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산티아고 이야기(13) 12일차 -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에서 아타푸에르카까지)

이탈리아 친구 안드레아 로마로 떠나
점심때 순례길에서 처음 팔레아 먹어
호주 엄마·아들 카페·알베르게서 만나
오늘 18.1 km, 전체 263, 9km 걸어

조해훈 승인 2024.12.06 11:35 | 최종 수정 2024.12.06 12:46 의견 0
오늘 아타푸에르카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지는 않지만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사진= 조해훈]

10월 29일 오전 7시 반쯤 배낭을 꾸리면서 보니 이탈리아 로마 친구인 안드레아(31)는 벌써 출발하고 없었다. 한국인 청년 성·이 모씨 두 사람이 말했다.

“어젯밤에 카페를 찾으러 안드레아와 바깥에 나갔다가 없어 안드레아가 티토에게 전화를 하니 인근 알베르게에 있다고 해 함께 거기로 갔습니다. 티토가 선생님에 대해 물길래 글 쓰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간단하게 좀 먹고 놀다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니 선생님께서 주무시길래 안드레아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니 대신 인사를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로마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아, 그랬군요.”라며 정든 안드레아와 헤어져 섭섭한 마음이 컸다. 배낭을 꾸려 오전 8시에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안드레아가 좀 강하게 생겼어도 의리가 있는 친구였다. 알베르게 인근을 둘러보고 발걸음을 내디디니 오전 8시 20분이다. 한국 청년 두 명은 먼저 떠났다. 알베르게를 나와 위로 돌아가면 바로 산으로 올라가는 산티아고 길이다. 안개가 뿌옇게 끼어 있다. 오르막은 흙길에다 좀 질퍽했다. 혼자 30분쯤 산길을 걸으니 조그만 집 모양의 쉼터가 있었다. 양쪽으로 소나무 숲이 있는 산길을 계속 걸었다. 아침 안개가 낀 숲속이 미지의 어떤 느낌을 주지만 아름답다. 마치 ‘일곱 난쟁이와 백설 공주’의 이야기 속 배경 같다는 생각이 들다.

산길에 스페인 내전 때 학살당한 300명이 매장된 곳을 발굴한 안내판이 서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37분, 길 오른편에 발굴하는 모습의 사진이 있는 안내판이 있다. 뭔가 싶어 보았다. 스페인어로 적혀 있어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일어난 스페인 내전 때 300명의 사람이 죽어 매장된 곳이었다. 2011년에 발굴 조사한 다음 죽은 영혼들이 편히 쉬시길 바란다는 돌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 위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새겨져 있다. 마음이 착잡했다. 필자는 죽은 그들을 위해 명복을 빌며 간단히 묵념한 후 그곳을 떠났다.

산길에 누군가 만들어놓은 돌 화살표가 있다.

오르막 산길은 계속 이어졌다. 오전 10시 19분, 길 위에 누군가 돌 화살표를 만들어놓았다. 필자도 돌 한 개를 주워 화살표 위에 얹었다. 돌 화살표는 필자에게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첫째는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산티아고 길입니다.’라는 의미이다. 둘째는 ‘이 화살표는 무사히 산타이고 길을 걸으십시오.’라는 순례자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재미없게 길만 따라 걷는 것보다는 이런 돌 화살표 같은 걸 만나면 어떤 기운을 느낀다. 일종의 부적(附籍) 같은 느낌 말이다. 가다 보니 돌 화살표가 몇 개 더 있다.

푸드트럭은 아니지만 커피와 과일을 파는 곳이 있다. [사진= 조해훈]

흙길인데 좀 넓다. 오전 10시 28분, 푸드트럭 같은 게 있다. 푸드트럭은 아니지만 SUV 차량에 싣고 온 커피와 바나나 등 과일과 조개껍질 등을 팔고 있었다. 조개껍질에 다양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니 그림도 몇 점 있다. 아저씨에게 “직접 그린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그린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바나나 2개를 사 먹었다.

