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25) - 엄마 덕분에 지니게 된 음악적 감성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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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21:04 | 최종 수정 2021.02.1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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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는 방법은 엄청나게 진화했다. 아날로그 LP, 테이프로부터 디지털인 CD, MP3를 지나 이제는 MP3보다 음질이 30배나 좋은 MQS(Mastering Quality Sound), UHQ(Ultra High Quality), HRA(High Resolution Audio) 등 초고음질의 오디오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엄마가 30대인 1970년대는 LP(Long Playing Record) 전성시대였다. LP는 일명 전축판이다. 한 장 한 면에 5분 이내의 노래 한 곡 밖에 실리지 못하는 SP(Short Playing Record)에 비해 30분 가까이 여러 곡을 실을 수 있기에 LP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드디어 이 LP를 돌려서 들을 수 있는 근사한 전축을 장만하셨다. 힘든 살림에 큰 결정을 내려서 산 물건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오디오 기기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전축(電蓄)이라고 불렀다. 희미한 어릴 적 부족한 기억으로 1970년대 초반에 전축의 대표적 브랜드는 금성이나 삼성이 아니고 독수리나 별표였다. 우리집은 아마도 별표 전축을 샀던 것같다.
이때 나한테 삼촌인 작은아버지가 결혼 전에 우리 집에서 같이 사셨는데 삼촌과 아버지가 팝송 전축판을 많이 사오셨다. 나는 덕분에 음악을 많이도 들었다. 턴 테이블에 있는 바늘이 돌아가는 전축판을 긁으면 신기하게도 거기서 음악이 나왔다. 신기하고도 신비하며 신통방통할 노릇이었다. 요즘 디지털 기기로는 그 아날로그의 신기함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라나에 로스포가 부른 ‘사랑해’ 등 등 우리 가요는 물론 I wanna hold your hand, Sealed with the kiss, Rhythm of the rain, Save the last dance for me, Only you 등의 팝송들이다.
아랑 들롱이 나왔던 영화음악도 왜 그리 멋져 보이는지 나는 완전히 빠졌다. 특히 서부영화 주제곡이 든 저 판은 판이 닳을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것 같다. 석양의 무법자, 황야의 은하 1불 등 영화 음악이 어린 마음에도 어찌나 듣기 좋던지 LP 앞 뒷면을 돌려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또 듣고 그랬다. 또한 일본인들이 클래식 음악을 일렉트릭 사운드로 연주한 음악도 너무 듣기 좋았다. 베토벤의 운명을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현대식으로 편곡한 음악으로 이 때 처음 들었다. 결국 나는 엄마가 전축을 장만한 덕분에 어린 나이에 음악적 감성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아이 주제에 동요보다 그런 성인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은 내가 조숙해서가 아니라 그런 음악이 더 멋지게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그 당시 들었던 음악은 지금 내가 기타치고 노래부르는 음감의 토양분이 되주었다. 결국 지금의 내가 즐기는 음악적 감성은 거의 모두 엄마 덕분이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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