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에서 하루 쉬고 다시 순례길을 걸으면서 가우디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다른 순례자

오늘은 2024년 11월 11일(월요일)이다. 아침 7시 반쯤 알베르게 사무실에 가 배낭을 부치기로 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계속 왼쪽 발꿈치가 아파 왼쪽 발을 들고 걸었다. 어제 레온 시가지 구경을 하면서도 그렇게 걸었다. 오늘은 심하게 아파 도저히 배낭을 메고 걸을 수 없겠다고 판단해 배낭을 택배로 보내기로 했다.

필자의 말을 들은 사무실의 아저씨가 택배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 “레온 공립 알베르게에서 ‘산 마르틴 델 까미노’(San Martin Del Camino)의 비에라(Viera) 알베르게까지 택배를 보낼 수 있습니까?”라고 확인했다. 사무실 아저씨는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은 모양이다. 필자는 배낭에 택배표를 붙인 후 10유로를 건네드렸다. 그런 후 오전 8시에 맨몸으로 출발했다. 늘 배낭을 메다가 맨몸으로 걸어 기분이 이상했다. 확실히 왼쪽 발에 무리가 덜 갔다.

레온 박물관에 단체 관람온 학생들이 입구에서 떠들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8시 반쯤 다시 가우디의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건축물을 거쳐 산티아고 순례길이 연결되었다. 햇살이 나고 있다. 분수대 로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전 8시 33분, 길가에 레온 박물관(Museo de Leon)이라는 글귀가 붙은 둥그스름한 건물이 있다. 학생들이 아마 단체 관람하러 온 듯 그 앞에서 떠들고(?) 있다.

길을 따라 여러 가게 등을 구경하며 걸었다. 오전 8시 49분, 옛 기사단 건물에 있는 산 마르코스 수녀원(Convento de San Marcos) 앞에 도착했다. 1152년 레온의 알폰소 7세 왕 때 그의 누이인 카스티야의 산차 공주가 레온 성벽 밖 베르네스가 강둑에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와 산티아고 수도회의 본부 건물을 지은 것이다. 1936년에서 1940년까지 스페인 내전 기간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어 7천 명 이상을 수용했다. 지금은 5성급 그랜드 럭셔리 파라도르(Parador de Leon) 호텔이다.

옛 '산 마르코스 수녀원' 건물. 지금은 '레온 파라도르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앞 광장이 산 마르코스 광장이다. 사진= 조해훈

이 산 마르크스 광장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전통 순례길인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이고, 다른 하나는 오비에도(Oviedo)로 향하는 살바도르 길(Camino del Salvador)이다.

필자는 전통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산 마르코스 광장을 지나 ‘산 마르틴 델 카미노’를 향해 걸었다. 오전 8시 55분, 강이 흐르고 있다. 다리를 건너 산티아고 표식을 보고 도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오전 9시 43분, 걷던 도로에서 오른 편으로 위쪽으로 난 도로로 걸었다. 약간 오르막이다. 시골 풍경이 나타났다. 오전 9시 46분, 벽돌로 만든 저장고 같은 게 있어 그 앞에서 잠시 쉰다. 아마 생산한 포도주 통을 보관하던 장소인 것 같다.

와인을 보관하던 창고. 사진 = 조해훈

5분쯤 쉬다가 다시 걸었다. 산복도로 같다. 도로를 따라 집들이 띄엄띄엄 있다. 오전 10시 5분, 자동차 정비공장인지 큰 건물 주변에 자동차들이 많이 주차돼 있다. 오전 10시 28분, ‘라 비흐겐 델 카미노(La Virgen Del Camino)’ 마을 간판이 도로변에 서 있다. 시골 마을이라기보다는 레온의 변두리 같았다. 여기서 10분쯤 걸어가니 길가에 작은 카페가 있다. 지난밤 레온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한국 젊은 커플이 먼저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필자도 커피를 한잔 마셨다.

