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49) 줄장미, 이화은

손현숙 승인 2022.04.15 22:51 | 최종 수정 2022.04.21 15:06 의견 0
이화은 시인

 

줄장미
                           이화은


입술이 새빨간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손톱이 긴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뾰족구두를 신은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녹슨 시간의 철조망을 아슬아슬 건너고 있는

아버지의 무수한 여자들

 

이화은 시인은 ... 1991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내 방에 전화를 건다》 《절정을 복사하다》 《미간》 《절반의 입술》을 썼다.
시와 시학상을 수상했다.

이화은 시집 《절반의 입술》을 읽었다. ‘파란’. 2021.

비, 한 차례 긋자 꽃의 환幻이 사라졌다. 언 땅을 열고 돌아온 연두 잎 싹에 한눈파는 사이 꽃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모양이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잊을 수 없는 이생의 한 장면. 시인은 담담하게, 아니 자해공갈범처럼 이 세상과 맞선다.

이화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절반의 입술》에서는 환대와 적대가 샴쌍둥이의 몸뚱이처럼 엉겨있다. 유쾌하고 활달한 언어로 대상을 능청스레 건너가는 듯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서슴없이 자신을 할퀴었던 피의 흔적 역력하다. 보라, 선혈처럼 흐드러진 줄장미 앞에서 화자가 잡아챈 무늬는 엉뚱하게도 녹슨 시간. 첩년처럼 입술이 빨갛고, 손톱이 길고, 뾰족구두를 신은 저 붉음 속에서 왜, 시인은 아슬아슬 자신을 투사한다. 아, 깜짝이야, 살아서도 죽음을 보았다던 오만 년 전 마녀가 환생해서 돌아왔다는 소문. 나는 오늘, 꽃 보듯 시인을 본다.

 

손혁숙 시인
손혁숙 시인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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