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년 11월 2일이다. 아침 7시 반쯤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주인 할머니께 “3박 잘하고 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각별히 했다. 오늘부터는 아는 순례자가 없다. 이틀 전에 티토와 가브리엘은 떠났고, 어제는 아나도 먼저 출발했다. 아침에 알베르게에서 인사를 나눌 사람이 없어 좀 서운했다.
알베르게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와 빵을 한 개 먹을 생각에서였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빵을 받고 자리가 없어 ‘어디에서 먹어야 하나?’라며 뒤돌아서는데 “조!”라고 구석에서 불렀다. 바르셀로나 청년인 루카(27)였다. 스페인 벗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중간에서 헤어졌었다. 그런데 여기서 만났다. 처음 보는 중국계 미국인 남성과 안면이 있는 동유럽의 벨라루스에서 온 여성과 앉아 있었다. 루카와 잠시 인사를 나누고 그 옆에서 커피와 빵을 먹은 후 먼저 카페를 나왔다.
오늘 부르고스에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Hornillos del camino)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거기로 가는 순례길은 부르고스 대성당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성당 윗길로 가야 한다. 길바닥에 조개껍질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사흘을 잔 부르고스를 떠나기가 아쉬워 대성당을 배경으로 셀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5분가량 발걸음을 떼니 철판으로 순례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 길가에 서 있었다. 부르고스 경제에 산티아고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이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와서 먹고 자고, 술도 마시고, 쇼핑도 하면서 돈을 쓰는 것이다. 그리하여 순례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이런 순례자의 모형을 만들어 순례길에 세워놓을지도 몰랐다.
부르고스 도시 자체가 해발 800m가 넘는데,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로 가는 순례길은 부르고스의 산복도로(?)에 해당한다. 부르고스로 오는 순례길은 저 아래 평지로 도시의 한복판으로 와 대성당을 거쳐 올라온다. 그러니까 공립 알베르게는 대성당 위쪽인 산복도로에 있다. 산복도로 쪽엔 오래된 건축물이 많다. 앞의 순례기에서도 언급했듯이 해발 850m에 위치한 부르고스는 고대부터 켈트족이 살았으며, 11세기에는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936~1939년 스페인 내전 때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반란군의 본거지였다. 중세 때 스페인 실지회복의 영웅인 엘 시드의 고향이자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부르고스 대성당 안에 아내와 묻혀 있다.
10분쯤 더 걸어가니 또 순례자 모형물이 서 있다. 여기서 8분 정도 더 걸으니 아치형 돌문이 있다. 그 문을 통과하니 조금씩 내리막이다. 그러니까 부르고스 외곽으로 순례길이 이어진다. 아치형 돌문을 나가니 왼쪽에 또 순례자의 조형물이 서 있다. ‘아, 부르고스는 이 도시를 떠나는 순례자들을 이런 식으로 환송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길은 계속 내리막이다. 4분쯤 더 걸으니 또 순례자의 조형물이 있다. 10분가량 더 걸어 도시를 벗어나기 직전에 구멍가게 같은 카페가 하나 있다. 무작정 들어갔다. 제법 정이 들었던 부르고스를 벗어나기 전에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며 마지막으로 도시를 느끼려는 생각에서다. 커피를 한잔 주문하고 앉아 카페에 있는 신문을 펼쳐보았다. 아직도 스페인 아래 지방의 홍수 피해로 생긴 쓰레기들을 치우는 사진과 기사가 실려 있었다.
카페를 나와 도로를 건너니 또 순례자 조형물이 서 있다. 여러 색상의 컬러가 들어간 작품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순례자 조형물이 보였다. 이제 도심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 조형물에서 15분가량 더 가니 도로변에 부르고스대학교가 있었다. 이 대학교에 한국 교환학생이 8명이 공부한다고 했다. 부르고스에 한국인은 20명가량 있다고 들었다. 대학 입구에 석물과 인물상이 있다.
오전 9시 24분, 오래된 듯한 작은 교회 건물이 있다. 건물 규모나 단순한 건물의 외관을 볼 때 ‘초기 교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흙길로 접어들었다. 며칠 만에 흙길을 걸으니 반가웠다. 다시 순례자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아, 나는 순례자가 체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맑았다. 이 길을 따라 산책하러 오는 사람들이 뒤따라왔다. 그분들을 먼저 보내드리려고 돌아서 서 있으니 한 분이 “사진 찍어드릴까요?”라고 했다. 덕분에 허허벌판 산티아고 흙길에서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곤 그분들은 걸음이 빨라 앞서갔다. 혼자 또 천천히 걸었다. 옥수수를 벤 커다란 밭이 있다. ‘저 밭에 또 옥수수를 심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오전 10시 20분, 더워 겉 재킷 두 개를 벗었다. 가다 보니 뭘 심을지는 몰라도 갈아놓은 밭이 있다. 밭이 워낙 커 어떤 작물이 심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늘은 맑고 파랬다. 오전 10시 52분, 도로 아래의 작은 터널을 지났다. 순례길에 도로가 횡(橫)으로 놓여 있어 그 밑을 통과한 것이다. 터널 입구에 큰 산티아고 문양이 있다. 터널을 지나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오늘처럼 맑은 하늘을 쉽게 보지 못했다. 옅은 구름이 조금 있을 뿐 뭉게구름이 별로 없었다. 왼쪽에는 갈아놓은 밭이고, 저 앞쪽에 농부가 트랙터로 밭을 갈고 있다. 오전 11시 20분, 햇빛이 좋아 필자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오전 11시 31분, 저 앞에 마을이 보인다. 타르다호스(Tardajos) 마을이다. 길가 탑 받침대 같은 곳에 돌을 붙여 스페인 지도를 만들어놓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표시도 해놓았다. 더 가니 돌을 깎아 세워 만든 십자가가 서 있다. 오전 11시 50분 도로변에 카페가 있어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므로 커피와 빵을 하나 먹으면서 쉬어야 했다.
