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80)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3장 누님 또 누님들⑫

이득수 승인 2024.02.11 07:00 의견 0

길게 유정천리를 부르더니

“이 노래 작곡가가 백년설이라 캤제? 백년도 못 사는 인생에 백년설은 무슨 백년설이라고...”

눈이 강감추리한 게 방금이라도 쓰러져 잠이 들 것만 같더니 천전마을을 지나고 생피바우라고 부르는 천전뒷산 굴바우를 지나 이불마을옆 열녀각에 이르자

“세상에 별 열녀가 있나? 우리 금찬이가 열녀지. 당신 참 고생도 많이 했제?”

하며 쳐다보아 열찬씨의 가슴이 뭉클해져

“보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우짜든동 당신이나 술 좀 덜 묵고 오래 사소.”

코를 훌쩍이며 사개이 못을 지나 대밭 뒤를 돌아 등말리 논길로 접어들었다.

13. 누님 또 누님들⑫

그렇게 집에 돌아와 웬만하면 막걸리나 한잔씩 하고 독한 소주를 멀리하며 몸을 좀 추슬러 집 앞 논의 나락을 걷고 보리갈이를 한다고 쟁기질을 하다가

“아이구야! 내가 와 이라노?”

주춤주춤 끌려가던 쟁기의 손잡이를 손에서 놓치자

“아이구, 내 훌찌! 인자 손 좆도 하나 못 잡고 놓치는구나!”

논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이나 씩씩거리다 다시 일어나 쟁기를 일으키다가

“안 되겠다!”

하고 모로 픽 쓰러졌다. 걸음조차 힘든 수진씨를 택시를 불러 또 동강병원으로 가니

“이 양반이 술만 많이 먹은 것이 아니라 다리도 험하게 썼네. 울산 큰 병원에서 사진을 찍어봐야 알겠지만 무릎관절이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아요.”

“그라면 우짜면 되는 데요?”

“수술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래도 완치되는 확률이 높지 않고 좌우지간 별 방법이 없어요. 이래 되기 전에 조심해야 하는데 인지부터라도 정강키 써야지요.”

“...”

또 주사 한대에 약 몇 첩을 처방받고 이제 택시비도 안 남아 금찬씨가 부축해 천천히 걷다가 남천내공굴앞에서 웬 나무토막 하나가 버려진 걸 주워 지팡이사마 남천내를 건너 방천묵으로 향하다

“봐라, 일식이엄마!”

“와요?”

“이래 저래 나는 인자 안 될랑갑다. 당신하고 아아들이 불쌍해서 우짜꼬?”

“씰데 없는 소리. 그럴수록 마음을 독하게 묵어야지.”

“그래. 니 돈 남은 거 없나? 소주나 한 병.”

기가 차서 한참이나 생각하던 금찬씨가

“아이구, 마 그래 하소.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그래도 묵고 죽은 구신이 화색이라도 좋다카이.”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소주 한 병을 시키고 이번에는 자신도 오만상을 찡그리며 한잔을 마셨다.

가게를 나와 다서 방천을 따라 걷는데

“세상에 소주만큼 만병통치약이 없네. 장개이가 좀 덜 아프네.”

지팡이를 던져버린 수진씨가 제법 씩씩하게 걷기 시작하더니 부리시봇디미를 건너자말자 또 가련다 떠나련다 <유정천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랫마을의 죽마고우 철봉씨가 이튿날 등말리로 찾아와

“친구야, 다리가 많이 아프다면서 간도 안 좋고...”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라

“미안타. 친구 니가 와도 술 한 잔도 못 내놓고.”

“무슨 소리. 내도 술 한 병 사올라 카다가 내가 니하고 만날 마셔 니 술병 낸 사람이 또 무슨 술을 사나 싶어서.”

둘이 한참이나 이야기를 주고받다

“친구야, 니 장개이 아푼 거는 내가 고치주께. 중년에 장개이 아픈 거는 말뼉다구가 최고라 카더라. 묵은 말뼉다구를 구해 푹 삶아 묵으면 직방이라 카더라.”

“그렇지만 요새 말뼉다구가 어데 있노? 천지에 말 키우는 데가 있어야지. 제주도에 갈 것도 아이고?”

“아이다. 우리 클 때 화천아아들이 강도고개서 소 믹이다가 보면 말뼉다구가 나오더라 안 카더나? 옛날 강도들이 말 잡아 묵고 버린 건지.”

“그렇지.”

“그 보다는 옛날 어른들 한테서 간월산 천질바우 밑에 말무덤이 있어 말빼가 여사로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맞다. 나도 들은 것 같다.”

“그래. 그라면 친구 니는 걱정 붙들어 매라. 내가 내일 안간월 천질바우에 가서 말뼉다구를 캐 오꾸마.”

“그래 고맙다. 조심해라이.”

