ 현상이 있었다면 최근 한국에는 탈원전과 친원전 세력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포스트 두 문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현상을 해소하는 데는 과학적 상식과 교양, 즉 기후위기 시대의 교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보인다.

※ 이 글은 한국에너지사업단의 <에너지전환 REPORT 2021>에도 실렸습니다.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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