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28) 김선달과 사찰 통행세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1.30 12:52 | 최종 수정 2022.02.02 11:51 의견 0

스님인가, 승려인가, 중인가, 땡추인가? 어느 조직에서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수행자다운 스님도 있고, 시정잡배만도 못한 땡추도 조계종단에 있다. 스님을 땡추로 폄훼해서도 안 되겠지만, 땡추를 스님이라 숭앙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험칙(經驗則)이지만, 종교인이건 세속인이건 10분의 1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승려든 목사든 경찰이든 교사든 기자든 판·검사든 모두 10명 중 1명 정도가 그 이름에 걸맞다. 나머지는 그 조직문화를 학습해 그 구성원으로서만 행동한다. 나쁘게는 그 조직에 주어진 권한이나 특권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 하여 어떤 조직의 구성원을 싸잡아 선망의 눈길을 주거나 흘긴 눈으로 바라봄은, 곧 우매한 일이다.

몇 년 전 친구들이 찾아왔다.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즐겁긴 즐거운데, 대접할 게 시원찮아 ‘不亦樂乎’가 아니라 ‘不亦딱乎’였다. 마침 가을이었다. 지리산의 풍광이 도회인들인 그들에게 눈 호사로서는 마땅할 것이란 데 생각이 미쳤다. 하동에서 구례까지 거리는 백 리도 안 된다. 구례로 가서 산길만 좀 오르면 성삼재다. 성삼재 휴게소에 주차하고, 걸어서 1시간30분이면 노고단 정상에서 가을 지리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기분 좋게 섬진강변을 달려 구례에서 지리산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길로 잘 달리다 차량으로 꽉 막힌 곳에 이르렀다. 성삼재 길목에 천은사라는 절이 있다. 꽉 막힌 이유가 천은사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직도 절에서 「사찰 통행세」를 강제한단 말인가!’ 부아가 치밀었다. 내 차 차례가 되었다.

“가로막대 치워. 나는 천은사에 있는 문화재를 관람하려는 게 아니라, 지리산 탐방객이다.” “그래도 이 도로는 천은사 땅입니다.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합니다.” 통행요금을 받으려는 천은사 매표소 직원의 말에 기가 찼다. “뭐라? 본래 도로는 개인 소유가 없어. 그리고 너희들은 법원의 판결도 무시하나? 무슨 절 따위가 법 위에 존재하냔 말이다. 못 내겠다. 어쩔래?”

뒤로 늘어선 차들은 경적을 울려댄다. 한 친구는 그냥 지불하고 가자면서 만 원짜리를 꺼낸다. 그때 1인당 2000원인가 했다. 다섯이니 얼추 만 원이면 해결이 된다. 그러나 ‘돈 문제’가 아니다. 운전대는 내가 잡고 있다. 나는 친구와 직원에게 번갈아 레이저 눈길을 쏘았다. 시동까지 끄고 버텼다. 경적소리와 밀려드는 차량들에 안절부절못하던 그 직원은 ‘안 받을 테니, 차 좀 빼 주이소’ 하며 되레 사정을 했다.

지리산 천은사 전경 [홈페이지 캡처]
지리산 천은사 전경 [홈페이지 캡처]

2013년 2월 6일, 광주고법 민사1부는 문화재를 관람하지 않고 도로만 통행했는데도 문화재 관람료 1600원을 내야했던 강 아무개 씨 등 74명에게 천은사 쪽이 관람료 1600원과 위자료 10만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문화재 관람료를 강제로 징수하기 위해 사찰 부근 지방도로 861호선을 이용하는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 위반할 때마다 100만 원씩을 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도로 터 중 일부가 천은사 소유라 해도 지방도로는 일반인의 교통을 위해 제공된다”며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없는 사람도 관람료를 내야만 통행할 수 있게 한 것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천은사는 2000년 관련 소송에서 지고도 이 도로 통행자가 관람료를 내지 않으면 매표소 앞길에서 통행을 막았다”며, “2011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교통방해 등으로 60건의 112신고가 접수된 점 등을 고려해 또 위반하면 배상금을 내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불교의 수행자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추구한다. 곧, 위로는 깨달음을 얻고, 아래로는 고통 받는 다양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사찰 통행료 징수가 상구보리나 하화중생, 그 근처에라도 닿는 일인가!

정청래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며 ‘봉이 김선달’에 비유해 불교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비유가 좀 거칠기는 해도 별반 지나침은 없지 않은가. 1월 21일에는 조계사에서 ‘종교 편향·불교 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 승려대회’까지 열었다. 이 엄혹한 코로나 시국에도 말이다.

정 의원은 현 정부의 소속도 아니고, 더불어민주당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국회의원은 각자가 헌법기관이다.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 공적 업무인 국정감사에서 소관 업무에 대해 잘못을 지적한 것일 뿐이다. 정 의원의 지적은 현 정부의 뜻과는 무관하고, 당론도 아니다. 현 정부가 종교 편향적이고, 불교를 왜곡한다면 왜 하필 ‘통행세’ 지적을 받은 이 때,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승려대회를 여는가? 그리고 통행세에 대한 입장은 밝혔는가?

진정한 수행자인 용과 시정잡배 모양 ‘이권’(利權)에만 오로지하는 뱀 같은 땡추를 함께 타매할 수는 없다. 흔히들 가리키는 달을 봐야지 손가락은 왜 보냐고 한다. 그러나 달은 달이고, 가리키는 손가락이 너무 추하다면, 달을 볼 염도 나지 않는 법이다.

수행은 지고지순하고, 수행자는 아름답다. 그러나 수행자 조직이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1950년대 ‘비구와 대처승의 갈등’과 ‘6조 혜능선사’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음 글에서 다룬다.

<작가/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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