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96) - 나귀에 타고서 나귀를 찾는 어리석음과 강을 건너고도 나룻배를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허섭 승인 2021.10.22 16:40 | 최종 수정 2021.10.26 21:35 의견 0
296 서위(徐渭 1521~1593) 발묵십이단권(潑墨十二段卷) 중 왕우군(왕희지) 고사 1
서위(徐渭, 1521~1593) - 발묵십이단권(潑墨十二段卷) 중 왕우군(왕희지) 고사 1

296 - 나귀에 타고서 나귀를 찾는 어리석음과 강을 건너고도 나룻배를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나룻배에 오르자마자 나룻배를 버릴 것을 생각하다면 
이야말로 번뇌에서 벗어난 도인이지만

만일 나귀를 타고 있으면서 나귀를 찾는다면
결국 깨닫지 못한 선사가 될 것이다.

  • 纔(재) : 원래는 ‘겨우’ 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하자마자, 곧, 이내’ 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 就筏(취벌) : 뗏목에 오름.  筏은 뗏목.
  • 便(변) : 纔와 마찬가지로 ‘곧, 이내’ 라는 뜻이다. * 앞에서도 이야기 한 바 있지만, 纔와 便은 『채근담』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부사이다.
  • 舍筏(사벌) : 뗏목을 버리다.  舍는 捨(버릴 사)와 같은 뜻으로 쓰인 것이다.
  • 方(방) : 시간부사로 ‘바야흐로, 비로소, 마침내’ 의 뜻이다.
  • 無事道人(무사도인) : 말 그대로 옮기자면 ‘일 없는 도인’ 이 되겠지만, 여기서 일이란 곧 ‘번뇌(煩惱)’ 를 뜻하니, ‘진리를 깨달아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난 도인’ 을 뜻한다.
  • 若(약) : 만약. 영어의 if 에 해당한다. 
  • 騎驢又復覓驢(기려우복멱려) : 나귀를 타고 있으면서 나귀를 찾음. ‘자기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 이므로, 부처를 자기 마음속에서 구하지 않고 밖에서 구하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 終(종) : 끝내, 결국.
  • 不了禪師(불료선사) : 진리를 깨닫지 못한 선승(禪僧).  了는 ‘마치다, 깨닫다, 밝다’ 의 뜻이다.
296 서위(徐渭 1521~1593) 발묵십이단권(潑墨十二段卷) 중 왕우군(왕희지) 고사 2
서위(徐渭, 1521~1593) - 발묵십이단권(潑墨十二段卷) 중 왕우군(왕희지) 고사 2

◈ 『전등록(傳燈錄)』에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야말로 나귀를 타고 있으면서 나귀를 찾는 격이다.

◈ 『대장일람(大藏一覽)』에

參禪有二病(참선유이병) 一是騎驢覓驢(일시기려멱려) 一是騎不肯下(일시기불긍하).

- 참선에는 두 가지 폐단이 있으니, 하나는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나귀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은 명나라 영덕(寧德)의 우바새(優婆塞 : 남자 재가 신도) 진실(陳實)이 편찬한 것으로, 대장경에 수록된 여러 경론과 성현의 전기류를 8문으로 나눈 뒤, 그 문을 다시 60품으로 세분하고 각 품의 주제에 해당하는 내용을 발췌하여 집대성한 사전류이다.

◈ 『장자(莊子)』외물편(外物篇)에

득어망전(得魚忘筌) - 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은 잊어라
得 : 얻을 득 / 魚 : 고기 어 / 忘 : 잊을 망 / 筌 : 통발 전

고기를 잡으면 고기를 잡던 통발은 잊는다는 말로, 뜻을 이루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한 수단은 버리게 된다는 뜻.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이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고 만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는 도구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어버리고 만다. 이처럼 말이란 마음속에 가진 뜻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뜻을 얻으면 말은 잊어버리고 만다. 뜻을 얻고 말을 잊어버린 사람과 말하고 싶구나.

-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 而與之言哉

위의 글에서 망전(忘筌)이나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모두 시비(是非), 선악(善惡)을 초월한 절대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득어망전(得魚忘筌)이란, 진리에 도달하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수단을 버린다는 의미이다. 

◉ 『사유경(蛇喩經)』에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비구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집착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뗏목의 비유를 들겠다.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는 생각하기를 바다 저쪽은 평화로운 땅이니 그리 가야겠다 하고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바다를 건넜다. 바다를 무사히 건넌 이 나그네는 그 뗏목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것이 아니었으면 바다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므로 은혜를 생각해 메고 가야겠느냐? 아니면, '이 뗏목 때문에 나는 바다를 무사히 건넜다.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이용하도록 여기에 두고 나는 내 갈 길을 가자' 하겠느냐. 이 나그네는 뗏목을 두고 가도 그의 할 일을 다 한 것이 된다. 너희들도 이 나그네가 뗏목을 잊은 것처럼 궁극에는 교법마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자』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절대 경지에 들어서면 수단은 물론이거니와 절대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마저 잊으라는 것이다. 

◈ 깨달음의 과정을 나타낸 <십우도(十牛圖)>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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