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26)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34)

인저리타임 승인 2024.04.11 08:00 의견 0

가방을 꾸려 부산으로 오거나 영순씨를 만나 자초지종을 알린다는 현실적인 위기는 넘어간 것 같았지만 이젠 엉뚱하게도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은밀한 이야기로 빠졌으니 오히려 더 대응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그 모든 것이 무책임하게 한 여자의 전도를 망쳐버린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에 자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비록 그녀를 끝까지 책임지지는 못 했지만 처음부터 나쁜 생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변명 같지만 가슴 가득히 순영씨를 품고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 한 번의 반응도 없는 짝사랑이라 젊은 혈기에 충동적인 사랑에 빠진다고 뭐 크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지 삶에 자신이 없다고 전도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2년간이나 몸과 마음을 바친 여자를 버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그야말로 무슨 가요의 가사처럼 이유 아닌 이유가 아닌가 말이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은 아니지만 종잡을 수가 없는 애매한 불안에 늘 찝찝했지만 아무튼 그런대로 아슬아슬 하루하루가 넘어가기는 했다.

14. 송도와 진주여자(34)

이틀이 지나 마지막 제4구간의 스토리텔링을 마무리 짓기로 하고 정병진 계장과 박창훈씨를 불러

“자, 이제 마지막 제4구간이야. 벌써 세 번째라 이젠 마음 맞는 남녀처럼 우리 셋이 서로 눈빛만 보아도 통하니 되도록 빨리 마치세.

먼저 제 4 구간 <추억속의 길>은 송도해수욕장의 아름다움과 편리한 시설, 전국최초의 해수욕장으로 한 때 부산 최고의 관광지이자 전국최고의 신혼여행지였던 송도의 아련한 옛 추억을 부각시키는 것이 주 모토가 되겠지. 자 사소하거나 중복되는 이야기들을 골라 봐요. 모두 22건의 스토리를 한 15건으로 줄였으면 해.”

열찬씨의 말에

“국장님, 먼저 4-3. <백사장의 멸치떼>는 수질이 좋아져 멸치 떼가 모여든다는 너무 단순한 이야기고 4-4 <호안정비공사>는 단순한 업무보고 같고 또 4-5. <갈매기의 고향>은 송도전성시절의 접대부와 윤락여성을 송도갈매기에 빗댄 이야기라 관공서에서 발간하는 책자의 내용으로는 좀 미묘한 부분이 있어 뺐으면 합니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정병진 계장이 나서고

“좀 아쉽기는 하지만 단순히 스토리 수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4-6. <송도출신 작곡가>를 4-17 <우수의 바다 송도를 거쳐 간 예술인들>로 흡수시켰으면 좋겠지.”

열찬씨의 이야기에 이어

“4-11. <송도의 별미, 몽돌구이>는 몽고인이나 열대지역 수렵민족의 땅속에서 익히는 요리에 비해 너무 느낌이 약합니다. 그리고 4-21 <송림정과 현판 글씨>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숭배의 느낌이 들어 자칫 반감을 살 수 있느니

4-22. <송림공원 청혼광장 및 마무리>에 간단하게 한 두 줄로 삽입하면 될 것 같아요.

창훈씨의 이야기로 너무나 쉽게 7건이 제외되어 15건으로 확정되었다.

“너무 쉽게 끝나니 좀 아쉽네. 어쩐지 무언가 빠진 것 같고...”

열찬씨의 말에

“그래도 제 4구간에 아름다운 스토리가 제일 많은 것 같아요. 특히 4-12. <송도바다축제>의 노래자랑 마이크증발사건 4-13.<대보름 달집축제>의 화재발생과 선박표류사건 4-15. 회상의 바닷가(1969 여름날 송도의 풍경)의 각종 진풍경 4-18.<송도항과 제주해녀이야기> 4-19 <거북섬의 전성시대>에는 너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아요. 마치 과자와 사탕이 달콤하고도 알록달록한 종합선물세트처럼 말입니다.”

“그래 나도 <송도 항과 제주해녀> 그 제주도출신 해녀와 가덕도의 어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하나는 전복과 소라를 따고 하나는 숭어를 잡는 이 부부와 가족을 조각물로 형상화시키는 작업 말이야, 옛 어항의 호안이나 새로 이전한 선착장에 제주도의 돌하르방을 만드는 화산암, 즉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해녀의 석상을 만들고 그 옆에 가덕도어부는 일반 화강암으로 조각하고 부부의 아들과 딸은 하나는 현무암의 상체에 화강암의 하체를 또 하나는 그 반대로 조각해서 해녀가족을 관광상품, 그러니까 지역상징물로 만드는 건데 전에 식사 중에 구청장에게 한 번 이야기를 하니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짓더구먼. 문화를 보편화된 상식으로만 생각하고 신선한 발상이나 아이디어, 그러니까 지자체의 장들이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싫어하고 모든 사업을 돈이 얼마나 드는가, 선거 때 얼마나 표를 모을 수 있는가 부터 생각하는 민선시대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나는 셈이지.”

