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어느 수화통역사의 표정

에세이 제1182호(2020.12.12)

이득수 승인 2020.12.11 12:16 | 최종 수정 2020.12.11 12:44 의견 0
사진1. 코로나19브리핑을 하는 정은경질병관리청장(이미지)
코로나19브리핑을 하는 정은경질병관리청장과 수화(수어)통역사 [연합뉴스TV 캡쳐]

날마다, 매 시간 뉴스마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예방수칙 등을 방송하다 이제 모든 방송국의 프로명이 <코로나19 예방 저녁 9시 뉴스>식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겪는 마스크착용의 불편, 각종 모임과 집합행위의 금지, 심지어 정세균(하필 이 시점의 총리이름이 세균(細菌)인지)총리가 
“이번 추석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되도록 여행을 삼가고 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음식물을 취하는 행위를 피해야 하는 만큼 이 총리의 담화나 이름을 팔고라도 고향의 부모나 친지방문을 안부전화나 선물로 대신하고 집에서 휴식하기 바랍니다.”

하다못해 국무총리가 개인의 사생활과 이동까지 간섭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형편이 이 지경에 이르는 사이 일반국민들의 불안이나 불편은 오죽했겠습니까? 식당이나 재래시장에 손님이 끊어지고 지방별 특산물판내, 향토축제 같은 각종행사가 끊어지니 좀 큰 이벤트회사나 사회자는 물론 부지런히 하루 서너 건을 뛰어야 하는 무명가수들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또 새로운 사업은 물론 아파트나 주택의 건설은 물론 소소한 집수리나 월동준비조차 돈을 안 들이니(그 전에 사람접촉을 피하기 위해) 건설업에 종사하는 소위 노가다인부는 물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인력시장의 노동자는 무얼 먹어야 하고, 모두들 마음이 얼음장 같이 얼어붙어 가뜩이나 띵가띵가 놀 기분이 아닌데 단란주점, 감성주점, 유흥업소는 물론 골목입구 조그만 식당 같은 모든 요식업소의 영업을 제한하거나 금지시키니 문 닫은 업주가 손해를 입고 종업원이 일자리를 잃은 것도 그렇지만 갈비집의 불을 피워 식탁에 나르고 빼며 철판을 닦고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 대학생이나 모자가정 어머니는 어디서 일용할 양식을 얻어야 할지... 거기다 졸지에 직장을 잃는 실직자가 다시 일할 직장은 어디에 있고 서른이 넘도록 스펙과 자격증 따기에 아무리 열을 올려도 취업한번 못 해본 취업준비생은 또 어떻게 하고...

거기다 제가 사는 명촌리 같은 시골에는 대부분 노인들, 특히 혼자 살아가는 할머니들은 마을 경로당이 문을 닫으니 하루 종일 좁은 집안에 틀어박혀 사느라 이렇게 사는 것은 죽은 것만도 못 하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70이 넘도록 살아남은 제 두 누님과 제가 아내와 함께 밥을 먹으려 해도 조카들의 눈치를 보며 숨어서 만나다시피하니 형제남매가 모이는 것도 밥 한 끼를 먹는 것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요즘은 내남없이, 심지어 시골의 팔순 노인들까지 하루하루 코로나19 확진자가 얼마나 발생하며 혹시 자기가 사는 지방에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그 확진자가 주요생활무대인 <언양장>이나 <고속철 울산역>이나 종합병원 <서울산 보람병원>에 들리지는 않았는지 매일 일희일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진2. 코로나19 브리핑을 수화통역하는 여성수화통역사 사진3. 경질된 박능후보건복지부장관 사진
코로나19 브리핑하는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장과 수화(수어)통역사

그렇게 전 국민이 뉴스의 코로나 확진자 발생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이 하루에도 여남은 차례 인터뷰를 하는 방역관계자, 그 중에도 직접 화면에 나와 브리핑을 하다 어느 새 아나운서보다 더 자주 보는 관계자가 여럿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시골할머니들에게 까자 친숙해진 방역관리는 

누이처럼 아주 편안한 얼굴에 희끗희끗하게 머리가 세어 얼굴을 보는 자체로 엄청난 고생이 눈에 보이는 정은영 본부장(이제 질병관리청장으로 승진), 또 어쩐지 약간 어눌한 말투와 표정이 묘한 동정심을 일으키는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언제 어디서나 티끌만큼도 흐트러짐이 없는 <범생>스타일의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 등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뉴스를 계속보다 보니 어느 새 그 분들의 확진자 발표나 예방수칙, 당부말씀시간에 그 옆에서 수화통역을 하는 통역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한 대여섯 명 수화통역자 중에서 제가 제일 관심을 갖는 사람의 키가 크고 단발머리를 한 대체로 평면적 얼굴에 눈빛이 깊숙한 50대 여자 통역사입니다. 

국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청각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 한마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녀는 시종일관 매우 심각하고 다소 놀란 얼굴로, 때로 방금 울음이 터질 듯 한 애처로운 표정으로 어떻게든 그 의미를 전달하려 사력을 다하는데 거기에는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의 눈빛(롯데의 외야수 손아섭 같은)을 뛰어넘어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그 무엇, 다시 말해 인간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세모가 되어 올해의 인물을 뽑을 때 저는 대통령이나 조국, 윤석열, 추미애 같은 정치권의 인물보다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1번으로 뽑히고 그녀가 더욱 건강히 지내기를 빌어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2번은 생머리 여자 수화통역사입니다.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함에 있어 노벨 평화상을 타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 여러분들도 유심히 그녀의 수화통역을 한번 주의해 살펴보기 바랍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경질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읍니다. 약간 어눌한 목소리와 겁먹은 표정이지만 늘 지극정성으로 국민들을 걱정했는데 정치적 판단으로 물러가게 되는 것이 너무 아깝습니다. 늘 국민을 위해 염려하고 수고하신 분, 그의 노후가 편안하기를 빕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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