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45) 꽃, 강우식
손현숙
승인
2022.03.19 11:21 | 최종 수정 2022.03.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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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강우식
꽃이 시들어
자주 내다버리면서도
무슨 꽃이던 하루라도 더
왠지 버리기가 싫다.
꽃이, 꽃이 아닌 적이 있더냐,
피어서는 어여쁘지 않은 꽃이 있더냐.
키우고 기른 정인지 모르지만
벼꽃도 농부에겐 예쁘다.
시들어버리더라도
내가 곱다고 여기던 때를
떠올리고 잠시나마 두었다가
아쉽게 버리자.
강우식 시집 《죽마고우》을 읽었다. ‘리토피아’. 2022.
매년 이맘때가 되면 강우식 선생님의 시집을 받아 읽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선생은 매년 시집 한 권을 묶어 동료 시인들에게 사인본을 보내주신다. 선생은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을 하셨으니 올해로 56년의 시력을 갖추었다. 선생의 전 생애는 사실 아주 간단하다. 성균관대학에서 시학 교수로 정년을 하셨고, 시쓰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오늘에 도착했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시인의 시 쓰기. 시로 무엇을 나타내기보다는 그냥 시가 무엇이 되어 여기까지 시인을 이끌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죽기 전에 내 목소리가 깃든 누가 읽어도 시인 강우식의 냄새가 묻어나는 시집을 갖고 싶다”라고 소망을 펼치신다.
시, 그 ‘꽃’에 대한 한없는 경외는 예술의 높은 경지를 경험한 자들의 고백임을 알겠다. 그래서 그런지 위의 시 ‘꽃’은 사람으로도 시로도 동시대의 모든 예술로도 치환이 가능하다. 혹시 당신은 그런 경험 없으신지? 꽃 버릴 때 손이 떨렸던 기억. 그 기억이 있는 한 우리는 모두 사랑이다.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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