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18) (고)성찬경 시인, 응암동 물질 고아원장의 고물 오브제 전

손현숙 승인 2021.08.28 10:34 | 최종 수정 2021.08.29 10:50 의견 0
고 성찬경 시인 [사진=손현숙]

보석밭
                         성찬경

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
모래알도 모두가 보석알이었다.
반쯤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 형태도 하나하나가 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아래 무수히 깔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의 성좌를 축소해 놓은 듯
일대 장관이었다.
또 가만히 응시하니
그 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빛으로
사방 팔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홀연 보석밭으로 변한 돌밭을 걸으면서
원래는 이것이 보석밭인데
우리가 돌밭으로 볼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것 모두가 빛을 발하는
영원한 생명의 밭이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다.

응암동 물질고아원 현판
성찬경 시인의 나사 오브제
선생의 제자인 필자와 최춘희, 최영규 시인 그리고 또 다른 시의 제자 이현정

(고) 성찬경 시인 고물 오브제 ‘사물 아름다움의 구원’ 에 다녀왔다. 엄 뮤지엄. 2021. 8.24

왜,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등 뒤에서 오는 것일까. 내게는 늘 그랬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지금은 알게 되는 이 무서운 아이러니에 내 인생은 정말 별 볼일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매듭을 풀 때 절대로, 가능한 가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매듭을 풀겠다고 가위를 들이대는 내게 선생은 말씀하셨다. “손 시인, 얘들도 모두 정령이 있어서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면 아파요” 모든 사물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나의 스승은 그렇게 알려주셨다. <응암동 물질고아원 원장>. 희귀하지만, 영광스러운 성찬경 선생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선생은 아주 일찍부터 생태에 관심을 두셨던 우리나라 원조 생태시인이시다. 그리하여 몸소 버려진 것들을 주워다 마당 한가득 예술적 오브제를 설치하시곤 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애처로운 사물들이 선생의 손에만 들어가면 새로운 생명을 얻는 광경은 정말 신기를 넘어 신비스러웠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살아서 아름답다는, 그의 드높은 철학은 사실 미욱한 제자가 알아차리기엔 너무 높고도 먼 이야기였을 것이다. 공간시 낭독회를 이끌고, 대학교에서는 후학을 길러내시면서 다섯 자녀들을 모두 예술가와 성직자로 키워내셨던 분.

선생과 제자 설태수 시인

그리고 한 분의 제자. 설태수! 나는 그때 내 눈을 의심했었다. 오래도록 염원하며 선뜻 큰돈으로 스승의 등단 50주년 행사를 주도했던 선생의 진정한 제자. 선생은 종종 제자의 꿈에 나타나 주신다는데. 그 두 분은 전생의 전생쯤에선 어떤 인연이었을까. 도무지 변치 않는 두 사람의 마음은 내게는 시보다 더 시적이다. 솔뫼 여사의 생신이었을까, 돈을 다리미로 다려서 쭈빗거리며 내밀던, 지극하면서도 동심에 가까운 남편의 모습까지. 내게는 바흐와 슈만과 파울 클레와 세잔과 그리고 시 …, 내 최초의 시 선생님이셨던 (고) 성찬경 선생님의 네 번째 사물 전시. 생전에 고물들을 모아서 닦고, 조이고 갈고 문질러서 아름다운 구원을 선사하셨던 분. 그분의 사물 전시에 옛 제자인 최춘희, 최영규 시인과 또 다른 시의 제자 이현정과 함께 다녀왔다. 우리는 모두 성찬경 선생님의 아름다운 영면을 기도한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선생님”, 하고 고회 하듯 읊조린다.

성찬경 시인의 생태시만 모아 분석한 필자의 논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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