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잠들어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때에, 한 줄기 빛을 돌이켜 자신을 비추어 보면 …
외로운 등불 가물거리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고요하니
이는 우리가 비로소 편안한 잠에 들 때요,
새벽꿈에서 막 깨어나 만휘군상(萬彙群象)이 아직 움직이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가 비로소 혼돈 속에서 나올 때이다.
이때를 맞아 참된 마음으로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환히 비추면
비로소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자신을 옭아매는 오랏줄이요
정욕(情慾)과 기호(嗜好)가 모두 마음을 해치는 기계임을 알 수 있다.
- 螢然(형연) : 반딧불처럼 가물거림.
- 萬籟(만뢰) :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소리.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내는 소리. 籟는 원래 ‘구멍이 셋 있는 퉁소’ 를 말하나 전(轉)하여 바람이 구멍을 통해 나오는 모든 소리, 즉 ‘사물의 울림’ 을 뜻함. 賴는 ‘믿을 뢰’ 松籟(송뢰)는 ‘솔바람 소리’ 를 말함.
- 宴寂時(연적시) : 편안히 잠들 시간. 宴은 ‘편안함’ 으로 安과 같고, 寂은 ‘잠듦’ 으로 初(초) : 처음, 시작, 여기서는 ‘비로소’ 로 풀이하는 것이 좋겠다.
- ‘죽음’ 을 뜻함. * ‘宴寂(안적)’ 은 원래 불교 용어로 ‘입적(入寂)’ 과 함께 ‘거룩한 이(聖者)의 죽음’ 을 뜻한다.
- 曉夢初醒(효몽초성) : 새벽꿈에서 막 깨어남.
- 群動未起(군동미기) : 만물이 아직 움직이지 아니함.
- 混沌(혼돈) : 만물이 뒤범벅이 된 천지개벽 이전의 상태.
- 乘此(승차) :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이것을 올라타서’ 이니, ‘어떤 시점이나 사건을을 계기로 삼아서’ 라는 뜻이다. 즉 ‘이 기회에, 이런 계제(階梯)에, 이를 틈타서’ 등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 一念(일념) : 한 마음, 자기의 본심(本心).
- 廻光(회광) : 지혜의 빛을 자기 내부로 돌림, 자기의 본심을 돌이켜봄.
- 炯然(형연) : 밝게 빛나는 모양.
- 桎梏(질곡) : 몸과 마음을 묶어두는 구속(拘束). 桎은 발을 묶는 차꼬, 梏은 손을 묶는 수갑(手匣).
- 悉(실) : 모두.
- 機械(기계) : 마음을 해치는 복잡한 장치. 마음을 타락시키는 기계의 뜻임. 본체에 어긋나는 일을 쉽게 하거나 욕구를 유발하는 기틀.
- * 欲은 ‘하고자 할 욕’ 으로 ‘의욕과 의도’ 를 나타낸다면 재출자(再出字)에 해당하는 慾은 ‘욕망과 욕심’ 을 나타낸다. 물론 欲과 慾은 서로 통용하는 글자이나, 『채근담』에서는 주로 욕망을 나타내는 경우에도 慾을 쓰기보다는 欲을 쓰고 있다.
◈ 『장자(莊子)』 제물론(濟物論)에
南郭子綦(남곽자기) 隱几而坐(은궤이좌). 仰天而噓(앙천이허) 焉似喪其耦(답언사상기우).
- 남곽자기란 사람이 책상에 기대 앉아 있었다. 그가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쉬는데 멍한 모습이 정신이 나간 듯하였다.
顔成子游(안성자유) 立侍乎前曰(입시호전왈) 何居乎(하거호). 形固可使如槁木(형고가사여고목) 而心固可使如死灰乎(이심고가사여사회호). 今之隱几者(금지은궤자) 非昔之隱几者也(비석지은궤자야).
- 시중을 들던 제자, 안성자유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찌 몸이 마른 나무 같고, 마음은 타고 남은 재처럼 되신 겁니까? 지금 책상에 기대신 모습이 예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子綦曰(자기왈), 偃不亦善乎(언불역선호) 而問之也(이문지야). 今者吾喪我(금자오상아) 女知之乎(여지지호). 女聞人籟(여문인뢰) 而未聞地籟(이미문지뢰). 女聞地籟(여문지뢰) 而未聞天籟夫(이미문천뢰부).
