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8) 먼저 자신의 마음을 항복시키고 방자한 객기를 눌러야 하리

허섭 승인 2021.02.06 20:20 | 최종 수정 2021.02.10 00:18 의견 0
겸재(謙齋) 정선(鄭敾 조선 1676~1759)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79.2×138.2), 리움미술관

038 - 먼저 자신의 마음을 항복시키고 방자한 객기를 눌러야 하리.
 

마귀를 항복시키려는 자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굴복시켜라.
마음이 굴복하면 모든 악마들이 물러나 고분고분해 질 것이다.

타인의 횡포를 누르려거든 먼저 자신의 방자한 객기를 눌러야 한다. 
객기가 평정되면 외부의 횡포는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

  • 退聽(퇴청) : 물러나 본심의 명령에 따름.
  • 馭橫(어횡) : 횡포한 것을 누름. 馭는 본래 ‘말을 부리다’ 의 뜻. 다스리다, 통솔하다
  • 橫(횡) : 횡포(橫暴)한 것을 말함.
  • 此氣(차기) : 객기(客氣
왕사신(汪士愼, 청, 1686~1759) - 시화도1(왼쪽), 시화도2

◆출전 관련 글

『왕양명 전서(王陽明 全書)』에 <破山中賊易 破心中賊難 - 산 속의 도적은 무찌르기 쉽지만 마음속의 도적은 무찌르기 어렵다> 라는 구절이 있다.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은 글

▶『법구경(法句經)』 술천품(述千品) 103~105

전쟁에서 수천의 적과 / 혼자 싸워서 이기기보다, / 하나의 자기를 이김이야말로 / 참으로 전사 중의 최상이니라. (전쟁터에서 싸워 / 백만 인을 이기기보다 /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

千千爲敵(천천위적) 一夫勝之(일부승지) 未若自勝(미약자승) 爲戰中上(위전중상)

자기를 이기는 것이 제일이니라. / 그러므로 그는 사람 중의 왕. / 다른 여러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 오직 자기를 다루어 따르라.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은 / 남을 이기는 일보다 뛰어난 것 / 그러니 자신을 억제하고 / 항상 절제하는 사람이 되라)

自勝最賢(자승최현) 故曰人雄(고왈인웅) 護意調身(호의조신) 自損至終(자손지종)

언제나 자기를 다루어 따르면 / 그 사람의 빛나는 승리에는, / 신·건달바도 악마도 범천도 / 그 사람의 승리에는 반항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은 사람의 승리는 그 누구도 꺾어 물리칠 수 없다 / 음악의 신도 악마도 / 또한 세상을 창조한 최고신이라 할지라도)
- 雖曰尊天(수왈존천) 神魔梵釋(신마범석) 皆莫能勝(개막능승) 自勝之人(자승지인)

* 앞의 번역은 김달진 시인의 것이요, 괄호 속 뒤의 번역은 법정 스님의 것이다.
『법구경』  김달진  현암사  /  『진리의 말씀 - 법구경』  법정  이레

▶부처님 모신 곳을 대웅전(大雄殿)이라 하는 이유는?

대웅전은 말 그대로 ‘대웅(大雄)을 모신 집’ 이다. ‘대웅(大雄)’ 은 석가모니불에 대한 수많은 존칭 가운데 하나이다. 부처님이야말로 ‘영웅 중에서도 가장 큰 영웅이다’ 라는 뜻이다. 권력과 금력 그리고 무력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영웅이 아니라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이 세상의 진리를 밝힌 참된 영웅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 법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기 전에 자신 속에 깃든 그릇됨부터 다스렸다. 먼저 그 마심(魔心)을 항복받아 대웅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이것이 세속적 영웅과 출세간적 영웅의 차이점이다. 내 마음 속의 그릇됨을 다스려 스스로 진리를 깨달은 자, 그리하여 그 진리의 힘으로 고뇌하는 중생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자야말로 참된 영웅인 것이다. 

흔히들 법당에 모신 부처님이 어떤 부처님인지를 구별함에 있어 ‘부처님의 손 모양 - 수인(手印)’ 에 주목하는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 바로 마귀를 굴복시킨 후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을 증거하는 상징이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할 때 악귀의 유혹을 물리친 증인으로 지신(地神)을 불러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하였다는 내용에서 유래하였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결가부좌한 다리 가운데에 놓고,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늘어뜨리면서 다섯 손가락을 편 모양이다. 이 수인은 반드시 결가부좌한 좌상(坐像)만이 취하는 것으로 입상(立像)이나 의상(倚像)에서는 볼 수 없다. 