길가에 우리나라의 장승 같은 걸 만드는 곳이 있다. [사진= 조해훈]

그런 후 또 길을 따라 걸었다. 오전 10시 55분, 길가에 나무로 우리나라의 장승 같은 걸 만드는 곳이 있었다. 주인은 없고 완성된 것도 있고 만들다 만 것도 있었다. 아마 이런 목재 조각품도 순례자들을 위한 것이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계속 가다 보니 또 소나무 숲길이다. 소나무 숲길을 걸으면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 소나무가 내뿜는 기운도 느껴지지만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돈이 된다.

산길을 벗어나니 농경지 사이로 길이 이어졌다. [사진 = 조해훈]

낮 12시쯤, 산길을 벗어나고 들판 길이다. 이어 길 오른편에 베지 않은 큰 해바라기 밭이다. 왼편은 갈아놓은 밭이다. 낮 12시 22분, 길 왼쪽에 자그마한 카페가 있다. 입구에 ‘파엘라(Paella)’를 판다는 간판이 사진과 함께 붙어 있다. 산티아고에 와 파엘라를 한 번도 먹어보지도 않았고, 파는 곳을 처음 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빠에야’라고 부른다. 파엘라는 쌀과 닭고기, 생선, 채소를 넣은 스페인 요리이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아저씨가 “어서 오세요.”라고 한국 발음으로 인사를 했다. 필자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면서 “파엘라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좀 있으니 그라뇽성당에서 함께 잤던 호주 엄마와 아들이 옆자리에 들어와 역시 파엘라를 주문했다. 주인이 갖고 온 파엘라를 보니 밥 위에 새우와 오징어, 달걀이 얹혀 있다. 예전에 스페인에 와 먹어봤던 파엘라와 맛이 비슷했다. 밥이 들어가니 속이 편안했다.

순례길에서 처음 먹은 파엘라. [사진= 조해훈]

그렇게 점심을 먹고 바깥에 나오니 햇살이 좋다. 야외 의자에 앉아 햇살 바라기를 했다. 마침 앞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다른 순례자가 사진을 찍어 준다고 했다. 찍힌 사진을 보니 분위기가 좋았다. 아들들에게 안부 겸 사진을 보냈다. 좀 있으니 아들 둘이 ‘편안해 보이네요.’, ‘여유로워 보여 좋아요.’라고 답을 해왔다.

점심을 먹은 카페 야외 의자에 앉아 있는데 다른 순례자가 찍어준 사진.

오후 1시 34분, 다시 길을 걸었다. 길 오른편에 다른 카페 겸 바(Bar)가 있다. 바 앞에 우리나라의 하얀색 현대 스포티지가 한 대 주차해 있다. 산티아고 길에서 특히 기아차와 현대차를 하도 많이 봐서 새롭지는 않다.

같은 카페에서 점심을 먹은 호주에서 온 엄마와 아들. [사진= 조해훈]

숲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호주의 엄마와 아들이 따라왔다. 필자보다 걸음이 훨씬 빠르다. 엄마 이름이 카티르나(Katyrna)이고, 아들 이름은 마선(Mason)이다. 이들 모자의 사진을 찍어 주자 카티르나도 필자의 뒷모습을 찍어줬다. 그런 다음 필자가 “먼저 가십시오.”라고 했다. 오후 2시 반쯤, 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길은 항상 변화무쌍했다. 그러니 순례자들은 길이 좋으면 좋은 대로, 험하면 험한 대로 개의치 않고 걷는다. 길이 끊어져 없으면 모르지만 있으면 다행이라 여기며 걷는다. 순례자치고 그 정도 각오 없이 걷는 사람은 없다.

