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큰 바람 뒤에 - 석정희

석정희 승인 2021.11.28 20:35 | 최종 수정 2021.11.30 08:44 의견 0

큰 바람 뒤에
                  석정희

 

밤새 바람이 불었다
초겨울 나뭇가지들이
흑백영화의 영상처럼 앙상하다
실핏줄처럼 뻗었던 전기가 끊겨
온 천지가 멍들어버린 새벽
아직 개이지 않은 바람의 끝자락
앞 언덕 학교의 깃발에 나풀거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남기고 갔을까
끊긴 전기 모든 소식들 물고 있는 사이
날이 밝고도 마음은 밝아지지 않은 채
어제의 어둠 속에 묻혀 있다
바람 가고 난 자리에 쓸쓸하게 엎디어 있는
풀들 사이로 어린 다람쥐 생존을 확인하듯
사시나무 가지 사이로 숨는다
바람 할퀴며 남긴 누더기 정리하는 아침
겨우 살아난 전기에 실려오는 뉴스
더 큰 바람 온다는 소식에
창문에 못질하며 별은 볼 수 있겠지 하다
가로등이나마 살아 있기를 생각한다
바람이 어둠 거두어 가기만을 염원한다

난석 석정희
난석 석정희

◇석정희 시인은

▷Skokie Creative Writer Association 영시 등단 
▷‘창조문학’ 시 등단 
▷세계시인대회 고려문학 본상 
▷대한민국문학대상 수상, 한국농촌문학 특별대상 등
▷시집 《Alongside of the Passing Time 》(5인 공저 영시집), 《Sound Behind Murmuring Water》(4인 공저 영시집), 《문 앞에서 In Front of The Door》(한영시집), 《나 그리고 너》, 《The River》(영문시집), 《엄마되어 엄마에게》, 《아버지 집은 따뜻했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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