필자가 햇살을 쪼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할머니를 실은 승용차가 왔다. 자식들과 며느리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바람을 쐬러 온 것이다. 우리나라만 자식들이 부모님을 모시는 게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도 지극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시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보았다. 도시든, 시골이든 연세 드신 분을 휠체어로 밀고 다니는 자식들을 많이 보았던 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 필자는 제대로 모시지 못한 데 대해 후회막급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 부러워 자식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마음이 절로 훈훈해졌다.
커피를 다 마신 후 일어나 다시 길을 걸었다. 오후 1시 7분, 순례자 모형을 도려낸 듯한 큰 철판을 만났다. 2분 후 산티아고 상징인 조개 문양을 붙여놓은 자그마한 집의 출입구를 보았다. 반갑고 집주인의 마음이 읽히는 것 같았다. 오후 1시 19분 또 카페를 만났다. 들어가 또 커피를 한잔 마셨다. 커피가 영양소를 공급하기도 하지만 카페에 들어간다는 건 잠시나마 휴식을 갖는 기회이기도 했다. 커피를 마신 후 길을 나서니 어느 집 벽에 인도의 간디 총리와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세 사람이 어떤 의미로 그려져 있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대충 짐작했다.
또 걸었다. 오후 1시 41분, 길가에 자그마한 예배당이 있었다. 여길 지나니 다시 흙길이고, 양옆으로는 농경지이다. 길 왼쪽에 해바라기를 베지 않은 밭이 있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그리고 갈아놓은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농경지를 걸으면서 수없이 보아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늙은 농부의 수고로움을 생각하고, 밭에 어떤 작물을 심을 건지 추측한다. 또한 트랙터를 몰고 밭을 가는 농부들은 모두가 80대 이상으로 보이는 분들이던데, 내년에 작품의 수확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걱정 등이 앞섰다. 아마도 필자가 지리산 산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 걱정이 더 많이 들 것이다. 걷기에 좋은 흙길이다가, 약간 오르막인 돌길이다가 길은 온갖 모습으로 형체를 바꾸었다. 그런 길을 혼자서 쉬엄쉬엄 걸었다. 햇살이 좋아 더웠다.
오후 3시 55분,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마을로 들어섰다. 공립 알베르게는 성당 바로 앞에 있었다. 건물이 자그마했다. 침대가 4개밖에 없었다. 두어 번 만나 안면이 있는 독일 청년과 처음 보는 이탈리아 여성 2명이 먼저 와 있었다. 이 알베르게에 오늘 숙박할 순례자는 필자를 포함해 총 4명이다.
주인아주머니가 “혹시 여기서 저녁 식사 드실 겁니까?”라고 물었다. 이 알베르게는 저녁 식사를 요리해 준다고 했다. 12유로라고 했다. 필자는 “예. 저녁을 먹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공립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하 식당에 내려갔다. 다른 세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이탈리아 여성 두 분이 필자에게 인사를 하고는 “어느 나라에서 왔습니까?”라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두 여성 중 좀 더 젊은 여성이 말했다. “저는 올해 55세입니다. 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무릎에 문제가 생겨 돌아가 무릎 치료를 한 후 다시 걷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필자는 “대단하십니다.”라고 화답했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와인이 먼저 한 병 나오고, 콩을 넣은 수프가 나왔다. 빵이랑 함께 먹었다. 수프를 먹고 나니 특히 토마토를 잔뜩 넣은 샐러드가 푸짐하게 나왔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요플레 같은 게 나왔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 후 1층 방으로 들어갔다. 필자는 샤워를 한 후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모두 조용한 사람들이어서 모처럼 잠이 깊게 들었다.
이틀을 걷지 않아 몸이 가벼워 그리 힘든 하루가 아니었다. 거리도 짧은 편이었다. 오늘은 부르고스에서 해발 825m에 위치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Hornillos del camino)까지 20.6km 걸었다. 프랑스 생장부터는 총 304.6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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