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46), 껍질에 대하여 - 김종윤

조승래 승인 2024.07.04 09:00 | 최종 수정 2024.07.04 12:05 의견 0

껍질에 대하여

김 종 윤

껍질이 실체보다 무서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뱀 허물 !

한 계절 뱀이 입다가 버린
색 바랜 헌 옷이지만
허물은 사라진 뱀의 배후

허물에 놀란 맨발이
발가락을 자꾸 숨기고
두려움이란 붉은 피 한 점이 온몸을 얼린다

우리는 실체보다
그 존재를 닮은 형상에 떨고
그림자에 떨고 껍질에 떤다

방금
벗어놓은 듯한
온전한 뱀 허물

껍질이 실제보다 선명할 때가 있다.

- 『동행문학』, 2023년 겨울호

* 시 읽기

‘껍질이 실체보다 무서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뱀 허물 !’ 이라고 김종윤 시인은 가식으로 위장한 껍질을 혐오한다. 이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허물에 놀란 맨발이 발가락을 자꾸 숨기’게 되고 체험한 경험의 결과로 인해 ‘두려움이란 붉은 피 한 점이 온몸을’ 얼게 한다고. 그 허물은 단지 ‘한 계절 뱀이 입다가 버린 색 바랜 헌 옷’에 불과하지만 ‘사라진 뱀의 배후’로 실존한다. 그 실체는 그 존재의 형상을 그대로 닮았으므로 시인에게는 그림자조차 두렵다. ‘껍질이 실제보다 선명’하게 할퀴고 간 흔적을 남겼으므로.

자연계에서는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 껍질을 무장한 것을 많이 접하게 된다. 털 복숭이 밤은 바늘 방패 속에 방탄 철갑무장을 하고 있고 은행 열매는 구린내 속에 딱딱한 껍질을 중무장했다.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나 껍데기가, 허물이 실체와는 다르게 가식적이고 위선적일 때는 정말로 단절하고픈 때가 있다. 김종윤 시인이 해로운 기억의 껍질을 미워하는 것처럼.

​진정한 알맹이는 보호해야 하고 아무 쓸데 없는 각질은 제거해야 한다. 다만 살은 뼈의 껍질임을 잊어서는 안 될 일, 살이 없으면 뼈는 눕고 만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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