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77)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3장 누님 또 누님들⑨

이득수 승인 2024.02.08 07:00 의견 0

“그건 그렇고 둘째 또식이는 요새 우짜고 사능고?”

“아이고, 골치 아파라. 그 아가 젊을 때 술이 취해 연산동 우리 집에 와서 땡깡놓은 거 생각도 안 나요?”

“장개 가고 교회 다니고 인자 마음잡았다던데. 아아도 너이나 되고.”

“그러니까.”

그 제서야 둘째 아들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지금은 또식이라고 불리는 둘째는 아명이 철욱이였고 주로 욱이라고 불렀다. 갓 낳았을 때부터 골격이 굵고 유난히 검어 영판 제 친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며 증조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은 물론 다섯 명이나 되는 왕고모, 그 할아버지의 여동생들이 웃었다.

몇 달씩 절일을 다니다 한번 씩 들어와서 이제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제법 인사를 하는 첫째와 달리 유난히 검고 억세 촌 말로 뼈두리가 굵다는 뼈대 굵은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평생 목공으로 늙은 투박한 손으로 <가제베>로 불리는 거즈로 된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안아주기를 반복하며 어쩌면 이 조그만 애가 자신보다도 자신의 아내인 덩치 크고 대범한 제 친할머니 화천댁을 닮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골격과 피부색이 닮은 두 조손의 만남은 그리 오래 가지 못 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기 전에 제 증조부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8순이 넘은 상노인인데다 아무런 병도 없이 자던 잠결에 조용히 돌아가셨으니 죽음 복을 타고난 호상이라고 다섯 딸들이 그저 우는 시늉이나 하며 제 서방과 아이들의 술밥을 챙기며

“야야, 많이 먹어라. 당신도 많이 잡수소.”

모처럼의 쌀밥과 쇠고기국과 찜떡을 챙기기에 바빴고

“흉년에 초상이 나면 외할배는 죽어도 국밥은 많이 먹어라 칸다디 마는 우리 아부지 돌아가시니 6남매 그 많은 자손들이 모조리 포석을 하네. 부모는 죽어서도 자식들 손해보이는 일이 없다카디마는.”

하면서 저도 몰래 입가에 웃음기를 보이가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시끌벅적 잔치처럼 치른 호상도 잠깐, 부친의 장례로 지쳐 그런지 금방 일을 떠나지 못 하고 자리보전을 하던 장남 갑생씨가 겨우 몸을 추스르고 운문사의 절 공사를 떠났다가 한 달을 못 채우고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며느리 금찬씨가 동행해 어렵게 읍내의 병원을 찾아가 김태진이란 서부5개면 언양바닥의 유일한 의사에게 보이자 작은 키에 뚱뚱한 몸매 때문인지 촌사람말로 민경(面鏡) 알처럼 벗어진 이마에 연신 땀을 흘리며

“너무 늦었심더. 사람이 이 지경이 되도록 우째 나놨덩교? 간이 나빠서 생긴 황달이 복수가 가득차서 벌써 흑달이 되는 판이라 천산갭이 재주가 있어도 고칠 수가 없어요.”

하고 진통제 주사와 먹는 약을 처방해주었지만 소용도 없이 보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집안의 울타리였던 부자가 차례로 떠나고 한창 기둥역할을 하여야 할 수진씨마저 아직 군복무 중이라 등말리의 너른 집은 졸지에 피난 간 집처럼 휑하니 찬바람이 불면서 해가 지면 슬금슬금 산 그림자가 내려온 울타리어둠속에서 오홍오홍 올빼미가 울어 금찬씨와 아이들은 문밖에 나가기마저 꺼렸다.

그 판에 농사철이 닥쳐 모심을 논을 갈고 써레로 고르는 훌쩡써레질이야 아랫마을의 수진씨 친구 일봉씨나 이웃의 남정네들에게 품을 주고 시키더라도 감자를 캐고 보리와 밀을 배어 말려 타작을 하는 일과 황토 흙 못자리에 깊이 뿌리를 박은 질긴 모를 쪄서 모내기를 하는 일이 모조리 금찬씨 혼자 해야 할 판이라 평생 센 일이라고 안 해본 시조모 조동댁도

“할 수 없지. 모숭기철에는 죽은 송장도 일을 돕고 괘내기도손을 보태야 한다는데.”

하면서 실로 몇 십 년 만에 치마를 걷고 종아리를 드러낸 채 모내기를 나서며

“야야, 일식아. 동생 잘 봐래이. 축담에 떨어지면 큰일 난다. 알겠제?.”

이제 겨우 기기 시작하는 아이를 기둥에 묵어놓고 세 살짜리 형에게 부탁을 하고 두 여인은 모를 심으러 나갔는데 정오가 되어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오는 금찬씨가 종종걸음으로 헐레벌떡 돌아와

“아이구, 내 새끼!”

