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32)녹차 씨 단상(斷想)

조해훈 승인 2019.10.30 09:43 | 최종 수정 2019.11.17 10:26 의견 0
②필자가 차산에서 차씨를 따고 있다.
차산에서 녹차 열매를 따는 필자.

낫으로 차나무를 덮고 있는 잡풀과 훌쩍 커 누렇게 쇠어버린 고사리를 걷어낸 후 나무에 조금씩 달려 있는 녹차 열매를 딴다. 열매 껍질을 벗기면 작은 은행열매 모양의 녹차 씨가 나온다. 누군가는 속절없는 시간을 보낸다 생각 하겠지만, 이 또한 내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 움큼의 시간이다.

열매가 열리지 않은 나무가 더 많다. 지난해보다 녹차 열매가 적게 달린 것 같다. 인기척 하나 없는 산속, 저 아래 화개동천의 물빛이 뒤집는 물고기의 뱃살처럼 가끔 반짝거린다. 바람은 나무나 바위나 필자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하나의 미물인양 외면한 채 지나간다.

지난해 소주병 하나 분량의 녹차 씨를 짜 마셨다. 그 정도의 양이면 녹차 씨를 저울에 달았을 때 무게로 대략 3, 4kg이다. 녹차 씨 기름은 이곳 차의 본향인 화개골에서도 아주 귀하다. 필자처럼 야생으로 키우는 산녹차에서 그나마 차 열매가 제법 열리지만, 잎차를 생산하느라 기계로 땅에 가깝게 바짝 잘라버린 녹차나무에서는 녹차 씨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차를 만들어도 잘 팔리지 않는 데다 고령화 탓으로 점점 일손이 줄어 차잎을 따 직접 차를 만들기보다 잎차용으로 kg에 얼마씩 받고 제다공장 등에 파는 차농가들이 느는 게 현실인 것이다.

차나무에 열려 있는 차씨.
녹차열매.

필자의 2남1녀 형제들은 최근(2019년 10월14일 새벽2시33분·음력 9월16일)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이 잔설처럼 흩어졌는지, 아니면 저녁 어스름처럼 점점 깊어지는지 아직 저만치 있는 것 같다. 슬픔이, 눈물이 서서히 제 몸 밖으로 밀려나오듯 쏟아져 내리려면 시간이 좀더 걸릴지 모른다. 우수수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길을 걷는데, 눈도 없이 마른 차가운 겨울 길에 서 있는데, 아래채 온돌방의 깊은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있는데 느리고 낮게 그 슬픔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필자는 장남이라 아버지를 여윈(음력 1994년 10월9일) 후로 가장으로서의 마음을 무겁게 갖고 살아왔다. 남동생(63년 생)과 여동생(66년 생)도 나이가 쉰은 넘었지만, 이번에 어머니 상을 치르면서 필자보다 더 황망한 심경으로 마음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소리없이 모든 것이 주저앉았을 지도 모른다. 동생들에게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오래도록 남아 부지불식간에 울컥, 목이 멜 것이다.

해마다 손목과 손가락이 아프도록 거머쥐고 낫으로 잘라내도 다시 돋아나는 억새의 허연 꽃이 가을 햇살에 안겨 조는 듯 머리를 끄덕이고 있다. 저 아래 윤도현 어르신네인가, “컹컹” 개짖는 소리가 산을 타고 올라온다. 필자의 머리카락은 점점 더 희끗해지고 두어 달 가량 지나면 환갑이다. 나무에 벌레들이 낸 구멍들이 새삼스레 눈에 잘 들어오는 것처럼 살아갈수록 세상에는 새로운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고 신비롭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광활한 우주와 자연, 인간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다 깨우치지 못한다는 말이 생긴 것일지도 알 수 없다.

오후 4시반쯤 되니 산에 어스름이 깔린다. 저 위 차나무가 몸을 뒤채며 꿈들거리는 것 같다. 멧돼지가 숨을 씩씩거리며 튀어나올 것인가. 이제 부모를 다 여윈 장남이 어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하며 두려움을 가질 것인가.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여막을 짓고 3년 상은 치르지 못할지언정 잡초 무성한 산속이지만 어찌 세상의 일에 무서움증을 느낄 수 있겠는가. 허리만큼 감싸고 있는 넝쿨이 누렇게 변색되고 있는 바위가 필자의 마음을 읽어보려는 듯 미동도 않고 있다.

③필자가 따온 차씨를 채반에 늘어 놓고 있다.
녹차 열매를 채반에 말리는 필자.

필자뿐만 아니라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여린 내면을 갖고 있다. 필자가 신고 있는 흰장화 옆으로 이제 막 노랑꽃을 피우는 작디 작은 이름 모를 풀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 마을에서 올라오는 아궁이 불의 연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설픈 슬픔이 터져나오는 것인지, 눈이 매운 탓인지 눈가가 조금씩 뜨거워진다.

어둠이 벌써 나를 에워쌌다. 마을 뒤 목압산의 맨 위쪽에 위치한 차밭으로 오가는 가파른 산길은 오로지 필자의 발걸음으로 낸 것이다. 깜깜하여 길이 묻혀버려도 초보 산꾼과는 달리 필자의 발이 육체적 감각으로 알아낸다.

오늘 필자가 열매를 따느라 만진 차나무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주파를 맞추어도, 귀를 쫑긋 세워도 해독할 수 없는 문장들을 새겨놓았다. 한 편 한 편에 삶의 바닥에까지 가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음률 섞인 암호들을 숨겨놓은 것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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