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⑬ 커피는 너무 쓰고 마카롱은 너무 달다

손현숙 승인 2021.07.23 22:31 | 최종 수정 2021.07.24 17:43 의견 0

커피는 너무 쓰고 마카롱은 너무 달다
                                               손현숙

 

비음 섞인 목소리로 너는 나에게
불쌍하다고 말한다 안전선을 무시한
선전포고다 얌전하게 가위로 오려서 버린
우정이다 다정하게 명치를 쪼아대는
새의 부리다 단도로 직입 하는 명랑한
일갈이다 벼랑에서 등 떠다미는
손가락이다 차라리 쌍욕을 얻어먹고 싶은
열망이다 꺾이면서 또 꺾이는
무릎이다 주먹 쥐고 빠져나가야 하는
젖 먹던 힘이다 멈추지 않는 치욕의
수전증이다 칼을 물고 뛰어내리는
자진이다 일보 삼배로도 닿을 수 없는
불상佛像이다 나를 곱게 들어서 부숴버리는,
세상에서 내가 아는 최고의 욕이다

- 문학에스프리, 2019. 여름호 / 문파, 2020. 여름호 재수록

<시작메모>
사람의 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주 허름한 복장의 사내였다.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의 한 마디 일갈은 오래도록 나를 지배했다. 무심결에 튀어나왔던 “불쌍하다”에 그의 반응은 “차라리 쌍욕을 주세요”였다. 털썩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감히 나 따위가 동정해도 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 불쌍하다는 말은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시를 쓰면서 화자 우월주의에 대한 위험도 생각한다. 누가 누구를 불쌍하다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불쌍, 이라는 말.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위태롭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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