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가로수가 말한다 / 조희선
조희선
승인
2020.11.27 15:28 | 최종 수정 2020.11.27 15:48
의견
0
가로수가 말한다 / 조희선
메마른 저녁이 오면
아쉬운 별 하나
낮은 포복으로 기어드는
밤을 가늠할 즈음
추위에 움츠린 채로
빈 가지에 걸린
시간의 몸짓이 파르르 떨린다
날카로운 유혹의 바람마저
우성인자 앞세워
깊게 드리운 사랑을 뚝 부러뜨리고
작은 낙엽의 어설픈 동작은 이내
제 둥지 잃은 슬픔을
차거운 어미의 품에 들이밀고 부빈다
행여,
그를 묻어 영글게 새긴 알맹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사위는 노란 등불 켜고 길을 밝힌다
이내 뾰족구두 뒷굽에 밟혀
으깨어질 삶이어도
손가락 펴고 너를 가늠하고 품어
내년을 기약할
도톰한 흙 한 줌이면 좋았을 것을
널브러진 내장 허옇게
번짐의 시간을 건널 때
망가진 소리 하나 조용히 눞는다
걸어둔 한 자락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릴 때쯤
그곳에는 시리도록 영롱한
유년의 꿈이 기화한다
희망과 절망은 하나였다고
꿈과 미래가 곧 절망이었다고
간짓대 끄트머리의 생(生)이었다고
<시작노트>
은행나무의 노란 계절이 저물 즈음
씨앗을 품은 알맹이도 속속 제 꿈을 키울
자리를 찾지만 떨어진 행자들은 거리의
부랑자들에 의해 무참히 으깨어지고
그들의 꿈은 환경미화원의 손에 쓸려갑니다.
안타까운 그들의 삶을 누가 보듬어 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 가을은 갑니다.
◇조희선 시인은◇
▶한맥문학에서 시 등단
▶서울문학에서 수필 등단
▶한양문학 정회원
▶「가슴 울리는 문학」 고문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