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이르러 이것저것 세속적인 욕심은 어느 정도 빠져나간 것 같은데, 때깔이 고운 그릇을 보면 아직도 곁에 두고 싶은 생각이 인다.
(…) 가끔 이당도예원에 들를 때도 이런 내 욕심은 멈추지 않는다. 한번은 오래전에 만들어 작업실 한쪽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필통에 눈길이 닿자 먼지를 털어 얻어 오기도 했다.
언젠가는 때깔이 고운 도자기 앞에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무심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아마 내 삶도 탄력이 느슨해질 것이다. -법정/『아름다운 마무리』/때깔 고운 도자기를 보면-
푹 깊은 잠을 잔 것 같다. 몸을 뒤척거려 창문 쪽을 향하고 눈을 떴다. 희붐하다. 6시 쯤 되었을까. 박차고 일어나기에는 몸이 너무 무겁다. 엉치등뼈가 욱신거리고 무릎께도 시리다. 어젯밤에 무리했음을 몸이 일러준다.
다시 몸을 돌려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무리한 몸을 어떻게 풀 것인가?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전거로 1km 남짓 달려 목욕탕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손쉽고 편리하기는 하나, 게으른 고식책일 뿐이다.
찌뿌드드하게 비정상인 몸은 역시 강도는 약하더라도 몸을 움직여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 그래, 삭신이 쑤셔 좀은 고통스럽더라도 마당에 빗질을 하고, 체조를 한 번 하고, 아침 군불을 때자. 군불로 데운 뜨거운 물을 욕실로 길어다 샤워를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질 것이다. 그럼, 1시간 수고로움으로 하루가 편안해지지, 벌떡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어제, 모처럼 읍내로 외출을 했다. 일상은 단순 소박하게 반복된다. 일어나자마자 눈 비비며 읽고, 허출하면 챙겨 먹고, 쓰고, 집안일과 텃밭에서의 작은 노동으로 몸 움직여 컨디션 유지하는 일이 거의 전부다. 만남도 대화도 통화도 매우 드물다. 내 젊은 날 바람대로의 날들이다. 마는, 행·불행을 떠나, 아무런 외적 자극 없이 단순 반복되는 일상은 ‘무료’라는 복병에 취약하다.
외출 핑계거리를 찾았다. 연필과 볼펜이 두세 자루씩만 남아 간당간당 불안하다. 학생이 줄어드니 시골 면소재지에는 문방구가 없다.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 샤프 연필이 있지만 이건 예비용이고, 연필 깎을 때의 그 향내, 정취를 즐긴다.
동네 어귀 버스 정류소에 나가 시간표를 보니, 노선버스가 오려면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예전 같으면 걸었다. 걷다가 버스가 오면 탔다. 그러나 무릎을 아껴야 할 나이다. 어쩌나 하고 서성이는데 마침 배추 싣고 읍으로 가는 동네 선배의 트럭을 얻어 탈 수 있었다.
원하던 브랜드 제품을 손에 넣으면 이런 기분일까, 연필과 볼펜 한 다스씩을 사서 안주머니에 품으니, 더없이 든든하다. 넉넉해진 마음으로 돼지국밥 집으로 갔다. 읍내 나들이할 때 예외 없이 들른다. 돼지국밥에 소주 한 병,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한데 오늘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인가. 늦점심을 하던 후배가 미리 계산을 했다.
읍내로 올 때 버스시간표를 휴대폰으로 찍어뒀다. 확인하니 버스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남았다. 평소 알고 지내는 가게로 갔다. 종이컵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친구 하나가 쑥 들어온다. 오랜만이다. 반갑다. 소주 한 잔 하자. 친구도 나도 이미 반술은 된 상태다. 그러니 의기투합할밖에.
취했다. 날은 어두워졌다. 버스는 떨어졌다. 돈도 떨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택시비는 1만3천원이다. 안면으로 외상 택시를 탈 수는 있다. 마는, 싫다. 취한 와중에도 절제를 잃은 마음을 몸 고생으로 벌충하자는 결심이 섰다. 까짓 10km, 2시간이면 된다.
3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취한 걸음에 걷다가 쉬고, 쉬다가 걷기를 거듭해서이다. 지난날 이 길을 더러 걸었다. 힘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 장골이지, 역시 몸은 세월을 감당하지 못한다.
걸으면서 쉬면서 조금은 고통스러웠지만, ‘걸을 결심’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왜냐면, 내 누옥의 이부자리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고, 단순 반복되는 일상이 행복 그 자체라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군불로 데운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농협으로 향했다. 인터넷 서점에 책을 주문하고 입금하러 가는 이때가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운동화가 너덜너덜해져 하나 새로 장만하려 돈을 꼬불쳐뒀다. 마음을 바꿔 그 돈으로 찜해둔 책을 사기로 한 것이다.
주문한 책을 택배 받을 때의 기쁨, 또 어디 비기랴. 물론 다 읽고 못 읽고, 읽을 때의 즐거움과 실망은 그 다음의 문제다.
생각해 본다. 내 삶을 지탱하는 뼈대는 무엇인가? 무슨 대수로운 지식체계를 세우지도 못하고, 독각(獨覺)을 이룰 수 없다손 치더라도, ‘앎에 대한 욕구’ 그 자체가 단순 반복적인 삶을 버텨내게 하는 힘이 아닌가!
추측컨대, 더 이상 ‘책 욕심’이 안 생기고, 지적 호기심이 시들해질 때, 내 삶은 ‘탄력이 느슨해지는 것’을 넘어, 존재로서의 자존감도 스러져버릴 것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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