“걱정마라. 내 측간에 똥 누러 가듯이 금방 갔다 오꾸마.”

하고 헤어졌는데 이튿날 저녁 아랫마을 사개이에 들렀던 금찬씨가

“보소. 큰일 났심더. 말빽다구 캐러간 일뱅씨가 안주 안 돌아왔답니더.”

금찬씨가 걱정스런 얼굴인데

“말빽다구를 늦도록 무겁게 캤는갑다. 곧 오겠지. 간월이고 화천이고 길을 모를 사람도 아이고.”

수진씨가 무심코 넘겨 그냥 잠이 들었는데 이튿날 아침 집안사람들이 간월폭포쪽으로 일봉씨를 찾으러 나갔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점심먹기가 무섭게

“일뱅이가 죽었다. 천질바우입구에 엎어져서 죽었다.”

바람처럼 한 순간에 명촌, 사광리, 등말리로 퍼져나갔다. 옆에 곡괭이와 자루가 떨어진 것으로 보아 말뼉다귀를 캐러 간 것은 틀림없는데 오랜만에 산에 가다 숨이 가빠 심장마비로 죽은 것 같다고 했다.

객사(客死)죽음이라고 마을에 못 들어온다며 현장에 차일을 치고 염을 하고 명촌 선산으로 운구를 하여 매장을 하는데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겨우 걸어간 수진씨가

“친구야, 미안타이. 내가 니를 죽였구나!”

때도 덜 입힌 무덤 앞에 앉아 울어도 대답이 없었다. 오히려 집안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아

“봐라. 내려가자!”

이웃 골티에 사는 도산댁 영감의 비호로 슬그머니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 엉뚱한 일이 일어난 뒤 수진씨가 많이 변했다. 우선 낮에 집밖으로 잘 나가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원래부터 야무지고 당돌하고 경우에 따라서 제 싫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 악두받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지만 자기의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하여 말뼈를 구하러 가다가 죽은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이 비록 그 원인이 심장마비로 인한 것이었지만 괜히 자기 때문에 죽었고 자기가 친구를 사지(死地)로 내몬 것만 같은 생각이 든 것 같았다.

“일식이아부지요, 그만 잊어뿌이소. 인명재천이라고 일뱅씨 명이 그 뿐이라서 그렇지 그 기 우째 당신 탓잉교?”

금찬씨가 토닥거려도

“뭐 인명재천이라고? 시방 마음아파 죽는 사람보고 당신이 문자를 쓰나? 내 인명(人命)이는 누집아들인지 몰라도 재천(在天)이는 우리 클 때 산사태 났을 때 흙탕물에 쓸려 도랑에 떠내려가다가 살아온 아아 아이가?”

버럭 화를 내었다.

“우쨌기나 저 눈이 새까만 아아들 다섯 하고 묵고는 살아야지요? 인자 근근이 일식이하나 고등학교 마치고 삼도물산이라에 댕기면서 지 밥벌이 하고 있지만 금방 군에 가야하고 공부보다는 축구나 할라카는 또식이에다 외식이, 성식이 중학생 둘이에다 국민학생 현주에다...”

현주라는 말이 나오자 수진씨의 눈이 번쩍했다. 그 동안 손에 쥐면 부서지랴, 놓으면 또 누가 해코지를 할까봐 그저 ‘박양, 박양, 우리공주 박양아!’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벌써 국민학고 5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래 내 우리 현주를 봐서라도 어서 힘을 내어야지. 내 이래 방구들을 지고 누워있어서야 누가 다섯 식구 입에 거미줄 치는 것을 막겠노?”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일식이애미, 민경 좀!”

하고 거울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거게 맨도칼 있제?”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 아이 다섯 이발을 직접해주던 이발소용의 커다란 면도칼을 받아 가죽 혁대에 쓱쓱 문지르고 입을 한쪽으로 실룩거리며 면도를 하고 나서 방문을 열어보더니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지

“일식이어매, 내 막걸리 한 되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금찬씨가 혀를 끌끌 차며 정지에서 주전자를 찾아 마당을 걸어가는데

“참, 또식이 어젯밤에 들어왔더나?”

“...”

“자식이 밥이나 묵고 처돌아댕기든지...”

삽짝 밖을 나서다 돌아선 금찬씨가

“보소, 요번에 들어오면 당신이 단디 좀 말을 하소. 천지간에 지 애비 말고 가가 겁내는 사람이 어데 있소?”

“알았다.”

논길을 걸어가는 금찬씨의 뒷모습을 보며 수진씨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은 거무죽죽하지만 형제 중 제일 큰 키에 딱 바라진 어깨와 거침없는 행동에 등말리에 이제사 사람 같은 사람, 장군감이 나왔다고 죽은 증조모는 물론 다섯 명의 왕고모들이 입을 모은 둘째는 공부나 집안일이나 무엇하나에 얽매이는 일도 없었고 바쁜 일도 없는 천하태평이었고 아무리 농사일이 바빠도 제 마음이 동해야 따라 나서고 기분이 안 나면 어디론가 내뺐다. 좀체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지만 한번 매를 들면 반쯤 잡는 수진씨가 두려워

“야야, 너거 아부지가 배라쌓더라. 한 며칠은 아무소리 말고 농사일을 좀 돕거라.”