걷기에 약간 불편한 길. 순례자들은 길이 좀 불편해도 개의치 않는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48분, 한 마을에 들어왔다. 아게스(Ages)라는 마을이다. 매일 걷는 코스마다 마을을 만나는 것도 다 다르다. 어떤 코스는 한 개의 마을만 지나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는 7, 8곳의 마을을 지나기도 한다. 마을이 많고 적고 간에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이라도 점심을 먹을 카페나 바가 없으면 하루가 힘들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도 하지만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나 필자의 경우는 그렇다는 것이다. 마을에 ‘산티아고 518km’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아직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518km 남았다는 이야기이다. 필자는 산티아고까지 몇 km 남았다는 거리에 별로 상관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낯선 풍물을 구경하고 생각하며 걷기에 체력이 허용하는 한 훨씬 더 멀어도 괜찮다.

오늘 필자가 잘 자그마한 알베르게. [사진= 조해훈]

마을이 그리 크지 않다. 도로를 따라 자그마한 집 몇 채 있는 정도이다. 순례길은 도로 옆으로 나 있다. 가끔 순례자들은 순례길이 도로 옆을 따라 이어져 있으면 ‘도로가 먼저 생겼을까?, 산티아고 길이 먼저 생겼을까?’라는 의문을 가진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산티아고 길을 따라 도로가 생겼을 수도 있고, 기존의 산티아고 길이 걷기에 불편해 순례자들이 좀 수월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로를 따라 새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걸어서 오후 3시 46분에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네덜란드 순례자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두어 번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알베르게가 자그마하다. 마을의 규모가 워낙 작아서 순례자들이 잘 머물지 않는 지역이었다. 가방을 방에 넣어 짐을 풀고 있는데 티토가 왔다. “인근에 저녁 식사도 되는 사립 알베르게에 있으니 함께 가 저녁을 먹자.”고 했다. 필자와 네덜란드 친구가 따라갔다. 사람이 넉넉해 보이는 주인아주머니는 “여기서 시간을 함께 보내도 됩니다. 저녁 식사도 함께 먹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알베르게 건물이 고풍스럽고 멋이 있었다. 벽난로에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여러 순례자가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주 엄마와 아들도 있었다.

좀 있으니 티토가 “신청자에 한해 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 당신도 요가 해보세요.”라고 했다. 필자는 “예, 그럴게요”라고 답했다. 요가 공간이 좁아 1팀과 2팀으로 나눠 배웠다. 1팀이 먼저 한 후 필자는 2팀이어서 뒤에 방으로 들어갔다. 요가 선생님은 지난밤 알베르게에서 만난 여성분이었다. 요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필자와 한국 청년 성 모씨와 이 모씨가 함께 배웠다. 필자는 몸이 굳어 있어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요가 선생님의 동작 지도가 끝나자 이번에 티토가 몸 푸는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티토는 스위스에서 체육 선생님을 하고 있었다. 매일 헬스와 요가 등 운동을 한다고 했다.

필자가 오늘 묵을 알베르게 인근의 사립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이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 [사진= 알베르게 주인 아주머니]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오후 7시 반에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먼저 콩이 많이 들어간 수프가 나와 맛있게 먹었다. 그런 다음 주메뉴로 소고기 익힌 요리 등이 나왔다. 각자 식당에 가 배급을 받았는데 주인아주머니는 필자를 보더니 “더 드릴까요?”라고 해, 필자는 염치도 없이 “예”라고 답했다. 정말 배부르게 먹고 후식으로 나온 케이크도 먹었다. 고급 포도주와 맥주가 나와 사람들은 입맛에 따라 마셨다. 식사 시간에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티토가 호주에서 온 아이인 마선에게 “산티아고 걸은 소감을 말해 볼래?”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선이 어른이 많이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똑똑하게 설명을 많이 했다. 사람들은 모두 “마선이 너무 똑똑하다.”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은 후 밥값으로 각자 12유로를 냈다. 아주 싼 가격이었다. 필자와 네덜란드 친구는 우리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다른 순례자가 없어 한 방에 그와 둘이 잤다. 오늘 그다지 긴 거리를 걷지 않은 이유는 내일 부르고스에 도착하는 거리 등을 생각해서이다.

오늘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에서 아타푸에르카(Atapuerca)까지 18.1km를 걸었다. 오늘 걸은 길의 높이는 해발 949~1,159m이다. 출발지인 생장에서부터는 전체 263.9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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