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17) 심종록, 벗어? 버섯!

손현숙 승인 2021.08.20 20:29 | 최종 수정 2021.09.04 11:17 의견 0

노란다발버섯과 별
                        심종록

-별들 소유할 수 없기에 내 것이 아니기에
더 아름답고 그립고 탐나고 때로 애틋해지는 존재들 -

 

는개 내리는 이른 새벽의 우물 속은
빨갛게 루즈를 칠하고 있는 입술 같고
터널을 향해 달리는 늦은 기차 같고
기차를 타고 흔들리다 졸다
문득 깨어 덜컹거리는 유리창 비춰 보이는
낯선 얼굴 같고 헝클어진
머릿결 같고
등받이 의자에 불편스레 기대 다시 감은 눈 같고
유년의 봄눈 내리던 날 피던 동백꽃 같고
떨어져 구르던 꽃잎 같고
이제는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 습관적 귀향 같고
기차를 내리면 나를 기다릴 따뜻한 당신 같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으스러지게 껴안는 내 가슴 같고
는개 내리는 이른 새벽의 우물 속은
낯선 사람과 하룻밤 같고
아, 끝내 도달할 수 없는 환상이라는 역 같은
는개 내리는 이른 새벽의 우물 속은

심종록의 사진 산문집 『벗어? 버섯!』(‘달아실’, 2021)을 읽었다.

인용한 심종록 시인의 시는 《벗어? 버섯!》의 <노란다발버섯과 별>에 실린 시인의 시화이다. 그것을 필자가 그냥 노란다발버섯과 별, 이라는 제목을 달아 여기에 소개한다. 시인의 사진 산문집을 받아 들고는 내심 놀랐다. 시인이 바라보는 버섯은 우리가 알고 있는 버섯을 훨씬 넘어선 버섯 이상의 버섯이었다. 시간과 서사와 회한과 신화와 사랑까지…, 온갖 이야기와 심상이 가득한 시인의 버섯 이야기는 작가의 말처럼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덧없어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벅찼다. 대부분 식용이 아닌 독버섯들이 사색의 대상이 되는데, 그것은 외면당하고 소외당한 한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아름다움으로 시를 써나가는 시인의 시작 과정과도 닮아있다.

심 시인의 산문집을 들어보이는 필자

누군가 질문을 한다. 왜 식용이 아닌 독버섯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시인은 식용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 일갈을 한다. 독버섯은 스스로 몸에 독을 품어서 싱싱하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고독하다. 시인의 눈과 발을 잡아챈 독버섯, 혹은 식용버섯, 그 모든 것을 벗어 버린 버섯의 실체는 시인의 시처럼 독하고 아름답고 아리고 붉다. 책의 구성은 시인이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낸 버섯의 사진 아래 버섯의 사전적 지식을 캡션으로 달아놓았다. 다음 페이지에서는 버섯에 대한 심상을 시인스럽게 펼쳐서 보여준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한 버섯이 한 버섯에게 건너가는 고백 같고, 손길 같고, 이별 같고, 뒷모습 같고, 걸어서 건너가는 천 길 물속 같고……. 하여 아름다웠노라, 여기에 적는다.

◇손현숙 시인 :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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