'리 비흐겐 델 카미노' 마을에 있는 작은 카페. 필자는 이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사진= 조해훈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었다. 오전 11시 4분, 길가에 약국이 있어 들어갔다. 왼쪽 방바닥과 뒤꿈치에 붙일 파스를 사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왼쪽 발뒤꿈치가 아팠다. 파스 크기가 우리나라보다 작지만 두툼했다. 왼쪽 발뒤꿈치에 한 개, 그리고 발뒤꿈치와 연결해 발바닥 쪽에 한 개를 붙였다. 느낌이 시원하고 약효가 센 것 같았다.

길가에 있는 순례자 모형.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19분, 길가에 ‘FUENTE EL CANIN’이라는 글자가 붙은 작은 순례자 모형이 있다. 오전 11시 22분, 뒤에서 급하게 다가온 한 남성 순례자가 필자를 앞질렀다. 나이가 70대로 보였다. 그런데 걸음이 무척 빨랐다. 오전 11시 25분, 한 공동묘지를 만났다. 다른 공동묘지보다 묘가 많았으며, 깔끔했다. 오전 11시 32분, 도로를 따라 계속 걷는데 햇살이 좋다. 이런 날씨면 걷기가 좋다. 오전 11시 36분, 도로를 따라 걷지만 도로 옆으로 난 흙길로 접어들었다. 흙길 옆으로 군데군데 나무가 있어 그늘이 끼어 좋다. 오전 11시 45분, 이제 도로를 약간 벗어났다. 필자를 앞지른 70대의 순례자가 다시 필자를 앞질러 저 앞으로 간다. 걸음이 상당히 날래다.

70대로 보이는 서양 순례자가 필자를 앞질러 가다가 표지판을 보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47분, 도로 아래 짧은 터널을 지난다. 그런데 터널을 나가니 약간 헷갈렸다. 표지판이 두 방향으로 나 있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고민하다 보니 오른쪽이 맞는 것 같았다. 오른쪽 길로 들어서 가니 약간 오르막이다. 낮 12시 14분, 저 앞에 공장과 집들이 조금 보인다. 산티아고가 300.8km 남았다는 표지석이 있다. 한 순례자를 만나 사진을 한 장 부탁했다.

도로를 따라 순례길이 이어져 있다. 사진= 조해훈
한 순례자를 만나 사진을 부탁해 찍었다.

낮 12시 22분,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Valverde De La Virgen) 마을 간판이 서있다. 도로 옆길을 따라 마을을 보며 걸었다. 도로 옆에 교회가 먼저 나타났다. 첨탑에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걸로 미루어 현재 교회가 운영되지는 않는 것 같다. 교회 건물 외관은 멀쩡했다. 교회를 지나니 도로 가의 기단 위에 순례자의 모형이 있다. 마을이 도로를 따라 형성돼 있는데, 크지는 않다. 마을에 카페도 하나 없다. 금방 마을을 벗어났다. 순례길은 도로 옆에 흙길로 계속되었다.

도로 옆에 있는 교회. 첨탑에 새들이 집을 지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45분, ‘산 미구엘 델 카미노’(San Miguel Del Camino) 마을 지도가 있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이어 마을이 도로를 따라 펼쳐져 있다. 도로 건너편 단층집 현관문에 산티아고 문양이 새겨져 있다. 오후 1시 22분, 헷갈리는 구간이다. 도로를 따라가던 길을 버리고 도로를 횡단하여 10시 방향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필자가 아무 생각 없이 가던 도로를 따라 걷는데, 여성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저 길로 가야해요.”라고 일러주었다.

날씨가 화창하다. 사진= 조해훈

일러준 도로로 접어드니 도로 옆으로 순례길이 나 있다. 오후 1시 40분, 앞에 한 남성 순례자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 있다. 6분 더 걸으니 도로 건너 벌판으로 가라는 표지석이 있다. 길이 아름답다. 잉크색 하늘에 오늘따라 뭉게구름이 많고, 흙길에는 단풍 든 나무들이 많다.