금찬씨가 통사정을 하면

“야. 그 농사라고 눈꼽째기만큼 짓는 농사 그걸 감당을 못 해서.”

하고 논밭에 따라 나서면 힘도 좋고 일머리도 잘 돌아가 작아도 야무지다는 제 형의 두 몫은 능히 해냈다. 그러나 매사 쉽게 빠져들고 쉽게 흥미를 잃어 금방 또 밖으로 나돌기를 시작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공부보다는 축구를 잘 한다는 말, 또래 중에 힘깨나 쓴다는 아이들과 방과 후에 상북면을 휩쓸고 다닌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형 일식이는 중학교를 마치자 말자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제 발로 공장에 취직해 꼬박꼬박 월급을 타서 제 아버지께 바쳐 수진씨가

“일식아, 니 잡비는 얼매 주꼬?”

“아부지. 잡비는 필요없심더. 길천까지 통근차가 들어오니 차비 들 일도 없고.”
“그래도 남자가 호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안 된다. 아나!”

3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주면

“아임더. 천 원짜리 하나면 됨더.”

하다가 다음 달엔

“안주 돈 있심더.”

일절 쓰지 않아 모서리가 닳을 판인 지폐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며 다시 받지도 않아 금찬씨가

“역시 장남은 하늘이 낸다 카디마는 우리 일식이가 그 폭이구먼.”

하면서 측은한 마음에 혀를 끌끌 찼다. 당시에 언양에는 삼남면 가천리의 삼성전관을 비롯 언양 서부의 삼도물산 같은 큰 공장도 많았지만 길천 지화에 들어선 농공단지에 현대알미늄을 비롯한 10개의 중소기업이 있어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당일로 취직이 되는 판이라 좀 젊은 농사꾼이나 금찬씨 같은 부인네도 농사철이 끝나는 음력 동짓달부터 2월까지 서너 달은 가용잡비를 벌어 살림이 조금씩 나아져 집을 고치거나 논밭을 늘리는 사람이 많은 형편이었다. 그렇지만 화식이는

“아부지, 지는 회사에 다니는 일은 성에 안 찹니더. 내 차라리 노가다 판이라도 돌아 댕겨 나중에 집짓는 대목이라도 될랍니더.”

하고 어디에 무슨 일을 한다는 말도 없이 집을 나가면 한 댓새, 어떤 때는 보름이 넘어 들어오기가 예사였다. 가끔

“현주야, 오빠가 까자 사왔다!”

큰 소리를 치면서 제 아비가 좋아하는 소주와 오징어와 꽁치통조림을 내어놓고 제 어미에게 돈 몇 푼을 주고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근 한 달이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한밤중이나 새벽에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면서 들어와 부모 몰래 작은 방에 들어가 잠을 자는 것을 알고 아침 일찍 일어난 금찬씨가

“야야, 니는 도대체 어데서 무얼 하고 댕기는지 밥은 묵고 댕기나?”

하고 이불을 벗겨보다

“아이고, 우야꼬!”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친구들이랑 싸웠는지 술이 취해 넘어진 건지 콧잔등이나 이마, 광대뼈에 멍이 들어 들어오기가 예사였다. 한 번은 멀쩡하게 들어온 아이와 아침을 먹으면서

“니 요새 무슨 일 하고 댕기노?”

수진씨가 묻자

“뭐 망치질, 톱질, 대패질도 배우지만 요새는 옛날 할아버지처럼 연장통 매고 댕기며 짜구로 나무 깎는 일은 없심더. 전신에 기계로 하고 장비로 하고 건물의 뼈대나 문도 나무가 아닌 알미늄샤시로 하는 판이라 샤시 일도 배워보고 또 조적이라고 벽돌이나 보로크 쌓고 흙손으로 바르는 미장일도 배우고...”

“그래. 너거 할배가 미장일 하나는 손이 야무지다고 근동에서 소문이 났다. 오죽하면 운문사나 석남사서 일만 있으면 찾았겠나? 미장 쪽을 열심히 해보든지.”

하기도 했지만 무엇 하나 열심히 배우는 눈치는 아니었고 간간이

“또식이 그놈이 지 애비를 닮았는지 술을 묵으면 쿠세가 있다면서. 어제도 언양에서 난리가 나고 하마터면 지서에 잡혀갈 뻔 했단다.”

쉬쉬하면서도 들으라는 듯이 속삭이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못 들은 척 하면서도 금찬씨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 이 글은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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