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명촌별서의 김장

에세이 제1185호(2020.12.15)

이득수 승인 2020.12.14 15:32 | 최종 수정 2020.12.15 11:53 의견 0
 사진1 손녀딸 현서까지 어울려 김치를 치대는 모습
 손녀딸 현서까지 어울려 김치를 치대는 모습

올해도 명촌별서에는 김장배추 180포기에 무우짠지와 갓김치 등 약 40통의 김치를 담아 우리 아들딸과 장모님을 모시고 있는 막네처제와 처남 그리고 둘째 처제등 여섯 집의 김장을 했습니다.

이 잡단김장의 시초는 우리가 명촌별서를 짓고 넓은 장독간에 수돗물이 잘 나오는 공간이 있자 눈치 9단의 둘째처제가 물 좋고 공간이 넓은 언니집에서 합동김장을 하자고 해서 2015년부터 올해 여섯 번째 김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의 의도와 달리 자꾸만 문제가 생기고 아내에게 과부하가 결려 보통일이 아닙니다. 일이 이렇게 커진 데는 첫째 아내의 김장김치 세 종류가 좀 특별히 깔끔하고 담백하고 시원해 제 동장시절의 여직원을 비롯해 지인들에게 나눠주면 우리 집 김치부터 먹고 혹시 더 얻을 게 없는지 눈치를 볼 정도였답니다. 인도에 간 아들은 물론 부산신평의 딸 사돈과 서울의 아들사돈까지도...

그런데 우리 장모님슬하 페밀리들이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아서 그런지 슬하 자손들이 모두 배추김치에 중독이 되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김치 통에 서너 통씩 가져가다 요즘은 7,8통씩 가져가는데 그 통이 해마다 자꾸 커져가니 그 양이 엄청난데 어느 집 아이들은 매일이다 시피 김치 볶음밥을 좋아하는데 꼭 제 큰이모의 김치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또 우리처남 집은 하루에 김치찌개를 먹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니 아무리 많이 줘도 초봄이면 김치가 떨어져 처남이 누님집을 힐끗 거립니다. 그리고 요즘아이들이 출출할 때 라면을 즐겨먹는데도 꼭 제 이모의 김치만 찾고.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태가 더 심각해진 것은 우리 장모님의 기억력, 판단력이 떨어지고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아무데나 끼어들어 무슨 일이나 자신이 다 하려드니 집안전체가 공포증에 걸렸는데 기가 찬 것은 현재 장모님을 모시는 막내처제와 큰 언니인 우리 집을 뺀 처제나 외아들 처남은 장모님이 앓는 치매에 대해 그리 심각하지 않은 눈치고심이 없고 어쩌다 한 번씩 정신이 맑을 때를 기준으로 생각해 무슨 일이 있으면 같이 사는 막내가 또 아니면 집 너른 큰 누나가 감장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진2. 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감칠맛이 나는 김장거리
 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감칠맛이 나는 김장거리

얼마 전에 돌아가신 우리 둘째누님은 말 안 하는 치매가 와서 모시기가 쉬웠는데 우리장모님은 아무데나 끼어들고 끝없이 같은 말을 반복해 사람의 진을 뺍니다. 거기다 하필이면 욕심치매가 생겨 감장을 하면 막내딸의 외손주들이 김장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고 외아들은 형편이 어려워서 더 많이 주어야 된다면서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자꾸자꾸 챙겨담아 챙겨 본가인 우리 집과 딸, 인도의 아들, 깔끔한 둘째처제 네 집 몫을 가져가는 것 보다 두 집에서 가져가는 양이 두배 가까이 많지만 도무지 말릴 수가 없습니다. 젊어서부터 직장에 다니느라 세상물정에 어둡고 큰딸과 큰사위에게 가정사전부(처제 셋, 처남1의 진학, 취직, 결혼과 살림내기)을 다 넘기고 살아서 그런지 음식솜씨나 취미도 없어 그저 잘 사는 큰 딸집서 가져가 막내딸이나 아들을 주는데 인이 박혀 어떤 때 제 아내와 장모가 위치가 뒤바뀐 것, 장모님이 친정에서 온 딸처럼 자꾸만 무언가를 챙겨가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늙고 병든 저는 장모님이 치매에 걸린 것도 힘든데 너무 고약한 치매에 걸려 자신의 제1보호자로 생각하는 이 큰 사위는 죽을 지경입니다만 장모님은 김치 한 상자를 더 챙기는데 그저 일희일비할 뿐이라 기가 찹니다.(저는 제가 장모님 앞서 죽을까 늘 걱정이 태산인데 혹시 제가 먼저 죽기라도 한다면 저 난감한 할머니를 누가 모시고 아내 혼자 얼마나 힘들지 기가 막힙니다.

김장을 다 마치고 돼지 수육으로 점심을 먹으며 어디에서나 대환영인 아내의 김치가 어디 식(式)인지,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부산에 오래 살아도 부산식이 아니고 언양에 이사를 와도 언양식이 아닌 특별한 맛에 대해 서로 토론하다 그게 아내가 어릴 때 자란 강원도 홍천과 양평, 포천(장인어른이 직업군인이었음)이라 어려서 입맛이 형성될 당시(국민학교 졸업때까지)의 맛, 즉 <경기도 김치 맛>이라는 결론이 나오니 모두 인정하는 눈치였습니다. 거기다 장모님이 군인가족으로 해마다 부대김치를 담으로 가고 큰 딸인 제 아내가 따라가 양념이 적고 시원한 군대김치 맛이 가미된 것도 같고... 하여간 팔불출에 속할망정 저는 제 아내의 김치에 자부심이 가득하니 누구든 겨울철에 명촌별서를 방문하면 시식가능 합니다. 

사진3. 나란히 챙겨놓은 휴대폰과 장갑들
나란히 챙겨놓은 휴대폰과 장갑들

그러나 이 보기 좋은 대가족의 김장은 올해로 마감이 되었습니다. 우선 요즘 세상에 이렇게 무슨 잔치처럼 김치를 담는 집도 없고 노인네들 일 시키고 당일이나 전날 저녁에 소풍 오듯이 와서 술밥 간에 잘 먹고 그냥 바이바이를 하고 떠나는 환갑이 다된 철없는 동서와 처제와 처남들도 세상물정을 알아야 하고 하필이면 욕심의 치매에 걸린 장모님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고 더더욱 앉고 서기도 힘든 제 형편에 한 15명이 1박2일로 북적이는 것도 답이 없다고 아내가 매정하게 자르고 저도 말없이 동의했습니다.

벌써 결혼 44주년이 지나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처부모 대+신 참 하느라고 했는데 괜히 마음 상하는 일은 끝이 없고 손아래는 여전히 큰 언니와 자형만 믿는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린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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