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분위기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데다 4·15총선이 치러져 사람들마다 설왕설래하는 등 다소 어수선하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도 조선시대의 당쟁이니 유배니 하는 무거운 주제를 버리고 이색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조선시대에 여성 선각자라고 할 수 있는 사주당 이씨(師朱堂李氏·1739∼1821)가 쓴 조선시대 태교에 관한 최초의 백과사전인 『태교신기(胎敎新記)』에 대한 글이다.
이 책은 이 씨가 1801년에 임신 여성들에게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한문으로 지은 것으로, 1938년에 경상북도 예천에서 1권1책으로 간행되었다.
그러면 우선 이 씨가 누구인지 살펴보자. 그녀는 1739년(영조 15) 충청북도 청주시 서면에서 통덕랑 이창식의 딸로 태어났다. 당시 딸에게는 공부를 시키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였는데, 그녀는 성장하면서 『소학』, 『주자가례』, 『여사서』 등을 학습하였다. 이 씨는 18세에 부친상을 당하였고, 25세 때 현감인 유한규의 넷째 부인이 되었다. 34세 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서 아들 유희(1773~1837)를 낳았다. 이 씨는 1780년 모친을 여의었으며, 3년 후에 남편이 죽었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꽤 장수를 한 편이었다. 83세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러면 이 씨는 왜 이 책을 짓게 되었을까? 그녀는 역시 여성 선각자답게 사람은 하늘로부터 받은 천품은 같지만, 어머니 뱃속에 있는 기간 동안 품성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로 인해 태내의 10개월의 교육이 출생 후의 교육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태교신기를 저술한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승이 10년을 가르쳐도 엄마가 10달 동안 뱃속에서 잘 가르친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특히 임신한 여성의 심성과 태아의 환경을 강조하였다. 이런 태아 교육은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유아교육학계에서는 여긴다.
이 책은 원래 한문으로 저술되었는데, 아들인 유희가 1801년(순조 1) 음의 뜻과 언해를 붙여 간행하였다. 번역문에 나오는 모든 한자에는 한글로 음을 달았는데, 한 문장씩 떼어서 먼저 한글로 토를 달고, 이어서 우리말로 옮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음운학자로 한글을 연구하여, 훈민정음의 자모를 분류·해설하는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조선시대에 가치가 큰 한글 연구서인 『언문지』 등을 저술하였다.
유희는 11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 이 씨의 가르침을 받았다. 53세에 과거에 세 번 응시하여 생원시에, 57세에 황감제(黃柑製)에 합격하였다. 황감제란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제주도 귤이 진상되어 올라오면 성균관 유생들에게 귤을 나눠주며 치른 특별 제술 시험을 말한다.
태교신기는 2부작으로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태교의 이치를, 제2장에서는 태교의 효험을 설명하였고, 제3장에서는 옛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제4장에서는 태교의 구체적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4장은 이 책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자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으로 태교의 구체적인 방법을 언어생활·행동·식생활·금지사항 등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나머지 장에서도 옛 사람들이 행한 일이나 관계 조항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남편에게도 태교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여 부인에게 가르쳐 주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 이 씨는 임신부용 식품으로 최상의 것은 무엇이라고 여겼을까? 그녀는 잉어를 최상으로 쳤다. 잉어는 민물고기 중에서 가장 생김새가 뛰어나고 어류를 대표한다고 해서이다. 옛 이야기 속엔 잉어가 용왕의 아들로 자주 등장하며, 잉어꿈을 태몽으로 꾸면 귀한 아들이 태어난다는 속설이 있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임신부의 금기음식으로는 모양이 바르지 않은 과일, 벌레 먹은 것, 썩어 떨어진 것, 익지 않은 풀, 제철이 아닌 것, 빛깔·냄새가 좋지 않은 것 등을 꼽았다. 또한 고기를 밥보다 많이 먹어서는 안 되며, 율무·비름·메밀은 태아를 떨어뜨린다고 주의하였다.
즉 이 씨는 태교신기에서 태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태교를 해야 하는 이유와 태교의 구체적인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과는 시대가 달라 태교의 영역과 방법 등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임신부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가히 조선시대의 태교 바이블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책의 내용은 이 씨가 읽은 경서와 사서, 의서 중 태교에 관한 것을 종합하고, 실제 4남매를 낳고 키우며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썼다는 것이다. 태교에 관한 실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이 담겨 있다. 태아 교육에 있어 엄마의 역할뿐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도 중시했다.
태교신기는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여학교 교재로 사용될 정도로 태아 교육의 지침서였다. 또한 이 책의 언해본은 한글 연구에서 특히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1938년에 나온 석판본의 경우 내용을 모두 현대어로 바꾸어 놓아 19세기 초기 한자음과 근대 국어의 음운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유아교육학계에서는 “태교신기의 철학과 태교법은 현재 그대로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한편 충북 청주시에서는 이곳에서 태어난 사주당 이씨가 집필한 태교지침서인 태교신기를 지역의 관광개발 사업과 접목해 태교에서 영유아교육까지 아우르는 ‘사주당 태교랜드’를 2023년 준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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