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39) 행복 - 심재휘

손현숙 승인 2022.02.04 18:23 | 최종 수정 2022.02.06 08:46 의견 0

행복
                               심재휘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다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삼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젊음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다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 질 때가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심재휘 시집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를 읽었다. ‘창비’. 2022. 


그냥 왔다 그냥 가는 꽃, 달, 별, 해, 바람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다. 노래 가사 중에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부분에서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고. 무용지유용無用之有用, 수다를 떨면서 친구랑 먼 곳을 여행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은은하게 흐트러지는 사람이 좋다. 머리 가르마처럼 반듯해서 천지간에 자신이 규율이 되는 사람은 무섭다.

심재휘 시인
심재휘 시인

시인은 행복을 농담처럼 툭, 치고 지나간다. 돌멩이가 물속에서 가벼워지듯. 연애보다 썸 타는 그때가 더 아찔하듯. 삶이 가벼워지는 한 순간, 물처럼 담담한 무엇이 행복일지도 모른다며 은근하다. 자신의 율법을 강요하지 않는다. “행복도 버거워질 때가 있으니” 시인은 그저 왔다 그냥 가는 “봄볕이 묽도록 맑은” 봄날의 나른함과 의미 ‘없음’의 ‘있음’에 대해 사색한다.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괜찮다며 따뜻하다. 시인의 전언으로 남쪽 지방에서는 홍매가 벙글었다는데…,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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