- 남곽자기가 대답하였다. “그런 질문을 하다니 놀랍구나. 지금 나는 나를 잃었는데 자네가 그것을 알았는가? 자네는 사람의 퉁소 소리는 들었을 것이나 아직 땅의 퉁소 소리는 못 들은 것 같구나. 혹시 땅의 퉁소 소리는 들었을지 몰라도 하늘의 퉁소 소리는 못 들었을 것이네.”
이후의 문장이 더욱 중요하기에 오강남 선생의 번역을 여기에 옮긴다.
자유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감히 물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자기가 대답했습니다. “땅덩어리가 뿜어내는 숨결을 바람이라고 하지. 그것이 불지 않으면 별일 없이 고요하지만 한번 불면 수많은 구멍에서 온갖 소리가 나지. 너도 그 윙윙 하는 소리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산의 숲이 심하게 움직이면, 큰 아름드리 나무의 구멍들, 더러는 코처럼, 더러는 입처럼, 더러는 귀처럼, 더러는 목이 긴 병처럼, 더러는 술잔처럼, 더러는 절구처럼, 더러는 깊은 웅덩이처럼, 더러는 좁은 웅덩이처럼 제각기 생긴 대로,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 화살이 씽씽 나는 소리, 나직이 꾸짖는 소리, 숨을 가늘게 들이키는 소리, 크게 부르짖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깊은 데서 나오는 듯한 소리, 새가 재잘거리는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내지. 앞에서 가볍게 우우- 하는 소리를 내면, 뒤따라서 무겁게 우우- 하는 소리를 내고, 산들바람이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하지. 그러다가 바람이 멎으면 그 모든 구멍은 다시 고요해진다. 너도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 구부러지거나 살랑살랑 흔들리기도 하는 것을 보았겠지.”
자유가 말했습니다. “땅이 부는 퉁소 소리란 결국 여러 구멍에서 나는 소리군요. 사람이 부는 퉁소 소리는 대나무 퉁소에서 나는 소리인데,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란 무엇입니까?”
자기가 대답했습니다. “온갖 것에 바람을 모두 다르게 불어 넣으니 제 특유의 소리를 내는 것이지. 모두 제 소리를 내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 소리가 나게 하는 건 누구겠느냐?”
- 『장자(莊子)』(오강남 풀이, 현암사) 중에서
◈ 이른바 회광반조(回光反照/廻光返照)란
- 불교의 개념으로서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으로 각 개인은 자신의 본심, 즉 참나를 다른 데서 찾으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찾으라는 말.
불교의 선종에서 ‘자신의 욕망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내면으로 돌이켜서 자성을 직시한다.’는 뜻으로서 선을 수행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임제(臨濟) 스님은 깨침이 무엇인지 묻는 제자에게 “너의 묻는 말 속에 문득 회광을 반조할 수 있으니(즉, 너의 마음의 빛을 돌이켜 비추어 보면 거기에 깨침의 길이 들어 있으니) 따로 구할 곳이 없다. 네 몸과 마음이 바로 부처와 조사인 것을 알았다면 따로 더 할 일이 없다. 그것이 바로 도의 자리다.”라고 말하였다. 『임제록(臨濟錄)』을 보면 “그대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스로 돌이켜 비추어 보라. 다른 데서 구하지 말지니, 그대 몸과 마음이 조사님이며 부처님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爾言下便自回光返照, 更不別求, 知身心與祖佛不別).”라고 되어 있다.
※ 『채근담』은 비교적 짧은 문장으로 굳이 글의 종류를 따지자면 잠언(箴言)이라 할 수 있는 글이다. 가장 짧은 문장(전집 제144장)이 전체 13자로 된 것이고 가장 긴 문장(후집 제106장)은 전체 75자로 된 것이 있다. 그리고 이 장은 전체 63자로 된 비교적 긴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너무나 시적(詩的)인데 이러한 문장은 명청(明淸) 시대에 유행하였던 청언소품(淸言小品)의 형식으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아포리즘(aphorism)에 가까운 에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전(出典)이나 전고(典故)가 없는 이런 문장에서 우리는 저자 홍자성이 추구한 인생의 진면목(眞面目)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본장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박남수 시인의 <아침 이미지> 라는 시의 한 구절이었다.
아침 이미지 - 박남수(1917~1994)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 낳고, 꽃을 낳는다. / 아침이면 /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 무거운 어깨를 털고 /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 아침이면, / 세상은 개벽(開闢)한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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