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잘못 만나서······.”,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밥도 많이 안 먹는데 살이 쪄서······.” 예전 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상담 중인 학부모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 친구 부모는 따님을 잘못 만났다고 변명할 수도 있어요.”, “기름진 밭에 뿌려진 좋은 씨앗도 땀방울로 가꾸지 않으면 쭉정이가 됩니다.”, “학교 파하고 오뎅이랑 떡볶이를 실컷 먹었는데 저녁 밥맛이 있겠어요.”
사람들은 대체로 끼리끼리 모인다. 모여서 ‘희망적 선입견’을 서로서로 확인하며 서로를 격려한다. 그리고 집단적 환상을 형성하고, 그것에서 안심을 느낀다. 교사는 표를 구걸하는 ‘정치꾼’(politico)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등에(말파리, 쇠파리) 역할을 해야 한다. 말이 커지고 살이 찌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피를 빨아먹으려 등에가 침을 말 피부에 따끔하게 찔러 넣는다. 이 덕에 말은 활기차게 움직이게 된다. 교사는 집단적 환상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깨닫도록 그것에 구멍을 뚫어 환상을 깨야 한다. 그러나 말이 등에를 싫어하듯,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듯, 이런 교사를 좋아하는 학부모는 드물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 17일 ‘대북 선제타격’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 중 대표적인 게 킬체인이라 불리는 선제타격 주장이다. 이 얼마나 우매한 군사적 인식인가. 킬체인은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폐기된 개념이다. 통상 적의 미사일 공격은 ‘준비-발사-상승-하강’ 단계로 이어진다. 발사 이전 준비 단계의 징후를 파악하고 미리 제압해버리는 능력이 킬체인의 핵심이다. 탐지해서 제압하기까지 30분 안에 끝내는 걸 목표로 하는 선제타격 개념인 것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2010년에 나온 킬체인 개념은, 북한의 주력 미사일이 ‘액체연료’와 ‘고정식 발사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미사일은 ‘이동식 발사대’에서도 쏠 수 있는 ‘고체연료’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정보 자산으로는 북한 미사일이 어디서 발사될지 파악하기 어렵다. 연료 주입이라는 준비 단계도 없다. 킬체인의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한데 발사 이전 준비단계에서 탐지하여 선제타격을 가한다는 사고방식은 참으로 국방문제에 무지를 드러내는 방증일 뿐이다.
병역면제 받은 윤석열 후보가 군사문제에 당연히 무지하다고 치자. 윤석열 캠프에는 전직 군 장성과 안보전문가가 즐비하다. 그들이 킬체인이 무용한 개념임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북한에 적대적인 보수층을 겨냥해 대북 강경 발언을 용인한 것이리라. 북한 미사일을 발사하기도 전에 깨부숴버린다니, 얼마나 시원하냐. 그러나 실효성이 전무한 ‘입 안보’일 뿐이다. 실상이야 어쨌건 보수층이 표를 몰아준다면 무슨 일이든 못할까. 윤석열 후보는 물론, 국민의 힘 장성 출신이나 안보전문가는 참 무책임하다. 윤 후보의 선제타격 발언에 보수층은 정말 속 시원해 할까?
우리나라는 미사일 강국이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러시아도 감히 우리나라에 도발할 수 없을 정도의 핵폭탄급 현무-4를 비롯한 최첨단 미사일을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세계 7번째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도 성공했다. 우리에겐 ‘독침전술’이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강대국이 우리나라를 침공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전쟁을 치러 승리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전 국토를 회복불가능하게 초토화할 수는 있다. 우리의 미사일 능력 덕이다. 이 능력이 있기에 지구상에서 미국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 싸움을 걸어올 나라는 없다.
미루어 북한의 ‘독침전술’을 생각해 보자. 북한도 성능이 우리만 못하지만 잠수함도 수십 척이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다. 지상의 모든 이동식 미사일을 찾아낼 수도 없고, 모두 파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잠수함은 위치 파악도 할 수 없다. 북한의 군사력은 우리에 비해 보잘 것 없다. 그러나 킬체인으로 선제타격한다고? 북한은 핵을 쓸 필요도 없다. 미사일 한 방으로 원자력발전소를 파괴한다면, 한반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된다. 우리에게 핵발전소가 좀 많은가. 북한은 비록 심각한 안보 위협이지만 동시에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라는, 우리에게 이중적 존재이다. 선제타격으로 인한 공멸과 화해 협력으로 공영, 어느 쪽이 ‘나’에게 더 이롭겠는가!
‘바보의 벽’이란 게 사람에게 있다고 한다. 도쿄 의대 명예교수 요로 타케시가 쓴 책 『바보의 벽』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우리 뇌 속에는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바보의 벽’이 있다. 자신이 알고 싶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정보를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벽이다. 그러므로 실제는 모르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반증을 들이대도 소용이 없다. 듣는 척할 뿐 아예 듣지를 않으니 자신의 믿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정보만 선택하고, 다른 견해는 철저히 외면한다. ‘상관할 게 뭐람. 내가 원하는 것만 듣고 보고 싶어. 다른 것은 원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유튜브만 볼 거야’ 이처럼 ‘선택적 지각 오류’를 범한다.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과 유사하다.
그러나 선택적 지각 오류나 확증편향보다 ‘바보의 벽’이 가진 메시지가 훨씬 더 강력하다. 앞의 두 용어는 현상을 분석한 가치중립적인 말이다. 이에 비해 이 벽을 넘으면 똑똑해질 것인데, 이 벽을 넘지 못해 스스로 바보가 되어 간다는 게 ‘바보의 벽’이다.
윤 후보가 ‘바보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보의 벽’을 넘지 못하는 그의 지지자들 때문이 아닐까? 윤 후보는 선제타격 실효성 여부를 떠나 표라도 얻는다. 장성 출신이나 안보전문가는 대선에서 이기기라도 하면 ‘자리’라도 보장 받는다. 그러나 ‘바보의 벽’을 넘지 못한, 윤 후보의 지지자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작가/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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