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37) - 비온 뒤의 산빛은 더욱 산뜻하고 깊은 밤의 종소리는 더욱 맑고 높아라

허섭 승인 2021.11.30 23:18 | 최종 수정 2021.12.05 16:52 의견 0
337 서비홍(徐悲鴻 1895~1953) 군마도(群馬圖) 110+122
서비홍(徐悲鴻, 1895~1953) - 군마도(群馬圖) 

337 - 비온 뒤의 산빛은 더욱 산뜻하고 깊은 밤의 종소리는 더욱 맑고 높아라  

비 온 뒤에 산빛을 바라보면 더욱 산뜻함을 느끼며

깊은 밤에 종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가 더욱 맑고 높다.

  • 雨餘(우여) : 비가 온 뒤에.  ‘餘(남을 여)’ 는 後의 뜻이다.
  • 景象(경상) : 경치(景致), 경색(景色).
  • 新姸(신연) : 청신(淸新)하고 고움. 우리말로는 ‘산뜻하다’ 에, 한자어로는 ‘선연(鮮姸)하다’ 에 해당할 것이다.  ‘姸(예쁠 연)’ 은 美의 뜻이다.
  • 夜靜(야정) : 고요한 밤에, 밤이 깊어.
  • 淸越(청월) : 소리가 맑고 높음. 
337 서비홍(徐悲鴻 1895~1953) 영취(靈鷲) 121+92
 서비홍(徐悲鴻, 1895~1953) - 영취(靈鷲)

◈ 이른바 「풍교야박(楓橋夜泊)」 시의 본령(本領)은 ?

풍교야박(楓橋夜泊) - 장계(張繼, 미상~779)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달은 지고 까마귀 울어 하늘엔 서리 가득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강가엔 온통 단풍, 고깃배 불빛에 나그네는 시름겨운데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깊은 밤 고소성 너머 어느 절인가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한산사 그 종소리 뱃전을 두드리네

※ 장계는 중당(中唐)의 시인으로, 자는 의손(懿孫)이며, 후베이성(湖北省) 샹양(襄陽) 사람이다. 현종(玄宗) 때 진사(進士)가 되었고, 검교사부원외랑(檢校祠部員外郎)과 홍주(洪州) 염철판관(鹽鐵判官) 등의 벼슬을 지냈다. 기행과 유람을 내용으로 하는 시를 많이 남겼으며, 특히 절구(絶句)에 뛰어났다. 

제목은 ‘풍교에서 밤에 배를 대다’ 라는 뜻으로, 배를 타고 가다 날이 저물어 풍교의 강가에 배를 대고 밤을 보내며 지은 시이다. 풍교는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의 서쪽 교외에 있는 다리를 가리킨다. 고소성은 쑤저우에 있는 성이고, 한산사는 쑤저우의 풍교진(楓橋鎭)에 있는 사찰이다. 달도 기울고 까마귀 울어대는 이른 새벽에 밤새 내린 서리는 스산함을 더하고, 배 안의 나그네는 강가의 단풍나무와 고기잡이배들의 등불을 바라보며 잠 못 이루는데 멀리 한산사에서 친 종소리가 귓전까지 닿아 시름을 더한다. 객지에서 바라본 늦가을밤의 정경과 나그네의 심정을 빼어나게 묘사한 시로, 청나라 강희제(康熙帝)가 이 시에 끌려 풍교를 찾았다고 한다.

※ 이 시를 두고, 한산사의 종소리가 과연 풍교까지 들려오는가, 왜 하필이면 한산사에서는 한밤중에 종을 쳤는가 하는 시비를 언급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시를 논할 자격이 없음은 당연하다. 다만 이 시를 늦은 가을밤의 정취와 나그네의 마음 - 客愁가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만 이해한다면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늘 듣고 보는 소리와 풍경도 어느 순간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며, 일상의 하찮은 사물과 현상 속에서도 뜻하지 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 때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일까?’ -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시절인연(時節因緣)’ 이라고 한다. 

‘한밤중 멀리 있는 한산사의 종소리가 내 뱃전을 두드린다’ - 이 시절인연이 이 시의 비의(秘意)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작자 장계만이 오직 알 따름이다. 

* 홍수 속에 떠내려가는 아이를 구출한 사람이 뭍으로 올라와 한 첫 마디 말이 ‘어떤 새끼가 밀었어’ 였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물 구경 하러 강가에 나갔다가 누군가 뒤에서 밀어 강물에 뛰어들게 된 사람이 그 어린아이를 구하게 된 것이다. 하필이면 그때 거기에 있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시절인연(時節因緣)인 것이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지고 오를 때에 얼마간 예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간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달걀 장사 ‘구레네 시몬’ 이라는 자였다. 엉겁결에 로마병사로부터 떠밀려 그 짐을 억지로 떠맡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먹는 관습의 유래가 되었다고 전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지만 이 또한 시절인연이 아니겠는가?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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