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31) 거위와 이순신과 무당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2.25 09:38 | 최종 수정 2022.02.28 17:49 의견 0

우리의 삶에는 우연이 많이 작용한다. 우연히 성공하는 행운도 있고, 우연히 실패하는 불운도 있다. 역사도 의외의 우연으로 인해 그 물줄기가 확 바꿔져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신비적 힘이나 신령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예는 없다. 개인도 복을 비는 굿거리나 기도로 인생사가 전기를 맞는 경우가 어디 있던가.

대통령 선거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 대선이 무당에 의해, 사주팔자에 의해, 초월자에 의해 그 결과가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은? 어처구니없는 사람이다. 인간 삶의 기록인 역사를 부정하거나 모르는 사람이다. 개인적 욕심과 진실을 구별도 못하는 청맹과니일 뿐이다. 아니면, 무뇌아든지 미성숙자이다. 물론 새삼 말할 필요 없는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한다.

‘로마를 구한 거위’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다. 기원전 390년 로마는 갈리아(프랑스) 북부 지역을 지배하던 세노네스족의 침략을 받았다. 연달아 패한 로마인들은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갇혔다. 이슥한 밤에 세노네스족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잠입해 로마인들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거위가 꽥꽥하고 비명을 질렀다. 거위의 비명소리에 놀라 잠을 깬 로마인들은 적의 침입을 알아채고 간신히 세노네스족을 물리쳤다.

거위는 청각과 시각이 대단히 발달한 동물이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 내에 위험한 일이 생기면 소리를 질러댄다. 이런 특성을 가진 거위가 로마를 구한 셈이다. 그렇다고 거위에게 신비적인 힘이 있다거나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그냥 역사적 우연의 하나에 불과하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오니, 죽을힘을 내어 맞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중략- 비록 전선의 수가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왜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이 파직되어 백의종군 중일 때,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이로 인해 조선 수군은 괴멸 직전이었다. 백성들에게 신망 받는 이순신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만 간주하는 선조도 하는 수 없이 이순신을 복직시켰다. 이순신은 회령포에서 전선 10척을 거두고, 그 후 2척을 더 회수함으로써 남아있던 전선은 총 12척이었다. 나중에 명량해전을 앞두고 김억추의 전선 1척이 보태졌다.

조정에서는 이 초라한 해군을 없애고 육군에 편입시켜 육전(陸戰)을 치르려 했다. 이에 이순신의 위 인용문의 장계를 올려 조정의 동요를 잠재웠다. 그리고 얼마 후 명량(鳴梁. 울돌목) 해전에서 세계해전사에서 전무후무한, 기적 같은 승리를 이뤄냈다.

이순신의 함선은 판옥선 13척에 초탐선 32척이 전부였다. 반면 일본 수군은 명량 해전 당시 동원했던 전선만 최소 330척이었다. 명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의 전선 단 한 척도 격침 되지 않았다. 반면 일본 수군의 전선은 30여 척(31~33)이 격침되었다. 명량 해전의 결과로 조선 수군은 다시 제해권을 장악했으며, 일본군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했으며, 또한 곡창 전라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명량 대첩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순신이 무슨 도술을 부렸는가? 누가 일본 수군에게 주술을 걸었는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나 힘이 개입했는가? 이 승리에는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과 전술이 있었다. 울돌목의 지형과 시간에 따른 조류의 변화를 적절히 이용했다. 그리고 잘 훈련된 병사들이 있었다. 더불어 왜선보다 우수한 판옥선에다 일본수군을 압도하는 함포가 있었다. 다연장포인 신기전, 박격포인 비격진천뢰, 대형 로켓 병기인 대장군전 등 신무기가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죽기로 각오한,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정신무장을 지휘관과 병사들 모두 갑옷으로 입고 있었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픽사베이]

종교학자 최준식(이화여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무교는 분명 종교로서의 모든 요소를 갖춘 ‘순전한’ 종교이다. 무당의 중재를 빌어 신령들의 도움을 청하는 종교로 정의할 수 있다. 우주를 천계(신령계)와 인간계로 나누고, 그 사이를 무당이 중개한다는 것이다. 무교의 기본 생각은, 인간의 생사화복이나 흥망성쇠는 인간 자신의 노력보다는 신령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교나 무당을 믿는 사람들은, 복을 구하려하든 재앙을 물리치려하든 간에, 이 신령들을 움직이기 위해 굿을 비싼 돈을 들여 굿판을 벌인다.

대학생이 어느 입사시험에 합격해 주십사 하고 하나님이나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신령께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그 기도가 눈물겨울 정도로 간절하고, 신심이 돈독하다고 그분들이 들어주실까? 턱도 없는 일이다. 간단한 이치를 생각해 보자. 모집인원은 정해져 있다. 그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면, 억울하게 다른 한 명을 낙방시켜야 한다.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불공정 행위다. 이런 부도덕한 행위를 명색이 ‘신’이라는 이름의 그분들이 저지를까?

굿의 종류는 아주 많다. 그러나 아직도 목격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오구굿과 재수굿(천신굿)이다. 오구굿은 전형적인 사령제(死靈祭)로서 죽은 영혼들은 저승세계로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해주는 굿이다. 재수굿은 단골(굿 의뢰인)이 자기 집안을 위해서 정기적이나 부정기적을 행하는 굿이다. 다른 굿과 마찬가지로 이 굿은 여러 거리(연극으로 치면 한 막)로 구성된다. 중요한 점은 마지막이 뒷전거리라는 것이다. 뒷전거리란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소외당하고 있는 여러 작은 신령들까지 잊지 않고 잘 대접해 주는 거리이다. 그리하여 신령들의 대동화합을 꾀하고 굿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신령계와 인간계의 조화를 찾으려는 것이다. 이게 굿의 정신이다.

현세기복적이고 이기적인 단골이 누구의 당선을 위해 재수굿을 한다 치자. 대학생의 취직 청탁과 같은 모양새다. 자본주의화한 무당이 거액을 받고 푸닥거리는 펼치겠지만, 과연 신령들이 들어줄까? 신령들이 있다고 치면 말이다.

<작가/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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