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8. 신주와 미호⑤

박기철 승인 2024.03.16 07:00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8-5. 엄청난 물건을 발명한 신주

네네. 알았어요. 황후님! 통촉(洞燭)하여 주시옵소서. 그냥 속시원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릴게요. 괘념(掛念)치 말아요. 이 물질 때문에 지금 온갖 생명체들이 죽어 가고 있어. 지구 생태계도 더럽혀져 오염(汚染)되며 어지럽게 교란(攪亂)되고 있지. 원자폭탄은 인간들이 그 위험성을 알기에 터지지 않도록 조심하니까 그 피해가 1945년에 일본에서 두 번 터진 거 빼곤 아직 없지. 그리고 터졌다 하더라도 터진 지역에만 한정되기에 그 피해가 광범위하지 않아. 그런데 내가 발명한 이 물질은 위험성이 크지 않다고 여기기에 그냥 너도나도 아무 때나 마구 함부로 쓰는 거야. 이제 이 물질 없이는 사람들은 한 시도 살아갈 수 없어. 이로 인한 피해는 전 지구적이야. 그게 바로 뭐냐 하면? 합성수지인 플라스틱이야.

그런 게 우리 때는 없었는데 그 게 그렇게나 나쁜 건가? 나는 그런 거 쓰질 못했으니 잘 실감이 안 나는데…

실감 안 나는 건 당연해. 나도 나 죽을 때까지 실감이 안 났어. 그냥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지. 어떤 사람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했어. 그런데 여기와서 저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니까 가장 위험한 발명품이 되었어. 이제는 위험하다기보다 이미 치명적 발명품이 되었어. 합성수지인 플라스틱이 말이지. 내 좀 어려운 말 가급적 쉽게 할게 들어봐. 합성(合性)이라는 건 천연(天然)의 반대말이잖아. 그렇다면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합성수지 말고 자연에 있는 그대로 있는 천연수지라는 있겠지. 수지(樹脂)라는 건 나무인 수(樹)에서 나와 굳은 기름인 지(脂)처럼 된 거잖아. 소나무에서 나오는 송진이 수지의 일종이지. 그 송진을 모아 어떤 모양을 빚어 굳히면 어떤 모양의 물체가 만들어지겠지. 플라스틱이란 말은 플라스티쿠스라는 라틴어에서 온 말인데 그 뜻은 어떤 형체대로 성형(成形)할 수 있는 가소성 물질을 뜻해. 난 플라스틱을 인공적인 화학작용을 통해 합성수지인 플라스틱이란 물질을 만들어 낸 거지. 사실 내가 합성수지를 처음 만든 건 아니야. 그런데 나보다 먼저 만들어진 합성수지는 그 원료가 천연물질이었어. 그걸로 당구공을 만들었다는데 당구공이 깨지기 쉬우니 성능이 좋지 못했지. 그런데 내가 만든 합성수지는 천연물질이 아니라 완전히 화학작용을 거쳐 만든 거야. 화학작용이라는 거는 두 개 이상의 물질이 합쳐져 전에 없던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거지. 가령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합쳐져 화학작용이 일어나면 물이라는 전혀 새로운 분자가 만들어지는 거잖아. 그런 식으로 나는 천연물질이 아닌 화학작용을 거쳐 합성수지를 만들어낸 거지. 성능이 좋았지. 그러니 내가 본격적인 합성수지의 발명자가 되는 거지. 요즘 세상사람들은 날 보고 플라스틱의 아버지나 시조로 부르더군. 난 그런 평가가 자랑스럽다기보다 자학(自虐)스러워. 날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거니 의기소침하게 돼.

어려운 말이 있어도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그렇게 너 스스로 자학까지 할 필요가 있나 모르겠네.

그렇기도 하지. 그런데 내가 만든 플라스틱으로 인해 지금 일어나며 돌아가고 있는 저 아래 세상 꼴을 보고 있자니 그래. 나도 저렇게까지 될 줄은 미처 몰랐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문제가 안 돼. 하지만 지금 플라스틱 제품이 버려지는 쓰레기로 인한 피해는 처참해. 잔인하며 잔혹하고 참혹하지. 이루 말할 수 없어. 지금 저 세상 사람들은 인류멸망 10대 시나리오라는 걸 가지고 인류가 사라진다고 예언하는데 그 원인인 10대 시나리오 안에 플라스틱 쓰레기는 없어. 뭐 태양 폭팔이나 지구궤도 이탈 같은 것들이 있던데 인류멸망과 지구멸망을 헷갈리고 있어. 어리석은 인간들이야. 태양이 폭팔해 없어지거나 지구가 태양을 도는 정상궤도를 벗어나면 인류만 멸망하겠어. 지구도 멸망하겠지. 우린 그런 지구멸망 시나리오 말고 인류멸망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앞으로 인류는 내가 만든 플라스틱으로 인해 멸망할 것 같아.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는 지금 호모 플라스티쿠스가 되었고 그들이 지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이 무지하게 막강해. 그래서 지금 지구를 지질학적으로 홀로세를 지나 인류세라고 하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깢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인간이 멸망하겠어. 똑똑한 인간이 해결책을 찾겠지. 자학하지마, 신주!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미 임계점을 지난 것같아. 아무리 해결 노력해도 이미 인류멸망으로 가는 버스는 떠난 거지. 그러니 난 일류멸망 원인제공자가 되고 말았어. 그것도 최대최고최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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