하늘은 잉크색이고 뭉게구름이 많다. 순례길에 단풍이 든 나무도 있어 길이 아름답다. 사진= 조해훈

오후 3시 15분, 2층에 바(bar)가 있어 들어갔다.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주인의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필자가 다른 음식을 시키지 않고 커피 한 잔과 빵 하나만 주문했다. 주인은 “커피 안 됩니다.”라고 했다. 방금 다른 손님이 커피를 주문해 받아 가는 걸 보았다. 필자는 ‘커피 재료가 떨어졌나?’라고 생각했다. 좀 난감했다. 그런데 맞은 편에서 음식을 주문해 먹던 여자 손님이 “커피 되잖아요. 저 카미노에게 주세요.”라고 주인에게 항의했다. 그제야 주인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쓰더니 밀크커피를 만들어 빵과 함께 필자에게 주었다. 커피와 빵 가격이 5유로 정도밖에 안 되니 그런 모양이었다. 점심 메뉴를 시키면 20유로 이상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커피와 빵 하나면 충분했다.

오후 3시 넘어 들어간 바에서 우여곡절 끝에 밀크커피와 빵 한 조각을 먹었다. 사진= 조해훈

커피를 마시며 좀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주인아저씨가 못마땅한 얼굴로 자꾸 눈치를 주는 바람에 먹고는 얼른 바를 나왔다.

다시 길을 걸었다. 오후 3시 58분,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aramo) 마을 입간판을 만났다.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도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도로 옆에는 베지 않은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다. 거길 지나니 옥수수를 벤 밭이 나타났다. 엷은 고동색 밭이 쭉 펼쳐져 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오후 5시 25분,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비에이라(Vieila)’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마치 소박한 시골집 같은 모습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아주머니가 반겨주었다. 필자의 배낭이 도착해 있었다. 거실에는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주인아주머니의 작은 딸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큰딸은 자기의 방과 거실, 주방을 들락거렸다.

순례길 왼쪽에 베지 않은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다. 사진= 조해훈

아주머니는 “저녁 식사 하시겠어요?”라고 필자에게 물었다. 필자는 “예. 저녁 식사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필자는 이 알베르게에서 삼겹살과 쌀밥을 저녁 메뉴로 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가 큰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다른 남자 순례자 세 명이 있었다. 마치 가정집 같았다. 마음이 편안했다. 씻고 왼쪽 발의 파스를 바꿔 붙였다. 거실로 나오니 식탁에 동양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앉으면서 ’한국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니 “대만에서 왔습니다.”라고 했다. 대만 남자와 필자 두 명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 하루 묵을 알베르게. 마치 소박한 시골집 같다. 사진= 조해훈

좀 있으니 닭고기 요리가 나왔다. 기름기 빼고 구운 닭 한 마리가 큰 접시에 나왔다. 두 명이 나눠 먹었다. 닭요리를 다 먹고 나니 큰 접시에 삼겹살과 흰쌀밥이 함께 나왔다. 대만 사람에게 “한국 음식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니, “네. 한국 음식 아주 좋아합니다.”라고 했다. 30대의 대만 남자는 꼭 우리나라 사람처럼 생겼다. 필자보다 더 빨리, 맛있게 먹었다. 산티아고 걸으면서 삼겹살은 처음 먹었다. 알다시피 스페인의 돼지고기는 맛이 좋다. 돼지 다리인 하몽(jamon)이 유명하다. 삼겹살과 쌀밥을 먹고 나니 속이 편했다. 마음도 덩달아 편안했다. 이 알베르게는 한국 순례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국 순례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 알베르게에서 저녁 식사로 먹은 흰쌀밥과 삼겹살. 사진= 조해훈

저녁을 먹고 나니 아주머니가 홍차를 한 잔 주셨다. 홍차를 마시면서 노트북을 가져와 글을 썼다. 밤 10시가 돼 거실의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배낭을 짊어지지 않고 걸어 왼쪽 발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

필자와 함께 저녁 식사로 흰쌀밥과 삼겹살을 먹은 대만 청년. 사진= 조해훈

오늘 레온에서 이곳 ‘산 마르틴 델 까미노’까지 24.5km를 걸었다. 생장에서 여기까지는 총 486.7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