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57) - 세속의 부화(浮華)한 이야기보다는 산중의 맑은 이야기를, 지금의 험한 꼴보다는 옛날의 아름다운 행실을 말함이 나을 것이다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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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22:19 | 최종 수정 2021.06.0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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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 세속의 부화(浮華)한 이야기보다는 산중의 맑은 이야기를, 지금의 험한 꼴보다는 옛날의 아름다운 행실을 말함이 나을 것이다.
시정 사람(市井人)을 사귐은 산골 늙은이를 벗함만 못하고
고관대작의 집에 굽실거림은 오막살이를 친함만 못하다.
거리에 떠도는 말을 들음은 나무꾼과 목동의 노래를 들음만 못하고
지금 사람의 부덕과 과오를 말함은 옛 사람의 아름다운 언행을 이야기함만 못하다.
- 市人(시인) : 시중(市中)의 사람, 즉 시정잡배(市井雜輩), 장사치.
- 山翁(산옹) : 산골 늙은이.
- 謁(알) : 배알(拜謁)하다, 찾아뵙다. ‘절하고 뵙는 것’ 이니 ‘굽실거리다’ 의 뜻이다.
- 朱門(주문) : 주칠(朱漆)한 대문, 즉 신분이 높은 사람의 집. 고관대작의 집 대문은 붉게 칠하였기에 나온 말이다.
- 白屋(백옥) : 띠집, 초옥(草屋). 흰 띠(白茅)로 지붕을 이은 서민(庶民)들의 초옥. 전(轉)하여 서민을 의미하기도 함.
- 街談巷語(가담항어) : 길가나 골목의 말들, 즉 ‘거리에 떠도는 소문’ 을 말함.
- 樵歌牧詠(초가목영) : 나무꾼과 목동들의 노랫소리.
- 過擧(과거) : 그릇된 행실. 擧는 거동(擧動), 행동거지(行動擧止).
- 嘉言懿行(가언의행) : 아름다운 말과 떳떳한 행동. 懿는 美의 뜻임.
◈ 곽박(郭璞)의 「유선(游仙)」
京華游俠窟 (경화유협굴) 서울은 유협(游俠)들의 소굴이요
山林隱遁棲 (산림은둔서) 산림(山林)은 은자들이 숨어 사는 곳
朱門何足榮 (주문하족영) 붉은 칠한 대문인들 어찌 영화가 족(足)할까
未若托蓬萊 (미약탁봉래) 봉래산(蓬萊山)에 의탁함만 같지 못하리
臨源揖淸波 (임원읍청파) 샘에 이르러 맑은 물 마시고
陵岡掇丹荑 (능강철단이) 산에 올라 붉은 영지(靈芝)를 꺾네
靈溪可潛盤 (영계가잠반) 영계(靈溪)는 터 잡아 숨어살기 좋은 곳
安事登雲梯 (안사등운제) 무엇 하러 구름사다리에 굳이 오르랴
漆園有傲吏 (칠원유오리) 칠원(漆園)에는 도도한 관리가 있었고
萊氏有逸妻 (내씨유일처) 노래자(老萊子)에겐 멋진 아내가 있었다지
進則保龍見 (진즉보용현) 벼슬하면 왕을 독대(獨對)할 수 있겠지만
退爲觸藩羝 (퇴위촉번저) 물러날 때엔 울타리에 뿔 걸린 양의 처지가 된다네
高蹈風塵外 (고도풍진외) 세속을 벗어나 높이 발을 내딛고
長揖謝夷齊 (장읍사이제) 길게 읍하며 백이숙제와 작별하리라
※ 작가인 곽박(郭璞 276-324)은 진(晉)나라의 시인이자 학자로 「유선시(遊仙詩)」14수(首)가 있는데 위 작품은 그 첫 번째 것이다.
靈溪(영계)는 물 이름이고, 雲梯(운제)는 구름사다리로 옛사람들은 仙人(선인)이 구름사다리를 타고 승천한다 생각했으며, 漆園(칠원)은 莊子(장자)가 漆園의 관리였다 하고, 萊氏(내씨)는 老萊子(노래자)로 노래자가 楚王(초왕)의 권유로 출사하려 했을 때 아내가 남에게 매여 지내는 것이 싫다고 해 그녀를 따라 은거했다고 하며, 觸藩羝(촉번저)는 울타리를 뿔로 받아 뿔이 울타리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된 수양을 이르는 말로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함을 뜻하며, 謝夷齊(사이제)는 은둔했다면서도 고사리를 뜯어먹은 백이 숙제와 작별한다는 의미로 속세를 완전히 초탈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 시의 작자는 실제로는 벼슬 중 죽임을 당했다 하니 시에서 보인 자신의 다짐대로 살지 못하고 자신이 觸藩羝(촉번저) 신세가 된 모양이다.
◈ 왕유(王維)의 「작주여배적(酌酒與裴迪)」
酌酒與君君自寬 (작주여군군자관) 그대에게 한 잔 술 권하거니 느긋하게 마시게나
人情翻覆似波瀾 (인정번복사파란) 세상 인정 바뀌는 것은 출렁이는 물결 같으니
白首相知猶按劍 (백수상지유안검) 머리가 허옇도록 사귄 벗도 도리어 칼을 겨누고
朱門先達笑彈冠 (주문선달소탄관) 먼저 출세한 이는 이제 막 벼슬길에 나서는 벗을 비웃는다네
草色全經細雨濕 (초색전경세우습) 풀빛은 가랑비라도 내려야 윤이 나게 마련인데
花枝欲動春風寒 (화지욕동춘풍한) 꽃가지 움트려하나 봄바람이 아직 차갑구려
世事浮雲何足問 (세사부운하족문) 세상 일이란 뜬구름 같으니 물어 무엇 하리오
不如高臥且加餐 (불여고와차가찬) 차라리 편안히 누워 맛난 거 먹느니만 못하다네
※ 이 시는 시우(詩友)인 배적(裴迪)이 진사 시험에 낙제하였을 때 왕유가 자기 집으로 그를 불러 한잔 술로 위로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인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토로(吐露)하면서 자신보다 연하(年下)인 배적을 위로해 주고 있다.
◈ 두보(杜甫)의 「영회시(詠懷詩)」 일부
朱門酒肉臭 (주문주육취) 붉은 문 안에서는 술과 고기 썩어 나고,
路有凍死骨 (노유동사골) 길에는 얼어죽은 사람들의 뼈가 나딩군다
榮枯咫尺異 (영고지척이) 영화로움과 괴로움이 지척간에 이렇듯 판이하니
惆悵難再述 (추창난재술) 슬픈 마음 다시금 이루 말할 수 없도다
* 이 작품의 원제(원제)는 「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자경부봉선현영회오백자)」로 두보가 미관말직(微官末職)을 제수받아 봉선현으로 부임하면서 목도(目睹)한 당대 현실의 부조리와 백성들의 고초를 리얼하게 묘파한 작품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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