수하항마(樹下降魔) - 보리수 아래에서 마왕의 항복을 받고 깨달음을 얻다

혼자가 된 태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겠다.' 고 결심한 채 붓다가야의 우루벨라 마을 네란자라강가의 보리수나무 밑에서 선정(禪定)에 들었다.

이 때 마왕(魔王) 마라(Mara 일명 파순)가 '욕망', '감미로움', '성욕' 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세 딸과 함께 태자의 곁에 와서 방해하는데, 태자는 이들의 유혹과 방해를 물리치고 선정에 든 지 7일 만에 그토록 갈망했던 의문을 명료하게 해결하면서 드디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得正覺)를 이루었다.

부처님께서는 첫째로, 지난 전생에 일어났던 모든 것에 대하여 깨달으셨고 둘째로, 현세를 이루고 있는 모든 현상과 사물에 대해 이해하셨으며 셋째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이루는 원인과 결과의 사슬을 이해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이 이 생존을 윤회 속에서 고통받게 하는지를, 어떻게 하면 그 고통 속에서 탈피할 수 있는지를, 삶에 내재되어 있는 업의 덩어리는 무엇인지를,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를 확연히 깨달으셨다.

이제 그 분은 더 이상 태자 싯달타가 아니었다. 출가한 지 6년이 지나 그의 나이 35세에 몸은 비록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평범한 존재였지만 이제는 위대한 분, 큰 깨달음을 얻으신 분, 대웅이신 붓다가 되셨다. 인간이면서 인간을 초월한 분, 모든 생명의 초월자이면서도 그 생명의 싹 속에 의미를 주는 분이신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이제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신 싯달타 태자는 이제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게 되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우주의 진리를 밑바닥까지 들여다 본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신 까닭에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 해탈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중생 구제라는 새로운 목표를 고민하시게 된다.

예수님의 십가가상의 7언 - 이른바 <架上 七言> 중에서 제6언에 해당하는 ‘모두 다 이루었다’ 를, 나는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는 요한복음 16장 33절의 말씀과 같은 뜻으로 이해한다.(요한복음 16장 25-33절)  

25 이것을 비사(比辭-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요한복음 15장 19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예수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드렸던 그 막바지에 사탄의 세 가지 유혹을 받고 이를 물리치신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드셨을 때 마군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마침내 영원한 진리를 깨닫게 된 이야기와 너무도 일치한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 하신 말씀은 곧 부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가 진정 위대한 자’ 라고 천명(闡明)하신 바와 전혀 다름이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持論)이다.

▶논어(論語)의 <극기복례(克己復禮)>

顔淵問仁(안연문인), 子曰(자왈) 克己復禮爲仁(극기복례위인). 一日克己復禮(일일극기복례) 天下歸仁焉(천하귀인언). 爲仁由己(위인유기)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 顔淵曰(안연왈) 請問其目(청문기목). 子曰(자왈) 非禮勿視(비례물시) 非禮勿聽(비례물청) 非禮勿言(비례물언) 非禮勿動(비례물동). 顔淵曰(안연왈) 回雖不敏(회수불민) 請事斯語矣(청사사어의).

안연이 인에 관하여 여쭈어보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어느 날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게 되면 온 천하가 이 사람을 어질다고 할 것이다. 인을 행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지 남에게 달려 있겠느냐? 안연이 부디 그 세목을 여쭈어보겠습니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가 아닌 것은 보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듣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하지 말아라.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불민하지만 아무쪼록 이 말씀을 힘써 행하겠습니다.

  • ‘焉’ 은 ‘於是 / 於此’ 의 줄임말이다. 물론 앞에서 말한 ‘하루라도 극기복례 한 사람’을 가리킨다.

‘一日’ 을 ‘ 어느 날’ 이라 풀이하기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라고 풀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버리고 극기복례 하기가 힘든 일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공자가 또 다른 곳에서 <朝聞道면 夕死라도 可矣라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라고 한 말처럼 아주 간절하고 절박한 문제인 것이다.

▶맹자(孟子)의 <대장부(大丈夫)>

居天下之廣居(거천하지광거) / 立天下之正位(입천하지정위) / 行天下之大道(행천하지대도) / 得志與民由之(득지여민유지) / 不得志獨行其道(북득지독행기도) // 富貴不能淫(부귀불능음) / 貧賤不能移(빈천불능이) / 威武不能屈(위무불능굴) / 此之謂大丈夫(차지위대장부).

세상 한가운데 처하여 / 항시 바른 자리에 서고 / 넓고 큰 길을 가되, / 뜻을 얻으면 더불어 함께 가고 / 뜻을 얻지 못하면 나 혼자라도 가리라.  // 세상의 그 어떤 부귀와 빈천도 /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며 / 그 어떤 권력의 위협도 감히 그를 굽힐 수 없으니 / 이를 일컬어 대장부라 한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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