얼른 아이를 풀어 안으면 기저귀에 똥오줌이 범벅이 되고 얼굴도 콧물이 범벅이 된 아이는 그냥 씨익 웃고 젖을 빨아

“이 아아가 잘 울지도 않고 천연시럽은 것을 보면 후제 장군이나 큰 인물이 될랑가, 아이면 지 애미 속상할까 봐 삼신할미가 울지 말라고 시키는 걸까?”

하고 증조모 조동댁이 흔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렇게 씩씩하게 자라난 이 둘째는 금방 가족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명색 반가(班家)의 여인이라 옷이고 집안이고 모두 깔끔한 걸 좋아하고 몸치장하기를 즐기는 조동댁은 얼굴이 검은 둘째 또식이 보다는 살성이 희고 이목구비가 똘망똘망하여 귀엽게 생긴 맏이 일식이를 더 좋아해 길천 딸네집이라도 마실을 가면 꼭 또록또록 귀엽게 생긴 장손을 반들반들하게 치장을 해서 데리고 다니며

“고놈 참 새첩제? 돌아가신 저거 증조부를 닮아서 인물하나는 화용월태, 여인네보다도 더 곱제?”

은근히 죽은 남편을 추켜올리기도 했을 뿐 아니라 연이어 준식이, 성식이 두 아이가 태어나고 제 아비가 만날 “공주”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고명딸 현주까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새까맣고 뼈두리가 센 아이는 여상(女相)을 써서 매사 알뜰하고 꽁창시럽고 야무지다 소리를 듣는 제 형과 달리 제대로 걸음마를 떼자말자 하루 종일 마당의 닭이나 강아지와 씨름을 하고 뒷산에 밤이나 홍시를 줍느라 돌아다니며 씩씩하게 잘도 자랐다. 학교에 입학하자 공부에는 잘 하지 못해도 축구나 운동,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는 소질이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마치자 말자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더니 군대에 갔다 오면서 제 아비를 뺨치는 술꾼이 되어버렸다. 처음 술을 입에 댔을 때

“우야꼬! 야가 벌써 술을 묵는가베?”

금찬씨가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다리를 저는데다 술로 골병이 들어 간경변증에 걸려 시난고난하는 남편대신 다섯 명의 자식을 두루 챙기며 농사를 짓느라 정신이 없었고 자신을 닮아 술을 좋아하는 아들이 걱정이 되면서도 대견하기도 한 수진씨는 짐짓 모르는 척했다. 그러고 얼마 되지 않아 수진씨가 죽어 누구하나 자신을 말리거나 간섭해 겁을 낼 사람이 없어진 또식이는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려 천방지축 돌아다니며 집에 돌아오지 않기가 일쑤였다. 그렇다고 어머니 금찬씨가 용돈을 대어줄 형편도 아닌지라 제 아버지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톱질과 대패질, 집안이 몰락한 이후 가업이 되다시피 한 목수 일을 하겠다고 노가다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아직 기술보다는 풋심으로 일당벌이를 했지만 임금을 받는 날이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동무들이랑 술을 마셨다. 그래서 한잔 거나하게 취해 노래를 부르며 등말리의 논길을 올라가다 마을의 노인들을 만나며 슬쩍 도래솔 뒤에 숨기도 했지만 자신의 또래나 좀 젊은 마을사람을 만나

“화식이 오늘도 한 잔 했네?”

힐책 비슷하게 말을 건네면

“와요? 내 술 묵는데 뭐 보태준 거 있능교?”

검붉어 자칫 험악해 보이는 얼굴로 인상을 한번 쓰고 괜히 주인 온다고 마중 나온 강아지의 옆구리를 내질러 깨갱깨갱 온 동네가 시끄럽게 만들어 저 어린 것이 아비를 닮아 술버릇이 나쁘다, 술쿠세가 있다는 소문이 다 돌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술 깨며 일어나고 술 취해 잠이 드는 하루하루가 마침내 술이 깨지도 않고 일어나 대낮에도 취한 채로 잠이 드는 취생몽사(醉生夢死)의 완전한 술허재비가 된 스물아홉이 되던 해 희한한 일이 생겼다.

삼동면 사촌에 사는 스물한 살의 처녀가 매일 술이 취해 눈이 벌건 모습이 무섭거나 싫지도 않은지 죽기 살기로 “오빠, 오빠!”를 찾으며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하기야 떡 벌어진 어깨나 건강미가 넘치는 검은 얼굴, 예사롭지 않게 번쩍거리는 눈매를 보면 건장한 사내의 매력이 없지도 않아 경우에 따라서 처녀들이 반할 만도 한 것이었다. 거기다

“가시나 니는 쪼매는 기 말라꼬 자꾸 내 따러 댕기노? 니는 속도 없나?”

