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32) 박직찬, 기회의 땅
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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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0 17:13 | 최종 수정 2021.12.1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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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
박직찬(한세대학교 공연예술학과)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백야의 땅,
동시에 공존하는 날 선
설렘과 두려움
뒤집힌 작두판에서
칼춤을 추어라 일 년 중에
가장 더운 8월의 7시
해를 등지고 내 몸에서
추는 칼춤은
개의 춤인가 늑대의 춤인가
중요한가, 그저 추어라
검은 선혈로 물들 때까지
우리들의 시집 《햇살처럼 모여 소나기처럼 쏟아내던 밤》(청춘의 행방, 2021)을 읽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생들과 밤 10시에 ‘줌’으로 만나서 12시 혹은 새로 한 시까지 문학을 이야기했다. 바르트의 풍크툼도 이야기하고. 위대한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리고 일상이 예술이 되는 패터슨과 용서할 수 없는 용서에 관해서도 고민했다. 로멩가리의 처방전처럼 그냥 대놓고 시와 산문을 썼다. 문학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경험하는 무엇이라는 것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 원고를 묶어서 isbn이 나오는 전자책을 만들었다. 저 청춘들은 이런 선생의 무모함이 무척 혼란스러웠을 터. 저들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빗자루 탄 마녀나 문학에 미친 꽃다발은 아니었을까. 비대면 12회를 마치면서, 오늘 내 친구들과 함께 저들에게 출판기념회를 열어주었다. 음식을 마련하고, 졸업장처럼 장미 한 송이씩을 가슴에 안겨주었다. 그리고 선생인지 깡패인지 주소는 잘 모르겠으나, 매일 쓰거나 죽거나 하면서 시를 사는 나는 사실 저들을 많이 질투했다. 저, 가능성 백 프로의 무모함과 열정과 당당함을.
위의 시 또한 위태롭지만 맞서는 저들의 지금을 뜨겁게 노래한다. 부탁하노니, 토끼와 거북이의 싸움에서 더러는 거북이가 이긴다는 신화를, 문학을, 믿어주시길. 목숨 딱, 걸고 싸우는 자를 내치실 하나님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좋은 운은 언제나 제 속에서 제가 만드는 무엇이니까. 불나방처럼 밤에 모여서 세상의 불온을 작당했던 나의 그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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