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38) 사랑, 이병률

손현숙 승인 2022.01.22 10:06 | 최종 수정 2022.01.28 19:59 의견 0

사랑
                    이병률

 

 

점 하나를 잘 써야 하겠기에
인생의 어느 한군데에
점 하나를 찍어야 했으나
그 자리가 어디인지를 몰라
한동안 들고 있었다

점 하나를 제대로 쓰지 못한 죄로
큰 돌 하나를 들고 있으라 하여서
얼마나 들고 있어야 하는지를 몰라
오래 들고 있었다

이병률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를 읽었다. ‘문학동네’. 2020.

눈이 펑펑 쏟아진다. 저 펑펑,에 기대어서 울음이나 실컷 울어볼까. 내 어린 친구가 눈 구경하겠다고 방풍지를 무작정 뜯었노라 카톡을 보내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언제 누군가를 위해서 펑펑 울음을 울어주었는지 참 먼 이야기다. 한 점 한 점으로 내리는 눈은 이제 밤이 되면 어둠을 하얗게 깨울 것이다, 기적처럼.

교보문고의 작가 인터뷰 한 장면 [유튜브 교보문고]

시인은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아주 작은 점을 불러온다. 그 작은 점 하나를 어디에 어떻게 잘 써야 할지를 몰라서 “한동안 들고 있었다”라고 언사 한다. 그 점, 즉 마음 “하나를 제대로 쓰지 못한 죄로” 오래오래 벌 받았던 기억. 그 점 하나를 어쩌지 못해서 돌덩이처럼 무겁게 먼 곳을 헤맸던 상처족, 당신은 아니신지? 그래서 나도 혹은 당신도 그 사랑 비밀처럼 가슴에 담아 죄인처럼 산다. 그러니까 시인이 발화했던 “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에서 조사 “은”에 방점을 찍으면서. 당신도 나도 “이기지 않으려는 것까지도 중요할 때”까지 물론 기다려 보겠지만. 사랑, 참 아프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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