툭툭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 또 애간장을 태우는 모양이었다. 삼동바닥에서는 제법 알아줄 정도로 살림도 단단하고 중학교까지 나온 배운 사람인 처녀의 아버지는 키가 크고 어깨가 구부정한 딸이 썩 미인이거나 여성스러운 데도 없어 어찌 시집을 보낼까 걱정이었는데 좀 검기는 해도 덩치가 좋아 힘깨나 쓸 것 같은 총각을 따라다니는 걸 짐짓 모르는 척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일편단심으로 졸졸 따라다니는 처녀에게 마침내 또식이의 마음이 돌아서자 자연스레 혼담이 오갔는데 양가의 부모가 한 가지씩 또식이게게 조건을 걸었다. 처녀 쪽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사위가 술을 끊어야 되는 것이었고 신랑 쪽에서는 며느리 될 사람이 이제부터 남편과 함께 교회에 다니며 하느님의 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총각의 수중에 돈 한 푼도 없는 판에 거처할 집이나 달리 준비가 있을 수 없어 금찬씨가 전에 시숙이 판 집 앞 논 옆의 별도의 한 되지기 반 160평의 논을 내어주어 집을 짓게 하고 건축비와 간단한 살림을 차리는 것은 처가에서 도와주기로 했다.

그런데 신통한 것은 그 지독한 술꾼 화식이가 장가를 가자 말자 두부모 자르듯 칼 같이 술을 끊었다. 또 키만 컸지 아직 시근머리도 맵시도 없는 젊은 새댁도 제 좋은 사내와 결혼을 해서 그런지 약속대로 교회에 나가는 일에 그렇게 열심일 수가 없어 금방 찬송가와 주기도문을 외우고 중얼중얼 기도까지 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시어머니 금찬씨와 손위동서 천선초집사를 넘어 시이모 가순찬권사나 시이종 김미숙집사를 능가할 지도 몰랐다.

거기다 둘 다 건강미가 철철 흐르는 검은 피부의 부부는 밭이 좋은지 씨가 좋은지 아니면 하느님의 축복인지 마치 제 시어머니의 한창 때처럼 줄줄이 아이를 낳아 벌써 1남 3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먹고살고 아이들 가르치기에 급급해 아이아비는 코에 단내가 나도록 이리저리 뛰었다. 처음에는 남의 공사장에 날품으로 뛰었지만 이렇다간 여섯 식구 먹고 살기에도 급급하다 싶어 무언가 제 스스로 사업을 벌이자 싶어 막연하게 <울주공업사>란 간판을 걸고 소소한 집수리나 토목공사를 맡기로 해 처음으로 뗀 것이 장촌의 이모집을 대수선 하는 일이었는데 나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 짠돌이 이모부도 두 말 없이 공사비를 주면서 고생했다는 칭찬을 했다. 그 다음 맡은 일이 교동리 향교 옆 상평리에 있는 자신들이 다니는 개척교회 울주교회의 새 건물을 짓고 종탑과 십자가를 세우는 공사를 맡았다. 높고 가파른 데 올라가는 일이라 모두들 맡기 꺼리는 위험한 공사여서 경쟁자도 없었고 공사비도 후해 수입이 짭짤하기는 했지만 옛날 시골교회의 종탑을 닮은 뾰족한 첨탑을 세우고 그 위에 십자가를 얹는 날 저보다 훨씬 젊은 일꾼이 너무 어지럽고 겁이 나서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며 차마 올라가지 못 하자

“야, 마 치아뿌라! 사내자식이 간짜바리가 콩알만 해서야...”

하면서 직접 올라가 쿵탕쿵탕 망치소리를 내며 십자가를 세우는 내내

“주여!”

“주여!”

“할렐루야!”

어머니 가금찬집사는 물론 목사와 보조목사와 사모님에 두 명의 장로와 세 명의 권사, 제 형과 형수인 박일식, 천선초집사까지 울먹거리며 기도를 하고 마침내 공사는 아무 탈 없이 끝이 났는데 이후 높은 공사비에 재미를 붙여 울산, 부산, 경남, 심지어 대구 경북에 이르는 교회의 철탑공사를 거의 독점하다 시피하다 사십이 중반이 넘어 저도 현기증을 느껴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래 지금 밥은 먹는가?”

“모르지 자기 집 앞뒤 마당이 온통 고물상처럼 자재와 쇠똥가리로 가득한 걸 보면 밥은 먹겠지요.”

“아아들도 많이 클 긴데?”

“큰 놈은 중학생, 막내는 어린이집 댕길 정도는 될 낀데 한 집에 책가방이 넷이면 코에서 단내가 날 낀데?”

“그래도 아 어마이가 요양병원에 댕긴다카이 기본 반찬벌이는 하겠지요.”

“그래 설마 산 입에 거무줄 치겠나? 사람은 잘 나나 못 나나 제 먹을 식복은 다 타고 난다 카이 다 밥은 묵고 살겠지.”

하고 잠시 뜸을 들이다

“그럼 인자 준식이 차롕교?”

“그렇지 말 나온 김에 명촌조카들 까지는 마쳐야지.

셋째 외식이는 외갓집에서 태어났다고 그렇게 불리게 된 아이였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하려니 자연 제 태어날 무렵 외갓집의 형편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이 글은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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