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의 문화칼럼] ‘동래파전’을 통해 보는 부산 이야기

강희철 승인 2020.03.18 18:42 | 최종 수정 2020.04.11 15:24 의견 0
동래파전
동래파전. [사진=강희철]

# 부산의 전통적 음식은 무엇인가?

이전에 부산발전연구원에서 마련한 2010년 교양학 총서 기획에서 필자와 동료 학자들은 부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그래서 공저로 내게 된 책이 『부산의 음식 생성과 변화』(부산발전연구원, 2010)이다. 물론 국가기관의 교양총서이기에 어디에서 팔고 있진 않으나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에서 묵묵히 책 냄새만은 풍기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여기서 부산의 가장 전통적인 음식이라 주장할 수 있는 책의 맨 첫 꼭지인, ‘동래파전’ 부분을 맡았던 나는 이 전(煎)에 대해 연구할수록 당혹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부산에서 근대 이전에는 전통적인 음식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다고 하지만 동래파전조차 실제로 역사서에 기록된 음식이 아니라, 구전(口傳)을 통해 전해져온 사실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임금에게 진상할 정도로 정말 진귀하고 독특한 부산(동래)의 요리였다고 말이다. 그래서 부산 음식의 시작과 그 이야기는 먼 과거를 추슬러 올라갈 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부산음식에 대한 앞의 공저 책의 요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유추할 수 있다시피 역사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는 정말로 부산만의 특별한 전통음식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국가의 변방지역에다가 역사로만 보아도 왜란에서 식민지 시기까지 부산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거나 기억하기에 어려운 현실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동래’라는 이름이 이 지역의 이름에 부합했지만, 근대이후 왜관의 근처였던 조그마한 부산포가 매립되어 부산항으로 변화한 상징성이 ‘부산’으로 변한 것도 전통성의 문제에서 우리가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의 음식은 혼종적이다. 어묵과 복국, 초밥 등이 일본과 혼종된 우리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제 어묵과 초밥, 복국도 근대 이후에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무수한 변화를 겪었기에, 전통음식과 다름없이 생각할 수 있다.

# ‘동래파전’ 또한 혼종의 역사를 담고 있다

동래파전의 유래는 동래할매파전 <옥호>의 전통 음식점 주인의 구술과, 양반가문 후손들이 재실음식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상류층 음식으로 벚꽃이 피기 전 초봄의 계절음식으로 과거 양반가문에서 즐겼던 음식으로 추정된다.

이 음식이 초봄에 만들어져야 했던 것은 새해 초에 자란 조선의 쪽파(실파)로 향긋한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산, 들, 강, 바다에서 자란 각종 재료들을 가지런히 정렬한 쪽파위에 놓아 부쳐 먹는 것이 동래파전이 보여주는 화려한 모습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원래의 동래파전은 바삭바삭하지 않는 식감을 지닌다. 왜냐하면 찹쌀을 사용하여 부쳐내기 때문이다. 거기에 조개 등의 해산물이 들어가 있는 전이기도 하기에 간장이 아닌 초장에 찍어 먹어도 요리의 풍미가 살아난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전통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전이 바삭바삭하지 않아 실망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전통성’은 말 그대로 시대를 앞서 가지 못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만 알아도 우리의 입맛으로 과거를 쉽게 재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동래파전은 식민지 초기에 사라질 뻔하다가 1930년대 동래에 고급주점에서 술안주로 이용하게 된다. 과거 동래파전의 맛을 기억하고 있던 관부의 기생들이 이를 유흥음식으로 다시 개발해낸 것이다. 이후 부산에 많은 등산로가 개발되고 시민들의 휴식처가 생기면서 동래파전은 또 한번의 세월의 부침을 겪는다. 홍합살과 다진 육고기를 파와 같이 조리해 먹는 간단한 시민의 음식으로 변화된 것이다.

# 전 세계 속에 ‘부산’의 이야기를 마주시키려면?

지금의 끔찍한 상황을 소재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껄끄럽긴 하지만, 부산의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만 보더라도 국가의 변두리 임에도 한국의 남부 지역 중에서는 부산의 도시가 가장 잘 발전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부산은 항구 도시에다가 앞서 동래파전의 식재료를 이야기 한 대로, 산, 들, 강, 바다가 다 펼쳐지는 수려한 자연환경의 혜택을 받고 있는 도시이다. 과거 원시인들이 조개 무덤을 부산지역 근처에서 많이 쌓았던 것도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의 동래파전의 모습으로 지금의 부산을 스토리텔링 해 나간다면, 과거 국가의 변두리에 묻혔던 이 천혜의 자연조건이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바다’ 이외에 다른 요건들을 잘 부각시키지 못하는 부산의 모습이 안타깝다. 스토리텔링의 OSMU(One Source Multi Use)에서 진짜 원천의 소스(Source)라 할 수 있는 자연의 조건들도 우리는 바다를 강조하는 부산만큼 다른 조건들을 눈에 띄게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강희철
강희철

이 글의 주제가 되게 된 동래파전만 살펴보더라도 우리가 이 ‘동래파전’이라는 요리의 훌륭함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예를 들어 ‘동래파전’이 전통적인 명칭임에도 어떤 이들은 이를 해물파전이라던가, 오히려 더 나아가 동래해물파전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전 세계는 콘텐츠의 흥미를 돋아 줄 다양한 스토리텔링 거리를 찾고 있다. 여기에서 원천이 되는 삶의 역사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기록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 속의 부산은 그야말로 그냥 전 세계의 것들이 혼종되어 있을 뿐인 부산이 될 것이다.

동래파전을 세계 속의 음식으로 인지하고 그 특별함을 살펴보더라도 해양도시들이 갖고 있는 음식의 문화유산과 닮아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해양도시 중에 이탈리아나 일본의 전통음식과 비교하자면 피자, 오코노미야끼 등과 동래파전이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동래파전을 우리 부산의 지역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 그리고 세계적인 해양도시들의 화려한 음식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지금, 산, 들, 강, 바다로 더 화려해 질 수 있는 다양한 부산의 스토리텔링을 마주하게 되었으면 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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