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 (80) - 내가 가장 암울했을 때 드린 선물 

소락 승인 2021.04.02 17:31 | 최종 수정 2021.04.04 08:51 의견 0
2003년에 드렸던 어버이날 선물
2003년에 드렸던 어버이날 선물

2003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내가 만들어서 선물한 액자다. 액자에 적힌 2003년을 보니 할 이야기가 나온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교수가 되겠다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지원하는 대학들마다 내내 물을 먹고 한참 의기소침할 때다. 여고생 딸과 중학생 아들은 커가고 있는데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다. 그래도 나는 내색을 하지 않고 어버이날에 이렇게 액자선물 할 마음의 여유가 있었나 보다. 

그런 암울한 시절에 나는 도무지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희한한 책을 쓰고 있었다. 책 제목이 <패러다임 사고학>이다. ‘뻔한 생각을 넘는 다른 생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사실 나는 이런 책을 씀으로서 암울한 내 마음을 스스로 달랬을지 모른다. 

이 책은 나의 전공인 광고나 홍보와 관계된 책이 아니라 우리 삶과 연관된  ①공부 ②사랑 ③생활 ④지혜 ⑤건강 ⑥영업 ⑦문화 ⑧생태 ⑨경제 ⑩학문 등 열 개 분야에 관해 각 열 꼭지씩 100개의 글을 모은 것이다. 경제주의에서 벗어나 생태주의적 사고에 입각하여 쓴 책이다. 물론 내가 대학에 몸담게 되어 교수가 되고 난 후 연세대학교 출판부를 통해서 책이 발간되었지만 원고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책을 내가 교수가 되고 난 후 안정된 상황에서 썼다면 별 의미없는 책이다. 먹고 살 일이 막막한 힘들고 어려울 때 쓴 책이라 나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며 나름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쓸 당시에 어버이날을 맞았다. 나는 이렇게 내 마음을 담은 액자를 선물드렸다. 지금도 아버지 어머니 사시는 내 본가에 걸려 있다. 그 액자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는 창덕여고에서 제일 예뻤고
아버지는 서울고에서 미남이셨습니다.
청파동 이웃 연인으로 만나
항아리 하나 물려 받으며 사신지 반백년!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힘이 세지셨고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맘이 넓어지셨습니다.
하지만 자식들 사랑은 한결 같습니다.
지극히 큰 사랑에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2003년 어버이날 
아들

내가 내 삶의 가장 암울한 시기에 <패러다임 사고학>이라는 책을 쓰면서도 나는 아마도 울 엄마 아버지에 관한 책의 서문을 이미 이때부터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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