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24) 엄마, 꽃게처럼 안아줄게

손현숙 승인 2021.10.09 10:54 | 최종 수정 2021.10.09 12:17 의견 0

엄마, 꽃게처럼 안아줄게
                                손현숙      
 

그미의 낡은 슬하에 자식들 모여 앉았습니다 손가락 굵은 마디 꽃게처럼 마주 걸고, 검불 떼듯 무겁게 눈꺼풀 들어 올립니다 

눈감고도 훤한 부엌살림 기웃거립니다 손가락에서 반짝거리던 반지를 뽑아 여식의 손바닥에 도로 심습니다 잊으면 안 되는 무엇처럼 “동진아”, 아들을 호명합니다 

“현숙아, 화분에 물 줘라”

문지방을 넘어오는 한 문장에 딸년이 걸려 넘어집니다 목소리는 끝이 갈라져서 사막이고요 흐려진 그미를 오래, 혼자 부둥켜안았던 형제의 뒷등이 갑각류의 껍질처럼 막막합니다

나는 그저 비겁해져서 오늘 날씨가 너무 춥네, 딴청이고요 싹 쓸어 함께 살아보기를 마친 오늘, 엄마를 우리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 시와 세계. 2021년 가을호 -

엄마와 오빠내외, 필자
엄마와 오빠내외
엄마의 표정이 맑고 환하다. 그러고보니 우린 다 얾마를 닮았다

<시작메모>      

엄마가 쓰러지셨다. 뇌경색으로 몸이 부서지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이었을 거다. 둘째 오빠가 나를 부르는 톤은 딱, 두 가지다. 기분이 좋을 때의 높은 톤. 그리고 그늘이 드리웠을 때의 낮은 톤. 그날 오빠의 그 캄캄했던 목소리를 나는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걱정과 연민과 미안함과 어찌할 바를 모르던 순정한 목소리. 그렇게 엄마는 폐쇄병동으로 옮겨졌다. 그 후로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5분에 한 번, 10분에 한 번, 요의를 호소하셨다. 화장실 나오면서 화장실 간 것조차 까먹었다. 그러나 우리는 엄마의 자존심을 끝끝내 지켜드리고 싶었다. “엄마가 늙었지 가오가 없냐?” 서로 웃기면서 울었다. 엄마가 깜빡, 정말 잠시 빛이 터지면 나를 보고 “누구세요?” 얌전하게 예의를 차리시기도 했다. 그때마다 “엄마 딸, 현숙이.” 내 대답은 한결같다. 그래, 나는 엄마 딸, 손현숙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는 저 여인의 딸이면 족하다. 처음부터 나의 집이었던 박경애, 우리 엄마. 그거면 된 거다.

필자의 '집'인 박경애 여사. 2015년 이천 국립묘지의 남편 성묘 길에서.

지금 엄마는 요양원에 계신다. 나의 형제, 동진 오빠랑 올케 이영희는 이틀이 멀다고 그곳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저들은 때마다 엄마를 모시고 엄마의 집에서 일상처럼 식사한다. 엄마의 집. 그러니까 그 집은 엄마가 애증의 아버지랑 함께했던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형제들 얼굴 본 지도 참 오래되었다. 꿈속에서도 모두 뒷모습으로 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은 우리요양원 밴드에서 엄마를 만날 시간. 너무나 순하고 연해서 차라리 내 새끼 같은, 나는 오늘도 사무치게 엄마를 파고드는 중이다.

엄마 93세 생신. 작은 어머니와 사촌형제들.
엄마와 대게 잔치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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