“예. 그것도 그렇지만 국장님이 현직시설에 저랑 2사장 방파제를 따라 걸으면서 이 방파제를 따라 아이들 동요에 나오는 그 <코끼리아저씨>란 노래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 아저씨가

가랑잎 타고서 태평양 건너갈 적에

고래아가씨 코끼리 아저씨 보고

첫눈에 반해 스리살짝 윙크했대요

당신은 육지 멋쟁이 나는 바다예쁜이

천생연분 결혼합시다 ~어머어머어머

예식장은 용궁예식장 주례는 문어박사

피아노는 오징어 예물은 조개껍데기-”

기어이 끝까지 노래를 부르고 나서

“이 여덟 줄의 가사내용대로 코끼리와 고래, 용궁결혼식을 8장면의 그림으로 그리면 참으로 동심이 가득한 구경거리, 지역명물이 될 것이라고 한 적이 있잖아요? 전 그걸 꼭 한번 해보고 싶은데요.”

“그래. 사업내용도 신선하고 기대효과도 금방 현실로 나타나겠지. 그러나 당장은 있는 스토리도 줄여야 할 형편이니 정계장이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아이디어나 제안을 모집할 때 제출해서 상도 타고 일 계급 특진도 하도록 하게.”

“고맙습니다. 특진은 몰라도 제안은 한번 해보아야지요.”

정병진 계장이 서류를 덮는데

“참, 국장님!”

박창훈씨가 정색을 하더니

“그 때 저와 제 1구간 해안산책로를 걸으며 두 개의 전망대를 이용한 러브 포인트(Love Point)사업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국장님이 그 아이디어를 제게 주시면 너무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그러지 뭐. 우리 아들에게 못 줄 게 뭐 있겠나?”

“아니 도대체 얼마나 신통한 이야긴데요?”

정병진씨도 호기심을 표하자

“그건 내가 서울의 친구네 딸 결혼식에서 신랑신부의 성장과정과 연애과정을 보여주는 자막에서 본 아이디어인데 왜 간단하게 선으로만 그리는 삽화, 머리는 동그라미, 몸통은 그냥 직선, 손은 권총처럼, 발은 삼각형처럼 단순하게 스케치한 그림에 무릎을 꿇은 남자가 도도한 자세로 서있는 여자에게 꽃다발을 바치며 ‘셀 위 메리(Shell we merry)?’하는 내용을 보았지. 그래서 해안산책로의 두 개의 전망대를 보고 그 입구 쪽의 바위그늘에 먼저 ‘함께 걸을까요(Shell we walk)?’란 글을 새겨 남자가 손을 내밀어 함께 걸으면서 첫 번째 묘박지의 배들과 맞은 편 태종대 앞 주전자 섬을 보며‘키스해도 될까요(Shell we kiss)?’ 하고 포옹을 하고 마지막 두 번째 전망대에서는 드넓은 남해바다와 무역선을 보며‘우리 결혼할까요(Shell we merry)?' 의 헤피 엔딩으로 끝을 맺는 고백의 장소를 만드는 거지.”

“아, 멋져요.”

“그래 아무튼 아이디어 하나씩을 주었으니 각자 요긴하게 사용하여 전도에 도움이 되기 바라네.”

하는데 박창훈씨가

“참, 국장님!”

깜짝 놀란 표정이 되더니

“어제 서대신3동 박동장이란 사람이 와서 스토리텔링은 물론 그 아이디어까지 다 USB에 담아갔어요.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막 성을 내며 윽박지르는 바람에...”

“뭐라?”

열찬씨가 깜짝 놀라는 것을 보고

“큰일이네. 그 양반이 베끼쟁이, 즉 남의 아이디어 표절하거나 가로채는 전문가인데...”

정병진씨가 난감한 표정를 지어

“할 수 없지. 그 박동장에겐 절대로 내색하지 말고 미리 작성을 해두었다가 아이디어나 제안을 모집하면 재빨리 제출해버리게. 만약에 2중으로 다툼이 생기면 내가 자네들한테 줄 것으로 증언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은 창훈씨 혼자 올라와 나와 스크랩사진에 대해서 의논 좀 하세.”

“예.”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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