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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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6 16:52 | 최종 수정 2022.05.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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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손현숙
눈이 온다
발도 없고 입술도 없는 것이
조용한 몸짓으로 온다
한 가지의 동작만으로도
일생이 가고 또 온다
저도 저렇게 눈부신 한 때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이나 할까
오래 묵은 애인의 편지를 읽는다
나는 모르고 저만 아는,
언제 저렇게 문신처럼 몸에 새기면서 살았을까
나 아닌 내가 나를 읽는 지금,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뒷모습은
나일까, 나였을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시간을 건넜을 터
생각이 멈춰 선 자리에서 돌아오는
꽃의 이름,
그만 그치면 좋겠다 싶었는데
발자국 위에 또 발자국을 포갠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바람의 방향에서
사향노루의 비릿한 냄새가 몰려온다
- 문학의 오늘. 2022. 봄호
- 문학의 오늘 이 계절의 좋은시. 2022. 여름호
시작메모 :
한 가지의 동작으로 한 생을 마무리하는 눈, 눈이 온다. 저는 모르고 나만 아는. 나는 모르고 저만 아는,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애련이 나를 따라다닌다. 거기, 그때 그곳에서 당신은 잘 계시는가, 나는 여기서 무사한가. 이제야 애도한다. 나만의 방법으로 소식 전한다. 꽃의 이름으로. 뒷모습으로.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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