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공감’대화법 (5)대화 실패

배정우 승인 2020.02.26 11:52 | 최종 수정 2020.03.22 15:05 의견 0

지금까지 네 번의 글에서 ‘공감’대화법의 표현방식을 중심으로 배우고 예시와 연습문제로 익혔다. 이제부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영화를 통해 배움으로써 실제생활에 적용하는 데 도움을 드리려 한다.

이번 글에 연습자료로 삼을 영화는 <걸어도 걸어도>(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08년)인데, 이 영화는 가족 간의 진솔한 대화 부재로 말미암아 생기는 오해와 갈등을 그린 내용인데 등장인물의 심리를 세심하게 잘 표현하여 여러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명작이다.

1. 실패한 대화(1) – 감정과 욕구를 숨김

‘료타’가 형의 10주기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부모님 댁으로 기차를 타고 가면서 아내 ‘유카리’와 나누는 대화이다. ‘유카리’는 시어머니께 하룻밤 자고 갈 거라고 말씀드렸으며 남편 ‘료타’에게도 그 내용을 전한 상황이다.

남편: “역시 막차 타고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8시에만 거기서 나오면 충분할 텐데.”
아내: “자고 간다고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갈아입을 옷도 가져왔는데.”

료타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명확히 표현하지 않았고, 유카리는 료타의 말에 대해 공감하지 않고 사실만 얘기하면서 자신의 감정도 욕구도 표현하지 않고 있다. 료타는 부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자야한다고 생각하니 귀찮음과 불편함을 느끼며, 이 감정들과 관련된 욕구는 심리적 평안의 욕구, 신체적 안정의 욕구이다. 즉 오늘 밤에 집으로 돌아가 몸과 마음을 편히 쉬고 싶은 것이다. 유카리의 감정은 당황스러움, 답답함, 걱정, 섭섭함이며, 욕구는 존중의 욕구, 신뢰의 욕구, 인정의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이다. 즉 자신의 결정을 존중 받고 싶고, 시어머니로부터 신뢰와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하는 게 바람직하다.

남편: “당신이 부모님 댁에서 하룻밤 자겠다고 마음먹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나는 부모님 댁에서 자는 게 불편해요. 그래서 오늘 밤에 집으로 돌아가서 마음 편히 쉬고 싶어요. 막차 타려면 8시에 나오면 충분할 거예요. 어때요?”
아내: “많이 신경 쓰이고 불편한가 보군요. 당황스럽고 아쉽고 걱정돼요. 어머님께 자고 간다고 이미 말씀드렸다고 말했는데 오늘 밤에 가자고 하니. 나는 당신한테 존중받고 싶고 어머님한테 신뢰와 사랑을 받고 싶어요. 갈아입을 옷도 챙겼으니 하룻밤 자고 가요. 어때요?”

2. 실패한 대화(2) – 칭찬을 기쁘게 수용하지 않음

처가에 온 사위 ‘노부오’가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마신 뒤 장모(‘료타’의 어머니)에게 칭찬하는 말을 한다.

사위: “역시 장모님 보리차는 맛있네요!”
장모: “슈퍼에서 파는 티백이야, 그거. 옛날에는 집에서 우려내고 그랬는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처가에 가면 어색하다. 그래서 사위 ‘노부오’는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려고 무슨 말이든 하려 하면서 장모님을 칭찬하는 말을 했는데 장모가 눈치 없이(또는 칭찬 듣는 게 어색하고 당황스러워서) 칭찬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을 설명하는 반응을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더 어색해졌다. 대화는 ‘사실 지향 대화’와 ‘관계 지향 대화’로 나눌 수 있다. 일과 관련 있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대화는 ‘관계 지향 대화’를 하는 게 좋다. ‘관계 지향 대화’는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장모는 사위가 하는 말의 의도를 알아채고 다음과 같이 공감 반응을 해줘야 한다.

