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01)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이 참되면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할 수 있으리

허섭 승인 2021.04.10 12:20 | 최종 수정 2021.04.12 09:34 의견 0
겸재(謙齋) 정선(鄭敾 조선 1676~1759)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79.2×138.2), 리움미술관

101 -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이 참되면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할 수 있으리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이 참되면 (여름에도) 서리를 내리게 하고
(멀쩡한) 성을 (갑자기) 무너트리며 쇠와 돌도 가히 뚫을 수 있다.

그러나 거짓된 사람은 한갓 형체만 갖추었을 뿐 참 주인은 이미 죽은지라
남을 대할 때에는 얼굴이 가증스럽고 
홀로 있을 때에는 자기 몸과 그림자조차 스스로 부끄럽다.

  • 若(약) : ‘같다 / 만약, 가령’ 이라는 뜻으로 쓰이나, 여기서는 ‘그렇지 않으면, 그러나’ 의 뜻으로 쓰인 접속사이다.
  • 霜可飛(상가비) : 서리도 내릴 수 있다.  * 추연(鄒衍)의 고사(故事).
  • ̖城可隕(성가운) : (견고한) 성도 무너트리다. 隕은 무너트리다, 허물어지다. * 기량(杞梁) 처(妻)의 고사
  • ̖金石可貫(금석가관) : 금석이라도 뚫을 수 있다.  * 주희(朱熹)의 말.
  • 僞妄(위망) : 허위와 거짓.
  • 形骸(형해) : 겉으로만 보이는 육신(肉身)을 말함. 
  • 徒(도) : 다만, 뿐.  원래 ‘무리 도’ 이나 ‘헛될 도’ 로도 쓰이는데 여기서는 ‘다만 ~하지만, ~할 뿐’ 이란 뜻으로 쓰인 것이다.   학도(學徒), 도로(徒勞 : 헛고생). 
  • 眞宰(진재) : 참된 주인.  宰는 우두머리, 주재자(主宰者).  * 도가(道家)의 용어로 ‘마음의 주재자’, 진정한 자아-주인공(主人公)을 뜻함.
  • 已亡(이망) : 이미 죽었다.  已는 ‘이미 이’, 亡은 ‘죽을 망, 없을 망’ 이다.
  • 形影(형영) : 형체(모습)와 그 그림자.
  • 媿(괴) : 부끄럽다.  媿는 ‘창피 줄 괴’ 이나 ‘愧(부끄러울 괴)’ 와 같은 의미이다.
101 당인(唐寅 명 1470~1523) 낙화시의도(落花詩意圖) 1520년 36.6+60.4
당인(唐寅, 명, 1470~1523) - 낙화시의도(落花詩意圖)

◆출전 관련 글

▶위 문장에 나오는 세 가지 고사(故事)

1. 『회남자(淮南子)』에 

 연(燕)나라의 충신 추연(雛衍)의 고사(故事)로, 추연이 참소를 만나 억울하게 옥에 갇히며 하늘을 우러러 통곡을 하니, 하늘이 그 충성을 슬피 여겨 오월에 서리를 내렸다고 한다.  - 衍事燕王盡忠(연사연왕진충) 左右譖之(좌우참지) 王繫之獄(왕계지옥) 仰天而哭(앙천이곡) 五月天爲之下霜(오월천위지하상)

* 다른 문헌에는 <鄒衍含悲夏落霜(추연함비하낙상)> <鄒衍降霜(추연강상)> 등으로 전한다.

2. 『열녀전(烈女傳)』 제기량처(齊杞梁妻)에
제나라 기량(杞梁)의 처의 고사(故事)로, 제나라의 장공(莊公)이 거(莒)를 공격했을 때 기량(杞梁)이 전사(戰死)하였다. 그 아내가 통곡하며 “위로는 부모가 없고 가운데로는 남편이 없고, 아래로는 자식 없으니 산 사람의 고통이 극에 이르렀다.”고 하니, 기량의 아내가 쏟은 눈물과 지나는 행인들이 뿌린 눈물로 열흘이 지나자 마침내 성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3.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양기(陽氣)가 발하는 곳에 금석(金石) 또한 뚫어진다.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리요.’라고 하였다. - 陽氣發處(양기발처) 金石亦透(금석역투) 精神一到(정신일도) 何事不成(하사불성)

* 흉노에게 사로잡혀 항복한 이릉(李陵)의 어미와 부인을 무제(武帝)가 죽였고, 그 이릉을 변호한 사마천(司馬遷)도 무제의 분노를 사게 되어 궁형(宮刑)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치욕을 당하고도 그는 훗날『사기(史記)』라는 위대한 역사서를 집필하게 된 것이다.

이릉의 조부(祖父) 이광(李廣)은 흉노들에게 ‘비장군(飛將軍 - 나는 장수)’이라 불렸던 맹장이었다. 그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가 수풀 속에 있는 호랑이를 향해 화살을 날렸는데 부하들이 달려가 확인해 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 모양의 바위였으며 그 단단한 바위 가운데 이광의 화살이 꽂혀 있었다고 한다. ‘마음이 전일(專一)하면 활을 쏘아도 돌을 뚫을 수 있다.’는 고사(故事)가 생겨난 것이다.

우리 세대들의 어린 시절에는 시골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됫박으로 곡식을 받고 싸구려 족자(簇子)를 팔던 장사들이 있었으니, 그 족자에 적힌 내용들은 ‘어버이 살아실 제 ~ ’ 로 시작하는 송강 정철의 시조 ‘훈민가(訓民歌)’ 나 ‘주자십회(朱子十悔)’ 그리고 역시 주자가 말한 ‘精神一到 何事不成’등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비로소 낱개 단어가 아니라 한문 문장을 배우던 그 시절에 친구들과 ‘精神一到 何事不成’ 을 장난삼아 이렇게 풀이하기도 했으니……

마땅히 ‘精神一到하면 何事不成이리오’ 라고 새겨야 하거늘, ‘精神一到하여도 何事라도 不成이라’고 새기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아무리 精神一到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이라고 빡빡 우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이는 아마도 박정희 시절에 <하면 된다> - 어느 분식집 벽에는 ‘라면 된다’ 라고 읽혔던, 그 시절의 독재정권의 이념에 대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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