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54) 만약에 내가, 응웬티투번

손현숙 승인 2022.05.20 19:01 | 최종 수정 2022.05.28 10:22 의견 0

만약에 내가
                        응웬티투번

 

서울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되었는데
엊그제 같습니다.

만약에 내가 쓱 다가간다면 
서울 아침 햇살이 나를 깨워 줄까요?

만약에 내가 다시 찾아간다면 
서울 봄비가 나를 달래 줄까요?

만약에 내가 그곳에 머물면 
누군가 나를 찾아와 줄까요?

응웬티투번 시집 《400킬로미터》을 읽었다. ‘도서출판 도훈’. 2022.

이 시집은 이방의 시인이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한글로 써 내려간 시편들이다. 응웬티투번, 이름도 생소한 시인의 시집을 해설하면서 이상한 감동이 밀려왔던 것은 오직 필자만의 일이었을까. 시인은 한글 자음과 모음을 학습하면서, 그것이 구와 절을 지나 의미가 되는 동안 얼마나 고독했을까. 위의 시 〈만약에 내가〉는 상징도 비유도 없는 담백한 서술체의 시임에도 불구하고 아련함이 현실로 재현된다. 어떤 장식이나 수사 없이 시의 정황을 마무리하는 시인은 여전히 서울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시인에게 서울은 언제라도 “쓱” 돌아올 수 있는 익숙하고 다정한 장소. 그러니 시인이여. 우린 서로 만난 적 없지만 만났던 얼굴. 감기도 걸리지 말고 건필, 건안 하시라.

 

오는 28일 열리는 편운문학상 시상식 준비차 조병화문학관 화단 정리에 여념이 없는 손현숙(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시인. 편운문학상은 한국 현대시의 큰별 조병화(1921-2003) 시인이 후진을 격려하는 뜻에서 1990년 제정했다. 

◇손현숙 시인 :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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