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09) - 거문고 피리 소리 들리지 않아도, 향 피우고 차 마시지 않아도 …  

허섭 승인 2021.11.04 16:51 | 최종 수정 2021.11.06 10:33 의견 0

309 - 거문고 피리 소리 들리지 않아도, 향 피우고 차 마시지 않아도 …  

사람의 마음에 그 어떤 참된 경지가 있으니 
거문고와 피리가 아니라도 절로 편안하고 즐거우며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절로 맑고 향기로우니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이 하고 생각을 끊어 육신마저 잊어야만
비로소 그 속에서 노닐 수 있을 것이다. 

  • 非絲非竹(비사비죽) : 사죽(絲竹)이 아닐지라도.  絲竹은 ‘거문고와 피리’ 로 ‘음악 나아가 풍류’ 를 뜻한다.
  • 恬愉(염유) : 편안하고 즐거움. 恬은 ‘편안하다, 고요하다’, 愉는 ‘즐겁다, 게으르다, 부드럽다’.
  • 不烟不茗(불연불명) : 연명(烟茗)이 아닐지라도.  烟茗은 ‘향(香)과 차(茶)’ 로 ‘향을 피우며 차를 마시는 고상한 생활’ 을 뜻한다.  烟은 향을 피우는 연기, 茗은 ‘늦게 딴 차’ 를 일컫는 차의 이명(異名)이다.
  • 淸芬(청분) : 맑고 향기로움.
  • 念淨(염정) : 생각을 맑게 함.
  • 境空(경공) : 경계를 비움, 보고 듣는 것을 끊음으로써 마음을 비움.
  • 慮忘(려망) : 잡념을 잊음.
  • 形釋(형석) : 형체를 잊음, 즉 육체의 존재를 잊음.  形은 형해(形骸).
  • 游衍(유연) : 마음 내키는 대로 노닐며 즐김. 소요(逍遙)와 같은 뜻이다.  衍은 ‘넘치다, 흐르다, 가다, 순행하다’.
309 석도(石濤 1642~1707) 여산관폭도(廬山觀瀑圖) 209.7+62.2
309 석도(石濤 1642~1707) 여산관폭도(廬山觀瀑圖) 209.7+62.2

◈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중에서 

無絲竹之亂耳(무사죽지란이) 無案牘之勞形(무안독지로형)
- 시끄러운 풍악이 내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관청의 공문서를 읽어야 하는 고역도 없으니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살면 이름을 얻는다. 물은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살면 영험한 것이다. 이 누추한 방에는 오직 나의 향기로운 덕이 있을 뿐이다. 이끼는 섬돌을 따라 푸르고 풀빛은 주렴에 푸르게 비친다. 훌륭한 선비들과 담소를 나누고, 비천한 자들은 왕래하지 않으니, 거문고 연주하고 금경을 읽기 좋다. 음악 소리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관청의 문서를 읽는 노고도 없으니, 남양 땅 제갈량의 초려요, 서촉 땅 양웅의 정자로다. 공자도 말하였지, '군자가 살고 있으니 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 라고.

- 山不在高(산부재고) 有僊則名(유선즉명). 水不在深(수부재심) 有龍則靈(유룡즉령). 斯是陋室(사시누실) 惟吾德馨(유오덕형). 苔痕上階綠(태흔상계록) 草色入簾靑(초색입렴청). 談笑有鴻儒(담소유홍유) 往來無白丁(왕래무백정). 可以調素琴閱金經(가이조소금열금경). 無絲竹之亂耳(무사죽지난이) 無案牘之勞形(무안독지로형). 南陽諸葛盧(남양제갈려) 西蜀子雲亭(서촉자운정). 孔子云(공자운) 何陋之有(하누지유).

※「누실명(陋室銘)」81자(字)를 한 마디로 줄이라 하면, 나는 <陋室德馨(누실덕형)> 이라 답할 것이다.  -  (나의 거처는) 비록 누추할지라도 덕의 향기 높아라 !

◈ 『열자(列子)』 주목왕편(周穆王篇)에 

건망증(健忘症)의 행복  - 건망증에 걸린 화자(華子)라는 중년 늙은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송(宋)의 양리(陽里)에 사는 화자라는 이는 중년에 망각증(妄覺症)에 걸려 모든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지금에 있어서는 이전 것을 모르고 뒤에 가서는 지금 것을 몰랐다. 가족들은 고명한 학자나 점쟁이, 심지어 무당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으나 끝내 그 병을 고치지 못했다. 

그 때에 마침 노(魯)나라에서 온 선비가 그 병을 고치겠다고 나섰다. “이 병은 점괘나 약물이나 기도로 고칠 수 없고 오로지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 합니다. 즉 무심(無心)을 유심(有心)으로 무려(無慮)를 유려(有慮)로 바꾸어야 치료가 됩니다.” 그리고 나서 환자와 7일 간 한 방에서 보내었다. 그러자 몇 년을 끌던 병이 낫게 되었다. 

그러나 화자는 깨어난 후 크게 화를 내며 처자식들을 내쫒고 그 선비를 죽이고자 창을 들고 쫒아갔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화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엊그제까지 내가 잊어버리고 있을 때에는 탕탕연(蕩蕩然)하여 천지가 있고 없는 것도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 갑자기 지나간 일들을 의식하게 되었소. 십수년래로 존망득실(存亡得失)과 애락호오(哀樂好惡)가 요란하게 온갖 단서가 일어납니다. 나는 장래에도 이것들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힐까 심히 걱정되오. 수유(須臾)의 잊어버림이라도 다시 얻을 수 있겠는지요? 

(아니 글쎄,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를 잘 했던 거요. 나의 마음은 호탕하여 천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 갑자기 의식이 회복되어 모든 지나간 일을 다 알게 되었소. 심지어는 수십년 이래에 누가 살아 있고 누가 죽고, 누가 무엇에 성공하고 누가 무엇에 실패하고, 또 슬퍼했던 일 즐거웠던 일, 좋아했던 일, 싫어했던 일,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머리 속에 떠오를 뿐 아니라, 또 나의 미래에도 그런 복잡다양한 모든 일들이 머리 속에 떠올라 나의 마음을 산란케 할까봐 걱정이 되오. 어떻게 하면 내가 다시 금방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는지요?)

- 華子曰(화자왈), 曩吾忘也(낭오망야) 蕩蕩然不覺天地之有无(탕탕연불각천지유무). 今頓識(금돈식) 既往數十年來(기왕수십년래) 存亡得失(존망득실) 哀樂好惡(애락호오) 擾擾萬緒起矣(우우만서기의). 吾恐將來之存亡得失哀樂好惡之亂吾心如此也((오공장래지존망득실애락호오지란오심여차야). 須臾之忘(수유지망) 可復得乎(가부득호).

  • 曩(낭) : 접때, 앞서, 이전에.   須臾(수유) : 잠깐, 순간.

-  『열자』 (상) / (하)   김경탁(金敬琢)   명지대학 문고 19~20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