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⑪ 나사니까
손현숙
승인
2021.07.10 09:23 | 최종 수정 2021.07.12 09:51
의견
0
나사니까
손현숙
마주 오던 사람하고 살짝 한 번 부딪쳤다
오래 쓰던 안경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쪽 다리 떨어진 안경
그만 버릴까, 주저하다 근처 안경점에 들렀다
안경점 남자는
이게 풀렸군요, 하면서
나사 하나를 돌려 박아 주었다
참, 간단하다
이렇게 감쪽같을 수도 있네요!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나사니까요, 한다
꼭꼭 조인 다음 보는 세상은
환했다
말짱했다
언제부터 너는 내게 천천히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풀리기 시작했던 거다
나사니까,
- 2007. 현대시학 8월호 -
<시작메모>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다보면 뛰어가는 슬픔이 보이기도 한다. 물속에서는 바위도 가볍게 뜨는 법. 부력의 힘을 이기고 바닥을 치다 보면 다시 물 위로 솟구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내게는 어려운 일이 타인에게는 아무 일이 아닐 때가 있다. 누군가 어깨를 치고 달아났던 기억. 그러나 주저앉아 영영 일어설 수 없다면 당신은 당신이 아니다. 캄캄한 밤을 풀어 새벽이 발등을 밝히듯, 풀어진 나사는 꼭꼭 조이면 다시 새것이다. 일어서라, 당신! 그대의 손으로 그대를 말짱하게 조여 세상과 맞서라, 아직도 하늘은 푸르고, 저기 누가 환하게 오고 있다.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