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42) 남산문학아카데미 청소년문학교실, 김유빈 외

손현숙 승인 2022.02.26 09:36 | 최종 수정 2022.02.28 17:49 의견 0

“해‘바라기
                           동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김유빈

 

 

따뜻한 노란빛이 될 수 없어서
해를 더 바란다.

애닮은 진심은 항상 진다.

집착이 된 모든 것들은 어여쁜가.

빛이 드리운 곳에는 반드시 어둠이 있듯.

어떤 노력을 해서 겨우 해를 보게 됐는지,
뿌리를 내려 꽃 피운 나는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모른다.

남에게 꽃으로 보여도 칭찬을 받아도 아름답지 않다.

그렇기에 빛보다 더 선명한
그림자가 되어간다.

남산문학아카데미 문예작품집 《청소년문학교실》 표지

남산문학아카데미 문예작품집 《청소년문학교실》을 읽었다. ‘남산도서관’. 2022.


문학으로 만난 우리는 예뻤다

먼저 본문에 들어가기 전 이 수업의 모든 것과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남산도서관의 주무관 이윤정 선생님과 남산도서관의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 수업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참여해주었던 나의 어린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동안 내가 더 많이 감사했고, 사랑했노라…,

손현숙 시인

 

처음에는 의심했다. 그랬다, 나는 분명히 의혹에 찬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아니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었으므로 첫 시간이 겁났다. 토요일, 그것도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청소년 문학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을 이야기할 친구가 과연 있을까. 하는 마음이 내 본심이었다. 내가 이 교실에 참가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 나는 박두진 문학제의 전국백일장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초등학생부터 대학, 일반부까지 심사하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일단 문법이 너무 어긋난 작품들이 많았고, 그것보다는 고등학교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나의 닫혔던 감성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것은 순전히 내 작가적인 욕심이기도 했지만, 기성의 작품을 흉내 내거나 모사한 작품이 아닌 자신의 순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날 것의 문학을 만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자기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문학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두렵지만 작가적인 욕심으로 시작한 남산도서관의 ‘청소년문학교실’은 뭐랄까, 싱그러우면서도 기대 이상이었다. 비대면으로 만나게 된 학생들은 뭐라 묘사할 필요도 없이 예뻤다. 그들은 그냥 그대로 꽃이었다. 

학생이 손 시인에게 보낸 손편지

위의 시는 고등학교 2학년인 김유빈이 과제로 쓴 작품이다. 요즘 Z세대 학생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우며, 활짝 피는 것조차 두려워하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해바라기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차용하여 자신의 내면의식을 흔들림 없이 그려내는 악력이 있다. 놀라운 것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 18살의 화자는 밝은 빛의 이면에는 더 짙은 어둠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민감하게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의 완성도를 떠나서 아무도 읽거나 학습할 것 같지 않았던 시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고, 할 것이고, 한다는 것에 그저 감사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이렇게 무상으로 문학수업을 받게 하는 나라가 지구위에 또 있을까. 무엇보다 이런 거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남산도서관에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자, 이제 무슨 말을 할까, 고마웠다고. 나를 찾아왔고 다시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저들의 모습에 그저 감사했노라, 마음을 전하고 싶다. 모두가 건강하고 건필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굳게 믿는 위대한 개인으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 손현숙 씀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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