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의 '일상 속 기획창의학' (203)아직도 막강한 바우하우스 영향력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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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14:26 | 최종 수정 2020.08.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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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 22. 아직도 막강한 바우하우스 영향력
독일 데사우에 있는 바우하우스 학교건물은 1926년에 완공되었다.
평범해 보인다.
왜 평범하게 보일까?
우리가 다녔던 학교 건물들은 거의 모두 이 모양을 원형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100년 후 2008년에 개교한 초등학교 건물도 바우하우스 건물과 비슷하다.
1907년 설립된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 출신들이 1919년에 세운 조형학교인 바우하우스는 1933년 폐교할 때까지 고작 14년 동안 존재했었다.
교수 33명 학생 1250명 만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바우하우스가 현대식 디자인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나치의 폭압을 피해 바우하우스에 몸담았던 인사들은 널리 흩어졌다.
대표적으로 3대 교장이었던 미스(Mies van der Rohe 1886~1969)는 미국으로 갔다.
우리나라 최초 고층빌딩인 삼일빌딩의 원형이 되는 시그램빌딩 등을 뉴욕 맨하탄에 세웠다.
현대건축의 분수령인 커튼월(Curtain Wall) 공법도 그의 작품이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함(Less is more)과 섬세함(God is in the detail)이었다.
당시 기획창의적이었던 바우하우스적 디자인 경향은 평범해졌다.
너무도 실용주의 및 기능주의에 충실해 몰개성 획일적으로 보인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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