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65) 케렌시아

손현숙 승인 2022.08.26 15:34 | 최종 수정 2022.08.29 10:22 의견 0

케렌시아*
                     손현숙                    


대퇴골 부서져서 누워있는 엄마랑 영상 통화한다 면회도 안되고 간병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팬데믹이어서 딸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질뿐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반 평짜리 지구 위에 누운 극노인의 안부를 캔다 최대한 밝게 최대한 높은 톤으로, 

틀니 뺀 입술로 ‘이상 무’,를 오물거리는 30초, 사실 다른 말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명료하게 들려오는 ‘이상 무’ 엄마가 괜찮다면 뭐, 괜찮은 거다 

꼭꼭 씹어 밥을 먹고 분홍색 패딩도 한 벌 사고 미장원에서 보브컷으로 멋도 부렸다 밀린 빨래와 친구랑 긴 통화도 하면서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나쁜 년이니?” 다이어트 앱을 깔고 스쿼트 쌍, 십팔을 마쳤다  

 

*투우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어가는 곳

- 애지. 2022. 봄호 -

박경애 여사와 딸 손현숙 시인

  알람을 맞춰놓고 엄마랑 영상 통화한다, 전화를 받지도 걸지도 못하는 엄마지만, 세상의 모든 도움이 엄마에게로 모여있다. 물론 어제의 통화는 기억 속에 없다. 그렇게 매일 새것처럼 나를 반기신다. 어느 날은 왜 이렇게 말랐느냐, 걱정으로 땅을 꺼뜨리고. 또 어떤 날은 누구세요? 낯설다. 어제는 “엄마가 집에 가서 전화할 게 밥 챙겨 먹고 있어”라고 당부하신다. 사실 발음은 묵음처럼 우물거리는 정도지만, 집에 가서 딸년에게 전화하시겠다는 전언은 나를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하는 치명이다. 도대체 엄마 기억 속에 나는 몇 살로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 엄마는 그 속에서 몇 살로 살아있는 것일까. 요양병원 침상에 누워있는 엄마는 기막혀라, 여전히 새끼들 밥이 걱정이시다.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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