사위: “역시 장모님 보리차는 맛있네요!”
장모: “알아주니 기쁘고 고맙네.”

3. 실패한 대화(3) – 감정을 숨기고 사실만 말함

부모님 댁 욕실의 욕조 벽에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는 걸 발견한 ‘료타’가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아들: “욕실에 손잡이 설치하셨어요?”
어머니: “응. 작년에 아버지가 넘어지셨잖니.”

아들 ‘료타’는 욕조 벽에 달린 손잡이를 보고 부모님이 나날이 노쇠해가는 모습이 안타깝고 슬프고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고, 어머니도 아들의 말에 메마르게 사실적인 답을 하고 있다. 모자간의 바람직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아들: “어머니, 욕실에 손잡이 설치하셨군요. 또 넘어질까 봐 걱정되셨나 봐요. 이젠 좀 안심되시겠군요. 마음 아프고 걱정되네요.”
어머니: “설치하고 나니 좀 안심돼. 걱정해줘서 고마워.”

4. 실패한 대화(4) – 속마음을 감추고 삐딱하게 표현함

아버지는 차남 ‘료타’의 수입 변변찮은 직업(문화재 복원사)도 못마땅하고 총각이 아들 있는 과부와 결혼하려는 것도 못마땅하다. 그러나 하나 남은 아들에게 관심이 없을 순 없으니 슬그머니 말을 건넨다.

아버지: “그래, 밥은 먹고 다니냐?”
아들: “덕분에 애 딸린 과부 먹여 살릴 정도는 돼요.”

아버지는 아들의 경제상황이 걱정됨에도 아들이 거부감을 느낄 만한 무시하는 표현을 했다. 아들도 아버지의 속과 다른 까칠한 표현방식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저항감이 일어나 비딱하게 맞받았다. 둘 다 속마음을 감추고 삐딱하게 표현함으로써 모처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 차버린 것이다. 바람직한 대화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 “료타야, 경제 사정은 어떠니? 수입 적은 직업이라 걱정되는구나.” 
아들: “아버지, 걱정 끼쳐 죄송하고 고마워요. 염려 덕분에 그런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5. 실패한 대화(5) – 열등감에 휩싸여 상대의 심정을 공감하지 못함

장남의 기일에 아버지는 비통함에 잠기는데 장남이 바다에서 구해준 아이(‘요시오’ 청년)가 기일에 다녀간 뒤에 그 청년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비만한데다 직업도 알바를 전전하니 큰 실망감에 혼자말로 화를 낸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아들 ‘료타’는 어릴 때부터 형과 비교 당하며 느꼈던 열등감이 살아나서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대거리를 한다.

아버지: “쓸데없이 덩치만 커서. 저런 놈은 살아 있어도 아무런 쓸모가 없어.”
아들: “남의 인생을 두고 저울질하지 마세요. 그 친구도 나름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아버지처럼 사람을 깔보듯이 하나하나 들추며 하찮니 어쩌니 하는 건...”

배정우
배정우 박사

아버지는 의사였던 장남이 목숨까지 버리며 구한 아이(‘요시오’)가 어엿한 청년으로 잘 자라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체중관리도 못하고 직업도 변변찮으니 실망감이 원망과 분노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차남 ‘료타’는 아버지의 ‘요시오’에 대한 비난이 자신을 향한 것으로 느껴져 화가 난 것이다. 서로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표현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 “실망스럽고 아쉽다. 죽을 뻔 했다 살아났으면 구하다 죽은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지. 그 녀석이 꿈도 없어 매우 안타깝고 답답하다.”
아들: “아버지, 아쉽고 답답하고 원망스러우시군요. 그 친구도 나름 열심히 살려고 하니 인격을 무시하지 말기 바랍니다. 아직 나이도 젊으니 희망이 있잖아요. 아버지가 저도 그 친구처럼 무시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하니 섭섭합니다. 제 인격과 직업을 존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상담심리학 박사, 한마음상담센터 대표,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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