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91) - 불 붙은 소처럼 치닫고, 발정 난 말처럼 설치기만 할 뿐이니 ...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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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8 00:04 | 최종 수정 2021.10.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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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 불 붙은 소처럼 치닫고, 발정 난 말처럼 설치기만 할 뿐이니 …
높은 관과 넓은 띠의 고관대작(高官大爵)도
일단 도롱이 입고 삿갓 쓴 채 바람에 나부끼는 은일지사(隱逸之士)를 만나면
부러움의 탄식을 뱉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길고 널찍한 자리에 앉은 부호(富豪)도
일단 성긴 발 아래 조촐한 책상에 앉아 느긋하게 글 읽고 있는 선비를 만나면
그리워하는 생각이 어찌 일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어찌하여 화우(火牛)로서 치닫고 풍마(風馬)로서 꾀일 줄만 알고
본성을 따라 유유자적(悠悠自適) 할 줄 모르는가
- 峨冠大帶(아관대대) : 높은 관과 큰 띠,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예복을 말함.
- 一旦(일단) : 일단, 한번.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하루 아침에’ 라는 뜻이 된다.
- 睹(도) : 목도(目睹)하다, 만나다. * 다음에 나오는 遇(만날 우)와 같은 의미로 보면 될 것이다.
- 輕蓑小笠(경사소립) : 가벼운 도롱이와 작은 삿갓, 농부나 은자(隱者)의 복장을 말함.
- 簑笠翁(사립옹)
- 飄飄然(표표연) :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 원래는 목적지 없이 방랑하는 모습을 뜻하나, 여기서는 ‘이욕(利慾)의 마음을 완전히 없앤 상태’ 를 말함. * 박목월(朴木月) 시 「나그네」 에 나오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 바로 飄飄然에 해당할 것이다.
- 逸(일) : 한가롭고 편안함.
- 焉(언) : 어조사로 어구 뒤에 붙어 ‘형용하는 기능’ 을 가지니 然과 같은 쓰임새이다.
- 未必不(미필부) : 꼭 ~하지 않을 수 없다.
- 咨嗟(자차) : 탄식함. 두 글자 모두 ‘탄식하다’ 의 뜻이다.
- 長筵廣席(장연광석) : 길고 널찍한 자리, 즉 호화로운 자리. * 筵은 ‘대자리’ 를 뜻하나 일반적으로 ‘席(자리)’ 를 의미하며 더 나아가 ‘잔치’ 를 의미하기도 한다. 수연(壽宴, 壽筵)
- 疏簾淨几(소렴정궤) : 성긴 발과 깨끗한 책상. 산 속의 선비가 앉아서 독서하는 모습을 말함. * 几는 ‘앉을 때 팔꿈치를 기대는 장침이나 등을 기대는 등받이 등의 案席’ 을 말하나 여기서는 机(책상 궤)와 같음.
- 增(증) : 더하다.
- 綣戀(권련) : 몹시 그리워함. 綣은 ‘간곡한’ 의 뜻이다.
- 奈何(내하) : 어찌 ~한가.
- 驅(구) : 몰다, 달리다, 치닫다.
- 火牛(화우) : 꼬리에 불이 붙은 소.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誘(유) : 꾀다, 유혹하다.
- 風馬(풍마) : 발정기의 바람난 말. 風馬牛의 약자(略字)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이 장에서 쓰인 ‘也(어조사 야)’ 의 문법적 기능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번역본 중에서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책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 장에서 앞의 두 문장은 명백한 대구형식으로 되어 있다. 각기 주어는 峨冠大帶之士와 長筵廣席之豪이고 조건절의 서술어와 목적어에 해당하는 것이 睹/輕簑小笠 飄飄然逸也와 遇/疏簾淨几 悠悠焉靜也인 셈이다.
그러면 여기에 쓰인 也를 조건절의 종결어조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앞의 말을 목적어로 만들어 주는 어조사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나는 여기에 쓰인 也는 앞의 말을 명사구로 만들어 주어나 목적어로 사용케 하는 일종의 접사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조건절이 아닌 본래의 서술절에도 종결어조사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조건절의 종결어조사로 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輕簑小笠으로 飄飄然逸 하는 것, 또는 ~하는 사람 / 疏簾淨几로 悠悠焉靜 하는 것, 또는 ~하는 사람’ 을 ‘보게 되면(睹) / 만나게 되면(遇)’ 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 也’ 는 ‘~하는 것 / ~하는 자’ 로 앞의 말을 명사구로 만들어 주는 접사의 기능을 갖는 어조사인 것이다..
◈ 『사기(史記)』「전단전(田單傳)」에
제(齊)나라 장수 전단(田單)의 화우지계(火牛之計)의 이야기
연(燕)나라의 침공으로 제나라는 70여 성을 잃고 위기에 몰리게 되자, 제나라 장수 전단은 소의 뿔에 창검을 붙들어 매고 꼬리에 갈대를 묶어 기름을 부은 다음 그 끝에 불을 붙였다. 소는 적진으로 내달았고 5천의 군사가 그 뒤를 따라 붙으니 연나라 군사들은 크게 놀라 패주(敗走)했다고 한다. 훗날 전단의 이 계락을 화우지계(火牛之計)라 불렀다.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이 연합군으로 초(楚)나라에 쳐들어가자 초의 성왕(成王)은 사자를 보내어 “그대는 북쪽 바다에 있고 과인은 남쪽 바다에 있어, 마치 풍마우(風馬牛)가 서로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그대가 내 땅을 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노라” 라고 말했다. 이 고사(故事)에서 ‘풍마우(風馬牛)’ 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 여기서 風을 흔히들 ‘발정기가 되어 바람난 말이나 소’ 로 해석하나, 달리 ‘놓아먹인, 방목(放牧)한 말이나 소’ 로 해석하기도 한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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