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28) 임혜신 - 베라, 나는 아직도 울지 않네
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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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6 10:13 | 최종 수정 2021.11.0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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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싱글 마더에게 풀꽃이 속삭이기를
임혜신
풀꽃아,이렇게 예쁜 너도 외로우니 하고
가여운 듯 불안한 듯 물으시니
당신에게만 말하겠어요
하지만 비밀을 지켜주세요
끊어질 듯 위태로운 가계를 위하여
날마다 일하러 나가는 당신
우리들 풀꽃일랑 걱정하지 말아요
튼튼해서 가련한 당신의
가슴속에 피어 있는
한 송이 야생화보다 더 외롭지는 않으니까요
임혜신 시집 《베라, 나는 아직도 울지 않네》(상상인. 2021)을 읽었다.
임혜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베라, 나는 아직도 울지 않네》를 읽었다. 시집은 딱 스무 해 만의 출간이라 했다. 스무 해 전에 나는 누구였더라, 하면서 시집의 첫 장을 연다. 그러고 보니 그녀와 나는 일면식도 없다. 언제더라, 현대시 잡지에 영미시를 소개하는 <임혜신이 읽어주는 오늘의 미국시>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과 간간이 SNS를 주고받았던 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그녀와 나는 오로지 문자의 나라에서만 소통했던, 어찌 보면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는 환상의 나라 시민들이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한국에 살지 않는다. 벌써 스무 해도 넘게 아메리카에서 워킹맘으로 산다. 프로필에 보이는 그녀의 내력은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공대를 졸업했다. 이중언어의 고통이 몸을 강타했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무엇이 그녀에게 모어母語를 붙들게 했을까. 돈도 밥도 되지 않는, 매 순간 가슴에서 생물체로 살아서 몸부림치는 고통의 언어를 놓지 못하게 했을까.
시집을 관통하는 시선은 연민이다. 시인은 무위하고 무용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담담한 언어로 활달하게 대상을 향해 전진한다.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슬퍼도 “권력을 거부하고/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지켰다”로 시인은 자신을 지키고 당신도 지켰다. 시인의 말에서 “나의 이야기를 해 주었으니,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화답으로 ‘2021년 해외동주작가상’ 수상을 축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 임혜신은 예쁘다.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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